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뱃살공주 Aug 01. 2024

곱다, 고와

어르신들과 함께한 귀하디 귀한 시간들.

어르신들과 화, 수요일 2회 수업이 벌써 한 달이 되었다. 난 수업시간에 늦지 않게 소나기 같은 장마와 살을 태울 듯한 강렬한 태양 사이사이를 피해  어르신들 곁으로 달려갔다. 에어컨과 철사로 머리를 고정한 선풍기 두대가 돌아가는 경로당 2층은 어르신들 수다에 지붕이 들썩거리곤 한다.

퇴직도 했겠다 누구 눈치 볼 일도 없던 난 여름 내내 반바지만 입고 다녔다. 어젠 점심 약속이 있어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더웠지만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뜨거운 칼국수 국물과 더위에 벌겋게 상기된 얼굴인 채 난 경로당 2층 문을 열었다. 수업 시작 15분 전이지만 이미 자리 잡고 앉아있던 어르신들 눈이 내게 쏠렸다.

"아이고 곱다, 고와."

"긍께. 저런 원피스는 어디서 산대? 우리 며느리도 하나 사주고 싶."

"저 나이에 뭘 입어도 이쁘지. 그래도 바지보단 치마 입응께 이쁘네."

수업 중에도 선생님 한마디에 당신들 살아온 이야기 세 마디를 보태시던 분들인데. 오늘은 수업도 하기 전부터 내 원피스를 향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말폭탄이다. 여기저기 밀려드는 말들에 난 휘청거렸다.

"아이고! 어르신들 부끄럽게… 어찌까 잉."

첫 수업날 지각하신 탓에 내 옆에 앉았던 어르신께서 한마디 날리신다.

"곱디고우니깐 노래나 한자리해 봐."

말도 마치기 전에 어르신들이 '노래해'라며 소리를 질렀다. 수업 시간에 맞춰 들어오던 선생님은 문 앞에서 주춤거렸다. 난 벌건 얼굴이 더 벌게졌다. 상황 파악이 끝난 선생님과 어르신들이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난 박수에 맞춰 원피스 양끝을 잡고 두어 바퀴 빙글빙글 돈 후 인사했다.

"오늘도 선생님 보조 역할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래도 이쁜 절 이쁘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바탕 웃고 난 후 수요일 수업인 '샴푸 만들기'를 했다.

눈이 흐릿해져 눈금이 안 보인다는 어르신 틈에서 난 선생님을 도와 재료를 따르고 섞기 위해 힘껏 저어 천연 샴푸를 완성했다. 곱디고운 내가 거들었으니 얼마나 효과가 좋겠는가?

수업이 끝난 후 1층에서 어르신들이 챙겨준 옥수수를 받아 들고 '다음 주에 봬요'라고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실룩거리는 입과 흔들거리는 엉덩이를 겨우 진정시켰다. 곱디고운 사람이 너무 흔들거리면 숭(흉)하니깐. 어제 집으로 가져온 천연샴푸도 곱디고운 주인과 함께 욕조 근방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가슴속 검은 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