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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Nov 06. 2024

즐겁게 놀다

나 사용설명서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계급전쟁은 마치 드래곤볼의 천하제일무도회 경연처럼 개성 강한 캐릭터들 덕분에 즐겁게 시청했다. 특히 자신을 비빔인간으로 칭한 에드워드리 쉐프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 특유의 요리와 식재료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거기에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곁들여 퍼즐 맞춰가는 모습이 마치 답안지처럼 자로 잰 듯 완벽함을 추구하는 안성재 심사위원과 대비를 이루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10년 동안 매일 똑같은 방법으로 양파를 요리해서 매번 완벽하게 내놓는다면 그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다.”


“매번 시도하는 것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실패도 해봐야 배우게 된다.”


배우는걸 좋아한다. 나에게 배움은 놀이다. 실패할 수 있다해도 안 가던 길로 가보고, 수고를 감수하며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력과 직관을 얻는 과정을 즐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무언가라는 틀에 굳이 나의 느낌을 끼워맞추지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좋았다고 한 것이 역시 좋은 경우가 훨씬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처 발견되지 못한 다른 것들에도 마음을 열어둔다. 그러다보면 편안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좀 더 정확히 찾아갈 수 있고, 그게 각자의 고유한 특징과 장점, 개성과 취향을 발전시켜나갈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의 유일한 꿈은 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마추어다. 프로가 되어본 적이 없다. 아마 끝까지 안가봐서 모르는거겠지만 일단 모든 일의 처음이 좋다. 처음은 특별하다. 처음은 새롭고, 그래서 배우고, 모든 게 시작될 기회이기도 하니 서툴지만 늘 설렘이 있다. 처음이라고 하면 나는 일단 초심, 기초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처음 시작될 때는 모든 일이 기본에 충실하다. 연륜과 경험이 쌓이면 뭐든 복잡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왜 그렸지?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요리를 왜 하지? 맛있게 먹으려고? 전화는 왜 만들었지?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싶을 때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전화는 농아에게 소리를 가르치기 위한 용도로 처음 만들어졌다지만 지금 전화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면 발명가인 벨은 놀라자빠질 것 같다. 가짜뉴스나 보며 서로 혐오하려고 전화를 만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전화 속 자극적인 이미지와 영상이 무한 스크롤을 타고 쏟아지면 또다시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댄다.


인류 전체로 보면 우리는 모두 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비효율적으로. 짐승들은 생존을 위해 집을 짓고 배가 고파 사냥하고, 체온유지를 위해 털갈이를 하고 나뭇잎을 덮지만 인간은 별의별 상징적인 건축물, 아파트, 전시장을 만들었다 부수고, 배터지게 먹고도 유희를 위해 난해한 요리를 했다 버리고, 시즌마다 새로운 트렌드라고 패션쇼를 하며 썩지도 않는 옷무덤을 매일 쌓아올린다.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짐승들은 이웃인 인간들이 불필요한 욕망 때문에 넘치도록  많은 것을 차지하고도 더 갖지 못해 뺏고 죽이고 가만있는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며 위협을 가하는걸 보고도 말이 없다. 그들이 소위 다른 계급의 인간이었다면 매일 집회, 테러, 전쟁을 하고 우리를 단두대에 끌고갈 만 한 일 아닌가?


유희는 특별한 목적없이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활동이다. 짐승도 노는걸 좋아한다. 햄스터나 고양이도 쳇바퀴를 달리고 캣타워를 오르고 공놀이를 즐긴다. 그들이 먹는 데 많은 시간을 쏟지만 먹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다. 놀이는 모든 생명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살려면 생존의지가 있어야 하고, 살려는 의지는 유희에서 그 동력을 얻는다. 모든 예술은 유희이고 문명의 역사는 인간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 유희의 시간을 차츰 늘려가기 위해 애쓴 역사다. 이동수단과 업무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자동차나 로봇을 발명한 것처럼 말이다.


다같이 놀고 싶다. 이왕이면 모두가 즐거운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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