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가다듬다. 2
어제저녁부터 오른쪽 위 어금니가 아팠다. 밤새 끙끙 앓다 일어나니 오른쪽 뺨이 부어올라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난 치과에 갔다. 치통 탓에 찌푸린 얼굴로 3일 치 진통소염제를 들고 집으로 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디자인이 바뀐 자동차 주차권이 없는 세대는 관리실로 오라는 방송이 나왔다.
난 다시 집을 나섰다. 아파트 관리실로 가는데 어린이집 창문에 대롱거리는 ‘새집’이 보였다. 여섯 채나 되는 ‘종이 새집’ 모습이 치통으로 울상인 날 미소 짓게 했다. 나를 졸졸 따라오는 통증과 함께 난 가까이 다가갔다.
두 줄로 세 채씩 붙은 집 안엔 지푸라기가 반듯하게 깔려있었다. 지붕 꼭대기엔 집주인인 듯한 ‘아이’ 사진이 집마다 붙어있었다. 앞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새집 앞엔 집주인이 그린 종이 새 한 마리가 문패를 대신했다. 난 코끝까지 내려온 안경을 왼손으로 올리며 찬찬히 살폈다. 아이 주먹 크기만 한 대문과 손가락 두 개 정도의 창문 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그때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라며 지붕 위를 지키던 아이 사진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놀란 난 오른손을 내 등 뒤로 숨겼다.
새집을 한참 바라보던 난 앙증맞은 손으로 집을 지으며 새들에게 사랑을 주려 애쓴 아이 마음씨가 보였다. 난 종이 새집에 틀어 앉아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새들이 부러웠다. 나도 이름 모를 작은 새가 되어 아이 마음씨에 살포시 스며들고 싶어졌다. 내가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는 날 가만히 안아줄 것 같다. 새가 되어 아이 품에 안긴 난 아이 미소로 치통도 잊으리라. 힘차게 날뛰는 아이 숨소리에 내 손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난 콩닥거리는 마음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어린이집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숨소리만 퍼지는 공간에 어린이집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해님반 친구들 선생님 따라오세요. 하나, 둘, 셋, 넷….”
선생님 목소리에 무지개색 앞치마를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어린이집 밖으로 나왔다. 문밖을 나온 아이들은 어린이집 앞 놀이터 쪽으로 우르르 달렸다. 그 모습이 내리쬐는 햇살보다 더 강하게 빛났다. 눈이 부신 난 오른손을 이마에 올리며 바라봤다.
놀이터로 가던 파란색 앞치마를 입은 남자아이가 여섯 채 중 약간 왼쪽으로 기운 새집 쪽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발꿈치를 들고 새집을 들여다보며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엄마 새가 알을 낳았나 봐요.”
가지런한 치아가 돋보이는 긴 머리 선생님이 아이를 향해 환하게 웃으면 대답했다.
“어머! 그래. 그럼, 우리 엄마 새가 편안하게 알을 품게 도와줄까? 엄마 새가 놀라지 않게 조심조심 선생님이랑 해보자.”
선생님 목소리에 놀이터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새집 앞으로 몰려왔다. 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은 새집과 선생님을 에워쌌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듯 조용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숨소리만 요란했다. 난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들에게 크게 한 걸음 다가갔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새집 앞에 붙은 종이 새를 떼어 집안으로 넣었다. 선생님은 지푸라기 위로 종이 새를 눕혔다. 선생님을 둘러싼 아이들과 난 숨을 멈추고 선생님 손만 바라봤다. 선생님은 지푸라기 하나를 집어 파란색 앞치마 아이에게 주며 말했다.
“알을 품는 동안 새가 놀라지 않게 문을 가려줘 볼까?”
아이는 지푸라기를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새집 문을 조심스럽게 가렸다. 할 일을 다한 파란색 앞치마 아이와 선생님은 새집을 등지고 돌아섰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웃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해님반 친구들. 엄마 새가 알을 품도록 우린 다시 놀이터로 갈까요?”
선생님 목소리에 아이들은 놀이터 모래밭으로 달려가며 대답했다.
“네~~ 예.”
난 그들을 등지고 관리실로 발길을 옮겼다. 걸어가는 내 등 뒤로 놀이터 기구를 즐기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에 홀린 듯 난 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 아이들을 바라봤다. 미끄럼틀, 그네를 타는 아이, 모래를 집어 날리는 아이, 선생님 주변을 맴도는 아이. 요즘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내 시간 속으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불쑥 들어왔다.
지난 2월 정년퇴직 후 난 머릿속을 비우고 실컷 놀았다. 나보다 먼저 퇴직한 분들이 ‘퇴직하면 한 달만 좋아. 무기력해지고 멍청해지는 건 순간이야.’라고 한 말이 맞나 보다. 요즘 내가 그런다. 책을 읽으려면 눈이 쓰라리고 글씨가 흐릿했다. 설거지하려 하면 굳어진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고 아팠다. 내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과 밥을 축내고 있다. 이런 내게서 웃음은 잽싸게 도망가 버렸다. 이젠 어금니까지 뺏으며 날 주저앉히려 한다.
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어린 마음씨를 얻고 싶었다. 그 마음씨를 내 마음과 아파트 화단 곳곳에 뿌려 키우련다. 물 주고 영양제도 주며 아이들의 다정하고 맑음이 가득한 꽃으로 피우리라. 활짝 핀 꽃들이 여기저기 향기를 날리면 좋겠다. 나처럼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향기에 취한다면 웃음과 여유를 찾을 것 같다. 웃고 떠드는 아이들 곁에는 향기에 취한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서 계셨다.
나는 관리실을 나와 새집 앞으로 갔다. 창가에 매달린 새집 한 곳에 손을 집어넣었다. 지붕 꼭대기에 붙은 집주인 눈을 피해 아이 마음씨 한 움큼을 집었다. 순수한 아이 마음씨를 아파트 화단에 뿌렸다. 마음씨가 제대로 심어지게 발로 흙을 밟았다. 화단 앞 수도꼭지를 틀어 물도 줬다. 센 물줄기에 흙들이 줄지어 날 향해 걸어왔다. 난 두 손으로 흙들을 모아 방금 심은 마음씨 주변에 뿌리며 도닥였다.
‘어서어서 자라 꽃을 피우렴. 멀리멀리 꽃향기를 날려 사람들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주렴. 나도 너 향기에 젖어 살고 싶다.’
마음씨를 심은 난 치통도 잊은 채 집에 왔다. 현관문을 닫으려는데 웃음 그림자가 나를 따라 들어와 내 품으로 조용히 달려든다.
*무력한 날들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들이 손가락 힘까지 뺏어버렸다. 뜨거운 삼계탕으로 기운을 차려본다. 예전 글을 읽으며 고치고 고치는 시간을 가졌다. 두드리고 펴다 보면 무력도 날아갈 것이다.
땀 흘리던 시간이 어느새 옷깃을 세우는 시간이 돼버렸다.
이 가을엔 손가락에 힘이 솟기를. 제발 빈둥거리지 말기를. 울긋불긋 단풍이 우거진 길을 흔들리지 말고 걷기를.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받기를. 더 많은 활자를 접하기를. 통장이 텅장이 되지 않기를.
11월 처음 맞는 일요일 푸른 하늘에게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