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는 없다
오늘 아침, 등원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옆집 시터 아주머니께서 우리 아이가 생각나서 샀다며 직접 고른 헤어핀 두 개를 선물해주셨다.
알고보면 주변 사람들은 매일 인사처럼 많은 배려와 친절을 건낸다. 아이를 낳은 직후 만난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는 주말동안 고기와 야채를 직접 사와서 식사를 차려주고 백일에는 예쁜 옷을 선물해주시기도 했다. 그 아이가 지금보다 어릴 때, 가사일을 도와주러 오던 아주머니께서 자기가 일 나가던 다른 집 아기가 크고 나서 못 입게 된 옷가지를 일부러 받아 커다랗게 한 짐을 들고 지하철까지 타고 와 갖다준 적이 있다. 목욕탕에 가면 종종 아주머니들이 아이를 불러앉혀 데리고 놀다가 씻겨주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눈이 쏟아지던 어느 날 유모차를 끌고가던 나를 알아보고 목욕탕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우산을 씌워주신 적도 있다.
나는 그 분들의 속사정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팍팍한 삶 안에서도 자신과 가족이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않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에 고마움과 숙연함을 느낀다. 느슨한 관계의 낯선 이웃들로부터 그런 친절을 경험했을 때 나는 참 뜻밖이었고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따라해봤다.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았다. 묻지마 친절은 그렇게 전염되었다.
사돈의 팔촌에게 건네는 묻지마 친절. 어느 춥고 건조한 겨울날 택배 나르는 할아버지와 엘레베이터를 같이 탔는데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그 분께 갖고있던 핸드크림을 주고싶었다. 할아버지도 약간 그 상황이 웃기다고 생각하며 그걸 건네받았는데, 그날 저녁 마트 마감세일에서 시식코너를 담당하던 아주머니께서 내게 남은 거라고 떡을 여러 개 챙겨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우연찮게 일어난 묻지마 친절의 선순환.
사람들에게 치여 실망스럽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소한 일화들을 한 번씩 떠올려보면 다시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여보려는 용기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