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
오늘의 목적지는 리움 미술관이다. 각잡고 하는 문화생활을 소홀히 했더니 통 가 볼 일이 없었다. 미술관이라면 아직은 좀이 쑤셔 별로인 시끄러운 딸에게 직접 그리고 만드는 체험을 해 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우리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무세오 에어로솔라라는 커뮤니티 프로젝트인데 동네마다 버려진 비닐봉투를 모아서 이어붙인 뒤 태양열을 동력으로 한 거대한 열기구 뮤지엄을 하늘에 띄우는 것이 목표다. 환경과 기후문제에 대한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담아낸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이가 자신이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는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그 공간과 거기에 전시된 작품들을 가깝게 느껴 자세히 들여다보고 앞으로 미술관을 즐겨찾는 계기도 되었으면 해서 흔쾌히 프로젝트에 신청했다.
일단 가서 처음 마주한건 진짜 쓰레기 더미였다. 아이가 저거 혹시 씻어놓은거냐고 물었다.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이걸 세척하는 과정에서 또 탄소 발자국이 생기면 안되는거잖아? 그래서 그런거지?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회용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끼고 원하는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아이아빠까지 세 명이 참여했는데, 비닐봉지로 패치워크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마음에 드는 비닐봉지를 찾은 뒤 아이는 알맞은 모양으로 자르고, 아빠는 이어붙일 자리에 깔고, 나는 테이프로 고정하는 식으로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분업이 이뤄졌다. 우리 가족의 팀워크를 확인해보는 시간이었다. 손발이 잘 맞아서 그런지 금방 전지 사이즈의 비닐 패치워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장 더 가기로 했다. 워크숍 진행자 분들의 뜨거운 격려를 받으며 우리가 한 장을 더 만들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는 토마스 사라세노라는 작가를 만나는 보상이라도 주어지는지 궁금했다. 이 작가는 지금 무상으로 수 천 명을 움직여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야기의 힘이 이렇게 크다.
이번 프로젝트 참여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앞으로 전시될 작품을 보며 좋아할 딸에 대한 기대도 있다. 가족과 함께 해 본 결과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고 그것을 땀흘려 직접 해내는 과정에서 분명 즐거움과 깨달음이 있어 지역사회의 프로젝트로 진행된 것은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그래도 전 세계 25개국 50개 이상의 지역사회에서 이걸 한다고? 굳이 그래야 하나? 하나 제대로 만들어서 영상으로 기록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마스크와 비닐장갑, 비닐테이프가 또다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서로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여러 나라와 우리들에게 공동체 의식이라는 걸 일깨우는데 저렇게나 많은 소모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온 마을이 아이랑 소를 같이 키웠다는 옛날이라면 이런 작품도 없었겠지. 부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깨닫고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