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6시 출발 항공권이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신랑이 기상특보로 한라산 탐방로가 전면 통제되었다고 문자가 왔다는 거다. 헉! 1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계획된 한라산 등반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 제주 여행의 목적은 한라산 등반인데, 며칠 전부터 비는 계속 내리고 결국에는 탐방로까지 통제되었다니.. 우리 가족과 한라산은 인연이 닿지 않는가 보다 했다. 작년 제주여행 중에도 한라산 등반하러 갔다가 그때도 전면 통제로 입구에서 되돌아가야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항공권, 숙소, 렌터카를 모두 예약했기에, 한라산 등반에 필요한 준비물들만 모두 빼고 우리는 제주도 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 때문은 아닌 것 같은 데, 제주도 가는 항공편도 '운항사정'이란 이유로 처음에는 35분, 20분 지연을 반복하다가 1시간이 지나서야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 탑승직전에 한라산 전면 통제가 일부 해지되고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탐방이 가능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한라산 등반이 무산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열린다고 하니 신랑은 시간계산에 초조해했다. 성판악 탐방로에 11시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NO-SHOW'로 간주되어 한 달간 한라산 탐방 신청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나와서 아침도 먹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등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신랑이 하도 서두르니 메뉴도 신중하게 고르지 못하고 대충 아침식사를 마무리하고 렌터카를 찾아 부랴부랴 성판악 탐방로 입구로 이동했다. 더불어 산에 올라가서 먹을 간식과 음료를 샀는데, 막상 산에 들고 갈 백팩조차 챙겨 오지 않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캐리어를 뒤져 비치용 수영가방에 간식과 음료를 넣었다.
한라산은 처음인데, 다른 유명한 산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다른 유명한 산들은 등산로가 넓게 만들어져 있어서 산 속 깊이 들어가지 않은 한은 개방된 느낌이 강했던 것 같은데, 한라산은 들어가자마자 좁은 등반로와 우거진 산림으로 해가 거의 비치지 않았다. 더욱이 새벽까지 계속 비가 와서인지 등산로가 축축하게 물을 품고 있어 걸을 때마다 물이 찰랑거렸다. 아이들은 몇 걸음 걷자마자 발이 웅덩이에 빠져 축축한 운동화를 신고 걸어야 했다. 축구를 하는 큰 아이는 이미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고 나와 신랑은 작은 아이와 호흡을 맞추며 천천히 올라갔다. 한라산 등반이 무산된 줄 알았던 상황이라 작은 아이는 이미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젖은 신발을 신고 축축한 산길을 걸어가니 그 발걸음이 너무 더디었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발목이 아파서 발목보호대까지 하고 있으니 그 징징거림은 점점 심해졌다.
이럴 때 작은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현질 보상을 조건으로 하는 미션이다. 제일 좋아하는 미션을 걸자 작은 아이의 도전의욕이 살아났고 아픔을 참고 씩씩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라오름 전망대 입구에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더 갈지 전망대까지만 갈지를 고민했는데, 발목이 아픈 작은 아이를 데리고 더 가기엔 무리라 판단하고 사라오름 전망대를 이번 등반의 목표지점으로 정했다. 아픔과 힘듦을 참고 꿋꿋하게 앞장서서 등반한 작은 아이가 가장 먼저 도착했을 뿐 아니라 나와 신랑이 힘들다고 쉬었다 가자고 해도 묵묵히 우리의 목표지점인 전망대른 항해 쉼 없이 나아갔다.
사라오름 전망대 입구에서 무한 계단을 오르자 탁 트인 산정호수가 나타났다. 산 중턱에 호수라니, 물은 얕았지만, 호수 바닥은 붉은 돌이나 투명한 물속이 너무 신기하고 예뻤다. 아이들도 신기한지 물속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돌아보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산정호숫가의 나무다리를 따라 바깥쪽으로 나가니 산등성이가 내려다보이고 구름이 몽실몽실 떠 다니는 사라오름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에는 이미 도착한 외국인 그룹, 중년 부부, 젊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젊은 친구분께서 사과 대추도 나눠주고 우리가족의 단체사진도 찍어주셨다. 아주 쾌할한 분이셨는데, 마치 전문 사진사처럼 우리의 포스도 설정해주시면서 다양하게 사진을 찍어주셨다. 덕분에 지친 상태에서도 우리가족은 밝게 웃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간단히 간식을 먹고 다시 내려가는데, 마침 해가 나기 시작하먼서 산정호수의 반짝이는 물결을 볼 수 있었다. 반짝이는 산정호수를 보며 조금 더 맑은 하늘을 즐기고 싶었는데 앞선 아이들이 이미 멀어져가고 있어서 서둘어 뒤쫒아 가야 했다. 해가 난 것도 잠시 내려가는 중간중간 소나기가 쏟아졌다. 준비한 우비도 챙겨 오지 못해 우리는 쫄딱 비를 맞으며 내려갔다. 아이들이 먼저 엄청난 속도로 먼저 내려가더니만 중간 이후 지점부터 빗줄기가 강해지고 온몸이 축축해지니 작은 아이가 춥고 지쳤는지 힘들다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울면서 다리를 질질 끌며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랜만의 장기시간 등반이라 나 역시도 마지막 즈음에는 무릎이 아프고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왕복 4시간 반 등반을 무사히 마쳤다. 참으로 갑작스럽고 우여곡절이 많았음에도 값진 경험이었고 아이들도 잘 따라와 줘서 너무 고마웠다. 이제 겨우 처음을 경험했을 뿐이고 시작으로써는 충분한 성과가 있었다. 다음 등반에는 준비도 제대로 하고 조금 더 높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정상까지 갈 수 있겠지? (작은 아이는 앞으로 ‘절대!’ 한라산은 안 간다고 하는데.. ㅎㅎ 시간이 많이 지나고 잘 꼬셔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