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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Aug 13. 2024

오메! 징하다.징해

그래도 여름은 간다.^^

식탁 귀퉁이에 손등이 부딪쳐 멍이 들었다. 

푸르뎅뎅한 손등을 보자니 손가락 끝까지 아리 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내게로 총알보다 빠르게 달려오는 요즘.

난 더위를 잊을만한 손등 멍을 얻었다. 

혈관이 툭 튀어나온 나잇값 하는 손등에 멍까지 있으니 짠했는지 땀내 나는 더위가 고개 숙였다. 

고통은 고통으로 잊는다더니 더위를 손등 멍이 이겨버린 거다. 

냉동실에서 택배용 얼음팩을 꺼내 손등에 올리는데 구급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길 건너 아파트로 구급차가 바삐 들어갔다. 

위급하다는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구급차를 보니 그날이 생각났다.    

 

그해 1월 초 새벽 4시쯤. 중환자실 앞 보호자 대기실로 남편 주치의가 찾아왔다.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모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개 숙이고 두 손을 기도하듯이 꼭 쥔 채 내 눈을 피하며 그가 말했다. 

내 귀엔 전기톱으로 벤 고목이 '쿵'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굉음 같았다.

주치의는 흔들거리는 날 잡으며 덜덜거리는 목소리로 또 말했다.

"가까운 곳에 가족 중 남자는 없습니까?"     


그땐 죽음을 집에서 맞이하던 시절이었다.

시댁 쪽 어른들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젊은 남자 얼굴에 어른거리는 죽음을 봤단다. 

어른들 눈엔 아직 어리디어린 나를 빼고 그들끼리 모여 장례에 대해 의논했다.

시부모님은 먼저 떠나는 자식을 고향으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른들은 남편과 내가 살던 포항 아파트는 더욱더 안된다며 병원 장례식장을 알아봤다고 한다.     

좋은 시간을 정하기도 하는 '탄생'과 달리 '죽음'은 예기치 않게 오는 거다.

그 새벽 난 떨리는 목소리로 서울 시누이 집으로 전화했다.

아무래도 남동생들보다는 손아래이긴 해도 남편과 동갑인 시누이 남편이 어른 같아서였다. 

잠자다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터진 시누이 남편은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내가 뭐라고 뭘 어떻게 … 왜 나한테 이런 선택을…"   

  

날이 밝고 시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 합의로 남편은 고향 집으로 가기로 했다.

구급차는 호흡이 있는 사람만이 타고 호흡 정지된 사람은 영구차를 타야 한다.

우린 눈이 올 듯 말 듯하던 그날 남편이 있던 포항 S 종합병원 구급차를 구하지 못했다. 

응급환자가 많아 힘들다며 병원 관계자는 사설 구급차를 알선해 줬다.

의식, 자가호흡도 없는 남편은 병원에서 했던 인공호흡기 대신 수동호흡기(앰부 백:호흡이 정지된 사람이나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에게 호흡을 돕기 위하여 사용하는 럭비공 모양의 고무주머니)를 했다. 기도까지 튜브를 삽입하는 기관 내 삽관을 한 남편은 삽관을 뽑아 줄 의료인도 필요했다. 

사설 구급차엔 운전기사만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말꼬리를 흐리며 간호사였던 나에게 그 일을 하라 했다.(내가 포항 간호학원에서 가르쳤던 학생이 중환자실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제자 덕분에 중환자실 면회시간 외 면회도 몇 번 했지만 간호사였던 것도 알려졌다.) 호흡이 끊어지기 전 고향 집에 도착해야 하니 거부할 힘도 없었다.    

  

뜨끈한 여름 같던 서른 살 남자는 내가 쥐었다 폈다 하는 수동호흡기를 벗 삼아 천방지축 날뛰던 어린 시절 고향 집으로 서른아홉에 돌아갔다.

난 구급차 창문만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런 느낌 없이 쥐락펴락 만 했다.      


고향 집 안방 바닥엔 비닐이 벽 쪽엔 병풍이…

난 남편 기관 내 삽관이 빠지지 않게 삽입했던 공기를 빼고 삽관을 제거했다.

남편은 마지막 숨쉬기(Cheyne-Stokes respiration) 후 어릴 때 뒹굴었을 안방 병풍 뒤로 사라졌다.  

   

구급차 소리에 남편의 마지막 호흡이 어른거려 먹먹해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간호학과 교수인 친구다. 

무슨 일을 하고 있길래 전화를 늦게 받냐는 친구에게 구급차에 얽힌, 오래된 슬픔을 말했다.

‘솔’이던 목소리를 ‘도’로 바꾼 친구가 소리 질렀다.

“오메! 징하다 징해! 조선시대라면 열녀문이라도 세워줄 건데. 날씨도 더운데. 아이고!! 우리 친구 징하다 징해. 시간이 벌써 30년이 돼 간다. 아이고!!”

친구는 말과 다르게 코를 훌쩍거렸다. 화상전화는 아니지만 168cm인 키만큼이나 커다란 손등으로 눈물 훔치고 있을 친구 모습이 훤히 보였다. 우린 시원한 냉면 먹자고 점심 약속 후 전화를 끊었다. 

난 다 녹아버린 택배용 얼음팩을 냉동실에 넣고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남편 물건을 뒤적거렸다.

시원하게 써 내려간 글씨를 발견하곤 난 그를 향해 한마디 했다.

“으이그 인간아!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거라고 내기하자더니 좋냐! 네가 이겨서. 내기 걸었던 그 돈 내가 다 썼다. 써!. 바보, 멍청이, 머저리, 찐빵!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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