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동화
오늘 영이는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먹었다. 지난 날 영이는 초코파이를 한 봉지만 먹어도 당 충전이 되는 걸 바로 느껴 기분이 좋아지고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반 나절 정도를 기운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영이의 뱃속은 예민했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 한 접시라도 맛있게 먹고 난 뒤엔 바로 아랫배가 콕콕 쑤시며 속이 따끔거리기 일쑤였으니까. 상한 음식을 먹으면 꼭 설사를 했고, 요구르트를 마신 뒤에는 황금변을 봤다. 그건 하나부터 열까지 참으로 솔직하고도 성가신 과정이었다. 영이도 자신이 너무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모든 과정이 종종 불편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자신의 아빠처럼 아무데나 주저앉아 똥을 싸고 자유를 느꼈으면 했다. 하지만 영이는 남들 앞에서 그런 모습의 자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영이 생각에 자신은 아빠와 달랐다.
그런 생각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일까? 소원 아닌 소원대로 영이는 이제 화장실에 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 뒤로는 오늘처럼 초코파이를 하나, 둘, 셋, 넷, 다섯…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우겨넣어도 맛이 어떤지, 배가 부른지 느낄 수가 없었다. 영이는 눈 앞의 초코파이를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분명 아주 오래 전부터 경험해 온 익숙한 음식인데도 이제는 처음 보는 미지의 무엇처럼 느껴졌다. 영이는 참담했다. 똥구멍 다음엔 혀인가? 이렇게 내 신체와 감각의 일부가 하나씩 사라지다 어느 날 눈을 뜨면 나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없는 게 아닐까?
영이는 애써 초코파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첫 기억은 초등학교 때였다. 당시 영이에겐 엄마 없는 친구 정이가 있었다. 영이에겐 엄마가 있었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연기처럼 희미했다. 영이는 하교 후 늘 정이와 어울렸다. 엄마가 영이의 생일을 잊었던 어느 날 정이는 영이를 자신의 빈 집에 초대해 수퍼마켓에서 사온 초코파이 한 박스를 차곡차곡 피라미드처럼 쌓은 뒤 요거트 한 개를 쏟아붇고 촛불을 꽂아 케이크라며 들이밀고는 생일축하 노래를 열창했다. 기억이 거기까지 미치자 영이의 뱃속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