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쯤부터 고전음악을 열심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주로 듣다가 바흐가 위대한 음악가라고 해서 들어본 곡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습니다.
트레버 피녹이 연주한 하프시코드 연주였다고 기억하는 그 음악은 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 같았습니다. 대위법이라는 바로크 음악의 어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어린 학생에게는 너무나 난해하고 지루한 음악이었습니다.
그 후에 성인이 되면서, 베토벤, 슈만, 슈베르트, 헨델 등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즐기게 되었지만, 바흐의 골드베르크는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2001년 회사의 카운터 파트인 일본 회사 간부들을 초청해서 경주에서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때 일본팀의 일원이었던 Mr. 타카자와와 인사를 나누다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골드베르크 CD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농담으로 "선물로 주려고 가져왔냐"라고 물었더니, 그 양반은 우물쭈물하다가 저에게 그 CD를 주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기가 산 CD를 자랑하려고 꺼낸 것이었는데, 일본인 특유의 예의 정신 때문에, 저의 지나가는 말을 듣고 그냥 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미안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그 해프닝이 골드베르크를 저의 인생음악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나중에 Mr. 타카자와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움의 표시로 골드베르크 CD 2개를 보냈습니다. )
어쨌든 당시 발표된 지 얼마 안 된 퍼라이어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는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골드베르크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이었습니다. 깔끔한 터치와 세련된 곡의 진행은 정말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과장을 보태지 않고, 퍼라이어의 골드베르크를 수백 번은 들었을 겁니다.
골드베르크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그 간에 바흐의 다른 음악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골드베르크를 들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퍼라이어의 골드베르크를 듣다가 다른 연주가가 연주한 CD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굴드베르크라는 별명까지 붙여진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를 발견했습니다. 1955년에 연주한 그의 첫 번째 골드베르크와 1981년에 녹음한 그의 두 번째 골드베르크 중에 저는 후자를 좋아합니다.
매일 퇴근하는 길, 차 안에서 굴드의 골드베르크를 틀어놓고서 운전을 하고 있으면, 어떤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절대적인 음악 안에서 잠시 세상을 벗어난 것 같은 해방감. 녹음기사들에게 큰 골칫거리였던 굴드의 허밍마저도 그의 골드베르크에 대한 몰입도를 더 높여주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고, 사람들을 멀리하는 기벽을 가진 굴드, 통화를 하던 사람이 감기에 걸린 것을 알자 전염될지 모른다고 전화를 끊는 등 상식을 초월한 괴짜였던 굴드. 다섯 살에 자신이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유치원 친구들에게 말한 굴드. 20대의 골드베르크 연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스타가 되고, 마지막 음반도 골드베르크를 연주하고, 50세에 죽은 굴드. 참으로 흥미 있는 인물입니다.
저의 골드베르크에 대한 관심은 굴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연주가, 더 다양한 악기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CD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니 나중에는 골드베르크 CD만 80개가 넘게 되었습니다.
현악 4중주, 재즈 트리오, 기타, 하모니카, 색소폰, 관악 앙상블, 오르간, 하프시코드, 피아노 등 수많은 악기들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CD가 지금도 매년 출반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항상 퍼라이어 아니면 굴드의 녹음을 듣게 됩니다. 굴드의 골드베르크를 들으면 니체가 말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시간의 이빨에 마모되지 않는 영원한 작품" 정확한 구절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 이런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빼곡하게 밀리는 퇴근길의 도로에서 굴드의 골드베르크를 들으면, 기묘한 해방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저 굴드가 연주하는 것만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런 고양된 해방감을 느꼈는데, 실제로 그 음악을 연주한 굴드는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고전음악, 특히 바흐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들어본 골드베르크의 음반 중 좋았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글을 끝냅니다. 링크는 유튜브에 올라온 해당 연주가의 동영상입니다. 굴드가 죽기 1년 전에 녹음한 스튜디오 영상을 담은 첫번째 비디오는 특별히 추천합니다.
바로크 음악, 특히 건반음악을 들을 때 저는 항상 난관에 봉착합니다. 하프시코드의 날카로운 소리를 군 시절에 사격훈련을 하다가 망가진 오른쪽 고막이 견디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골드베르크를 오리지널 악기로 연주한 음반은 듣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중에 귀가 전혀 아프지 않은 유일한 음반이 프리쉬의 골드베르크입니다. 이미 수많은 상을 받아서 그 진가가 인정된 음반이지만, 저에게는 귀가 아프지 않은 하프시코드 버전의 골드베르크라는 이유만으로도 탑 리스트에 들어갈만한 녹음입니다. 그리고 프리쉬의 골드베르크는 정말 아름답고, 우아합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코롤리오프의 골드베르크는 퍼라이어와 비슷합니다. 자연스럽고, 유연합니다. 퍼라이어가 없는 대체 세계에서는 코롤리오프가 퍼라이어 같은 성공을 거두었을 겁니다. 제가 이 음반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는 코롤리오프가 골드베르크를 녹음할 때 여러 번 테이크를 나누어서 작업을 했는데, 나중에 그 테이크들을 다 모아서 음반으로 만들었을 때 전체적인 음악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서 녹음기사들이 감탄을 했다는 인터넷의 글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천재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