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층까지 울려 퍼지는 아이들 환호성에 난 홀린 듯 거실 창문을 열었다.
더운 열기가 '훅' 소리를 내며 집으로 들어왔다.
난 상관하지 않고 상체를 쑥 내밀며 내려다봤다.
조그마한 연못 옆에 있는 물 분수대가 들썩거리고 있다.
어린이집에나 다닐 법한 아이들 다섯이 요란했다.
거센 물줄기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뛰어다니는 중이다.
그 모습이 전기가 필요 없는 에어컨이었다.
분수대를 마주하고 있는 정자엔 손 선풍기를 든 엄마들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고 엄마들은 심심한 입을 푸는 수다방이었다.
난 달려 나가려는 다리를 붙들고 부러움에 젖어있는 눈길을 거뒀다.
더위가 시작된 후 매일 이 시간쯤 아이들 목소리가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난 그 목소리를 따라 물 분수대로 나비처럼 날아가 저들과 같이 뛰고 싶었다.
힘차게 솟는 시원한 물줄기 사이를 뛰면서 저들처럼 즐거워 미치겠다는 소리도 지르고 싶었다.
몇 번이나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그놈의 체면이 뭔지 현관 문고리도 잡아보지 못했다.
속상한 마음을 다잡고 읽던 책을 다시 들었다.
내 눈은 활자에 꽂혀있는데 귀가 물 분수대로 달음박질했다.
난 책을 접고 귀를 따라 집을 나섰다.
물 분수대 쪽을 향해 걸어갔다.
화단에 드문드문 핀 맥문동을 거느리고 도도하게 서있던 화분이 나를 불렀다.
난 가던 길 멈추고 화분 앞으로 갔다. 하얀 얼굴을 나에게 디밀며 몇 안 되는 나뭇가지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그 자리에 종일 서 있어 심심하니 같이 놀자는 화분 얼굴을 바라보다 난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0동 0호 화분입니다. 일광욕 겸 산책 나왔습니다. 충분히 즐기고 나면 알아서 들어갈 테니 저를 버리지 마세요! -화분 올림-’
올여름은 유난히 습도가 높다더니 화분도 숨 막혀 산책을 나왔나 보다.
덥고 습한 날씨에 저 무거운 화분을 옮기던 분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난 더워도 화분을 위해 힘을 쓴 그분을 만나 시원한 물 분수대로 같이 가고 싶었다.
쑥스러움을 극복하기엔 혼자보단 둘이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깐.
어른 둘이 분수대 물줄기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입이 또 실룩거렸다.
난 물 분수대를 휩쓸고 있는 아이들을 힐끔거리다 화분에 쪽지를 붙이고 싶어졌다.
난 고개 숙여 강렬한 태양과 눈 싸움하다 기운 빠져버린 잎사귀들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화분에 물 주듯 우리도 물 맞으러 분수대 한번 가보시죠.^^ -*동*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