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전체에서 어떤 인간보다도 나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모짜르트의 음악은 내가 사춘기 소년일 때 내 곁에 있었고, 이제 젊다고 할 수 없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의 매일의 양식이다.
모짜트트의 600곡이 넘는 음악중에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나는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서양음악중에 가장 심오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개인과 집단의 갈등이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의 가장 모범적인 해결책을 보여주는 것이 협주곡이라는 음악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음악 웹사이트에 나올 것 같은 진부한 말로는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나의 인연을 설명할 수 없다.
나의 인생의 모든 시기에는 모짜르트의 협주곡이 곁에 있었다. 대학생 시절 허름한 연립주택에 살 때, 싸구려 턴테이블로 매일 듣던 것은 아바도가 지휘하고, 제르킨이 연주한 모짜르트의 협주곡 20번이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어린 아들 둘과 아내를 차에 태우고 장을 보러 가거나, 여름 여행을 떠날 때는 브렌델이 연주하는 협주곡 22번 3악장이 항상 틀어져 있었다. 나중에는 아이들 조차 멜로디를 따라 할 정도였다.
아내의 병 간호를 하느라 녹초가 되어서 매일 집과 회사를 여러 번 왔다갔다 해서 지쳤던 시절에는 7번 협주곡의 2악장을 자주 들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어디에도 기댈 수가 없었던 그때 그 음악은 마치 모짜르트가 나에게 직접 들려주는 위로처럼 들렸다.
아내가 죽고 난 후, 늦은 밤에 집 근처의 산책길을 홀로 걸으며 듣던 것은 24번 협주곡이었다. 모짜르트 학자 아인슈타인이 왜 24번은 인생이 비극이라는 것을 알게 된 천재의 독백 같은 음악이라고 말했는지 그때 깨달았다.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22번이다. 그 음악에는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모든 장르에 능한 모짜르트의 천재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전부터 가장 자주 듣는 것은 19번 협주곡이다. 이 음악은 모짜르트가 자신을 옥죄던 짤쯔부르크를 떠나서 비엔나에 입성하기 전에 만든 음악이다. 아직 성공을 맛보지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가 충만했던 작품이라는 얘기다.
모짜르트는 예약 연주회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귀족들의 시종 같은 당시의 음악가의 지위에서 벗어나서, 예술적 자유와 부와 명성을 얻으려고 시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잠깐 동안의 성공을 맛 본 후에. 결국 모짜르트의 짧은 성공은 바로 그의 몰락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9번은 어쩌면 모짜르트가 가장 행복했던 -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안했을지도 모르지만 - 시기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은 산의 정상과 비슷한 것이다. 오르고 나면 허무하고, 남은 것은 다시 내려 오는 것 밖에는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성공하기 직전에 가장 행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