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좀 거슬릴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여자도 브람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Sexist라고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만의 세계가 있다고 종종 말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브람스의 음악이 남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주제이거든요.
모짜르트 음악을 거의 매일 듣던 20대 대학시절에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처음 들었습니다. 지금은 브랜드가 생각도 안나는 휴대용 카셋트 플레이어에 성음에서 나온 브람스 교향곡 테이프를 넣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들은 브람스의 음악은 뭔가 답답했습니다. 모짜르트 같은 선율의 아름다움도 없고, 베토벤처럼 필요한 곳에서는 아무런 제약 없이 극한의 다이내믹을 표출하는 클라이맥스도 없는, 자신의 감정을 100 퍼센트 표현하지 않는 무언가 막힌 음악이었습니다.
베토벤의 10번이라는 별명을 가진 브람스의 1번 교향곡 조차 처음에는 큰 실망감을 주었습니다. 가슴을 탁 트이게하는 한 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베토벤처럼 폭발적인 부분이 나오겠지 하는 순간 브람스의 음악은 어느새 다시 우울하고 조심스런 곡조로 바뀝니다. 20대에 매일 쓴 일기에는 "브람스의 음악은 임포텐스다." 라고 적은 적도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산을 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50대 후반에 도달한 지금, 아이러니컬하게도 제가 가장 자주 듣는 음악 중에 하나가 브람스가 되었습니다. 20대 아니 40대 시절에도 지루하게 느껴졌던 4번 교향곡 조차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브람스 교향곡의 정교함이라든지, 힌데미트의 무조 음악의 가능성을 인정한 그의 위대한 선견지명이라든지 이런 따분한 얘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주제를 깊이 들어갈만큼 제가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런 류의 현학적인 음악에 관한 사설은 인터넷에 수많은 고수들이 이미 많이 써놓았으니까요.
차가운 12월의 밤, 뒷 산의 산책길을 걸으면서 브람스의 4번을 들으면, 느낍니다. "이 남자는 정말로 엄청난 자기 통제력을 가진 인간이었구나. 그런데 모든 음표에서 외로운 남자의 냄새가 난다."
브람스의 교향곡들은 그의 3번 교향곡을 시작하는 세가지 음표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F-A-E. Frei Aber Einsam. (자유롭다 그러나 외롭다.). 그의 모든 교향곡, 특히 4번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저는 브람스가 말한 이 문장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느낍니다.
자유를 선택하면 외로와지고, 외로움을 피하려면 자유를 잃게 되는 것. 그것이 인간 존재의 법칙입니다. 저는 브람스처럼 자유롭지만 외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항상 양 극단에서 비틀거리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은 저에게 "나보다 나은 남자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하고, 경외감을 일으킵니다.
결론은... 이 글을 읽는 분이 20대 고전음악 애호가라면 브람스의 음악은 30년 후에 다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분명 다르게 들릴 것입니다. 여성이시라면 제가 서두에서 드린 말씀은 사과드립니다. 브람스 교향곡을 지휘한 마린 알솝 같은 여성 지휘자는 훌륭한 브람스 해석으로 격찬을 받았습니다. 여성이 브람스의 음악을 이해 못한다는 말은 취소하고 다음과 같이 정정합니다. 심오한 정신을 가진 여성만이 브람스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건 남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