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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숙아보카도 Jul 20. 2024

당신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세이

우리는 글을 쓰겠다고 나서는 모든 젊은이에게 「당신은 무슨 할 말이 있는가?」‧‧‧그 질문은 요컨대 「남에게 전달할 만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는 의미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30

문학이란 무엇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있을까?


달랑 한 장 정도 되는 책의 서문에서 사르트르가 던지는 묵직하고도 명확한 질문들이 나로 하여금 그동안 책과 함께했던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내적 체험이 좋았고 책을 통해 나의 삶이 바뀌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되기도 알고 있던 나를 새롭게 해석하게 되기도 했다. 이 과정들을 통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해 가지는 태도 또한 변화했고 자연스럽게 이전의 삶과는 다른 것들이 내 삶에 들어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읽기란 귀납(歸納)이며 내삽(內揷), 외삽(外揷)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78


 현재 쓰여 있는 텍스트를 가지고 독자는 과거의 양상을 통찰하기도 하고 미래의 양상을 예측하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활동은 엄연한 작가의 의도이며 당연한 결과라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반성적 통찰을 할 수 있게 이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신뢰하며 작가는 그것을 독자들에게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글을 쓸 때 작가가 독자에게 가지는 신뢰를 고매한 태도라 부른다.


고매한 감정이란 자유를 근원으로 삼고 자유를 위해서 자신을 타자(이 경우에는 책)에게 내맡기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74


좋은 문학은 작가의 의도나 감정이 독자를 집어삼키지 않는다. 작가의 텍스트는 하나의 순수한 제시로서 그 안에서 살아나는 감정과 주체성은 모두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문학을 독자와 작가가 돌리는 야릇한 팽이와 같은 것이라 비유한다. 일단 쓰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그 책의 완성을 이루는 것은 읽는 독자의 몫으로 넘겨진다. 문학 작품의 의미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찾아내는 것이고, 그 작품의 진가 또한 이 야릇한 팽이 운동이 얼마나 활발히 일어나느냐에 달려있다.


어쩌면 나는 책 속에서 ‘자유로운 꿈’을 꾸라는 사르트르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고 강의 질문을 잡을 때도 나에게 자극을 주고 울림을 주었던 대목을 잡아 왔고 나의 심리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다. ​여기까지 보면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독자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을 사르트르가 들었다면 아마 나에게 17세기 고전적 독자의 수준과 매반 다르지 않다며 혀를 내두를 것이다.


요컨대 고전적 인간의 이미지는 순전히 심리적(心理的)이다. 왜냐하면 고전적 독자는 자신의 심리에 대해서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129


그 당시 활동했던 작가와 독자는 동질적(同質的)이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정신에 어떠한 모순도 깃들이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작가들은 독자들이 원하는 표현이나 사상을 되풀이할 뿐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여기서 사르트르가 말하고자 하는 참여문학의 본질이 나온다. ​


작가는 원하든 원치 않든 펜을 들기로 작정했다면 자신이 속한 세계, 사회의 부정 속에 뛰어들어야 한다.


작가는 그런 것들을 말해야 한다. 나의 주관적인 부정이자, 사회 안에서 분열되어 있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


일상적 현실 안에 있지만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고통과 소외, 그런 것들은 우리 주변에 굉장히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즉 사르트르에 있어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래서 나는 어떤 세계를 드러낼 것인가?”, “왜 그 세계를 선택했느냐?”에 대한 질문의 전제이다. 그 세계를 드러냄을 통해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작가는  고뇌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글을 쓴다는 것은

변화를 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물론 개인적인 변화도 좋지만 좋은 글은 나도 성장시키고 글을 읽는 독자도 성장시킨다.​ 지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책 속에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상들을 통해 어떤 합목적성을 되찾고 싶었을까? 솔직히 아직은 책을 읽고 써 내렸던 글들이 나의 어떤 세계를 드러낼지 잘 모르겠다. 또 드러난 나의 세계가 사람들의 세계 안에서 얼마나 공감을 일으킬지도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글을 쓰고 찬찬히 쌓아가는 일인 것 같다.


글은 말과 달리 수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다. 말은 한번 뱉으면 다시 철회할 수 없거니와 말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일이 많은데 글은 나를 작가이면서 독자일 수 있게 한다. 즉 글쓰기는 거리를 두고 한번 더 나를 살필 수 있게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찬찬히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써놓은 글들을 쭉 훑어볼 때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유명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읽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야..?”하고 놀란다고 한다.  이처럼 글쓰기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보여준다.


아직은 글을 쓸 때 주춤하는 순간들이 많다. 말하듯이 글을 썼을 때 과연 읽을 수 있는 글이  나올지 두렵고 종종 하고 싶은 말의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답답하다. 나도 언젠가 고매한 감정을 갖고 글을 쓰는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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