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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Jul 04. 2024

사라진 똥구멍

목적 없는 동화

“엄마, 오늘 아침은 뭐야?”

“응 나물비빔밥이야. 어서 와서 먹자.”


열 다섯 살 영이는 여느 날처럼 익숙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학교 갈 준비를 하다보니 배가 더부룩해졌다. 화장실에 가 변기에 앉았다가 자신이 더 이상 똥을 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똥구멍이 사라진걸까?


같은 날 학교에서의 점심시간. 급식으로 나온 우유가 한낮의 더위에 상한걸까? 한 잔을 마시고나니 메슥거리며 배가 싸르르 아파졌다. 식은 땀도 났다. 똥구멍이 움찔움찔 열릴 것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여전히 똥을 눌 수 없었다. 영이는 대신 초조하게 이 교실 저 교실을 돌아다니며 지나가던 아이들 곁에 힘없이 픽픽 쓰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성가신 생리현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편리함을 느꼈다. 차츰 똥을 누지 않는 생활이 익숙해졌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몸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영이는 자신을 시험하듯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먹기 시작했다. 식당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남기고 간 후식부터 누구 입에서 나온지 알 수 없는 길가에 떨어진 번드르르한 사탕, 이웃집에서 분리수거한 고약한 냄새의 음식물 쓰레기까지. 더 이상 아무 맛조차 느낄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배는 점점 부풀어오르며 딱딱하게 뭉쳐갔다. 늘 돌덩이가 뱃속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지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반면 영이의 엄마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생각에선지 자신이 화장실에서 똥을 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그러는데도. 그녀는 자신이 똥을 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고, 인정하기 싫어했다. 항상 의식을 치를 때면 세면대의 물을 크게 틀고, 화장실에 방향제를 충분히 뿌렸다. 뒷물도 꼭 하고 여러 번 박박 닦아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영이의 아빠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다. 그는 늘 똥을 지렸다. 젖은 팬티로 인해 그의 가까이에서는 항상 냄새가 났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똥을 쌌다. 그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아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의 인식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도움을 받고싶어하거나 부끄러워했을테지만, 그는 스스로 그런 사람인걸 모든 이들이 알아주길 바랬다. 아니, 자신이 사회적 체면이나 예의 따위는 깡그리 무시할 수 있으며 언제 어느 때라도 아무렇게나 똥을 눠 주변을 당황스럽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놀랍게도 그에게는 남들 위에 선 듯한 커다란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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