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덧 없이 툭 툭 끊어지는 목련 꽃잎들. 가장자리부터 상해가던 것들. 아스팔트 바닥에 눌어붙고 나서도 오래 축축했던. 사실 이것들은 내 상상이다. i,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벚나무 아래 서 있던 한 학생이야. 5G라는 것이 생기기 전의 스마트폰을 향해 그 학생은 눈이 휘어지게 웃었지. 스마트폰 카메라가 DSLR의 성능을 따라잡는다는 얘기가 한참 새어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어. 그 말이 시기상조였던 것처럼, i 너는 항상 내게 시기가 상조한 사람이었어. 소나무가 빽빽한 동네의 봄바람이란 달달한 꽃내음이 아니라 걸걸한 송홧가루를 몰고 오는 그런 존재였지. 벚꽃 봉오리가 활짝 피어난 나뭇가지를 붙들고 너는 말갛게 웃었지. 노란 가루가 콧속을 파고들어 자꾸 재채기가 났어.
봄. 재채기. i. 지금 생각하니 모두 찰나구나. 나는 그 찰나를 품고 떨어진 목련 꽃잎처럼 구석부터 멍들어 갔고.
i, 앳되고 말간 네 웃음이 아직 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너는 벚나무 가지를 꺾어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 네 발아래로는 이전에 부러진 벚나무 가지들이 가득했을 거야. 사실 이것도 가공된(한) 기억이지만. 넌 그렇게 내 안에서 조금씩 재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항상, 그때도 지금도, 난 재단되지 않은 너를 알고 싶어.
서걱거리며 글자가 써질 때마다 달달한 무화과 냄새가 나. 그런 향이 나는 연필을 샀거든. 무화과 향 사이로 삐져나오는 흑연의 쌉싸름한 냄새가 어쩐지 그날의 봄바람 내음 같다. 이것 또한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넌 활자로만 숨 쉬는 소설 속 인물처럼, 내가 가공한(나도 모르는 새에) 기억에만 숨을 쉬지. 그게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어떠한 자각도 없이 우연히 너를 만나고 싶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정말 가끔은. 그러니까, 갑자기 콧속에 나부끼는 바람에 재채기가 튀어나올 때 정도로 가끔은.
i, 난 아직도 가끔 네가 없는 그 벚나무 거리에 가곤 해. 시기상조인 것들은 금세 구식이 되어버렸어.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DSLR을 쥐고, 뷰파인더 속을 한참 동안 노려본다. 그럴 때면 가공된 기억을 반복해서 새기는 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결국 사진은 찍지 못한 채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쑤셔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또한 내 상상이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을까. 축축한 목련 꽃잎처럼, 난 아직 그 거리에 눌어붙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모든 건 거짓이야. 그러니 i, 조금도 염려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