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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Aug 30. 2024

여름을 보내는 방법

전집으로 돌격

 선조 정유년(1597년) 일본군에게 잡히자, 바다에 뛰어들어 죽고자 했으나 살아난 강황. 그 후 그는 귀화를 거부하고 일본에서 약 4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몇 번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그는 일본 지리와 군제, 조선이 적들과 맞서려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충언 등을 적은 상소문을 국내로 보내기도 했다. 경자년(1600년) 조선으로 돌아온 강황은 그동안 보냈던 상소문을 포함한 글에 ‘건차록(巾車錄)’이라고 손수 제목을 붙였다. 죽지 못하고 살아난 자신을 낮춰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뜻으로 펴낸 ‘건차록’을 자손이나 제자들은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무오년(1618년) 52세로 그가 떠난 후 윤순를 포함한 제자들은 의논을 거쳐 갑오년(1654년)에 제목을 고쳤다. 흉노 땅에 포로로 잡혀간 소무(蘇武)가 양을 치는 수모를 겪은 것과 비슷하다며 ‘간양록(看羊錄)’으로.

『간양록』을 읽던 난 선조께 보낸 충언에서 또 울컥했다. 오직 나라와 백성만 생각하는 바보 같은 어른이셨다. '관원을 임명할 때 가문을 묻지 마시고, 장수들이 백성을 침탈하지 말도록 하옵시고, 왜란은 대마도주와 소서행장이 일으킨 참화이옵니다….’

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 옳은 말과 행동을 한 어른이었는지 내 그림자를 뒤돌아봤다.    

  

요 며칠 동안 『징비록』을 시작으로 『난중일기』『간양록 조선 선비 왜국 포로가 되다』를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몇 번이나 봤었지만, 들숨과 날숨에도 비 내리듯 땀이 흐르는 올여름에야 활자로 본 거다.

나는 그동안 여름, 겨울방학이 있어 휴가라는 단어를 따로 써본 적이 없다. 방학이 되면 한 학기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밀린 책을 읽고, 늦은 시간까지 영화 보며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출근하지 않으니, 늦잠도 잤다. 그렇게 에너지를 채워 개학을 맞이했다. 방학 동안 충전했기 때문에 개학 후엔 펄펄 날며 아이들과 함께했다.

퇴직 후 날마다 뒹구는 올여름도 예년 여름방학 때처럼 시간을 보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가벼운 책에서 조금은 무거운 고전 문학으로 눈길을 돌렸다는 거다. 더위가 일찍 찾아온 자유인에게 시원하고 널찍한 도서관이 가까이 있어 가능했다.     


오늘 난 류성룡, 이순신, 강황. 세분의 철학과 신념에 푹 빠진 시간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음 책을 찾아 자료를 검색했다. 이번엔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2층 열람실올라 가는데 이웃사촌에게 문자가 왔다. 며칠 째 도서관에서 코 박고 있는 내게 콧구멍에 바람을 집어넣어 준다며 나오란다. 시원한 막걸리에 전(煎)을 먹자며. 난 그녀의 달달한 문자에 홀려 엉덩이를 흔들며 도서관을 나섰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순천은 5일 장인 아랫장과 7일 장인 옷장이 있다. 아랫장이 옷장보다 큰 장이다. 우린 아랫장 모둠 전집으로 갔다. 순천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곳인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물건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았다. 생선 파는 곳을 지나 기름 냄새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전집에 갔다.

땀이 비 오듯 흐르는 날이었지만 전집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불 앞에서 전을 굽는 주인 얼굴이 연달아 읽었던 세 권 책 속의 우리 조상님들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눈빛도 비장했다. 난 감히 조국과 백성을 위해 앞장선 분들을 전집에서 떠올리다니 하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우린 구석진 곳에 있는 비좁은 자리로 몸을 집어넣고 시원한 막걸리에 명태 전, 해물파전, 고추전을 주문했다. 따갑게 내리쬐는 백열전등과 에어컨 바람에 눈이 부셨다. 따가워진 눈을 비비며 전집 내부를 요리조리 살피는 내게 이웃사촌이 한마디 했다.

“언니! 날도 더운데 잘 챙겨 먹어야죠. 책만 보다간 목 디스크 옵니다.”

“아니, 겨우 몇 권이나 읽었다고? 부끄럽게. 쉿!”

뜨거운 전과 시원한 막걸리를 들고 오는 주인아저씨 발걸음에 난 그녀 입을 막았다.  

콧구멍에 바람 쐐준다던 그녀 말대로 난 고소하고 바삭한 전에 코를 박았다.     

우린 막걸리를 마시며 임진왜란을 이야기했다. 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린 어떻게 살았을까? 앞치마에 돌을 날랐거나 왜군과 맞서 싸우다 죽었을 거라며 이 말 저 말을 했다. 우린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조상님들 이야기에 취해버렸다. 그녀와 난 우리도 훌륭한 어른들 뒤를 따르자며 주먹을 불끈 쥐며 전집을 나섰다.


남은 전은 검은 봉투에 넣어 벌겋게 달아올라 흔들거리는 우리 뒤를 따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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