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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지나,

by tangerine


저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함께한 서른 해를 지나왔습니다. 그 시간은 쉽지 않았고, 그 사실은 이제 더 이상 감추거나 미화할 수 없는 제 인생의 전반부였어요. 그래서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고 싶어서 공부하듯이 쓴 노트처럼, 수필처럼 올린 글이 위로가 되었다는 댓글을 보며 사실은 제가 더 많이 위로받았습니다. 제 상처가 조금씩 봉합되어 가는 걸 늘어가는 하트와 댓글 속에서 매 순간 느꼈습니다. 남겨주신 모든 댓글과 공감에 제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르 엄마’ 기억에 더 이상 힘들지 않습니다.


연을 끊은 지 3년 차에 비로소 제 안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동안 주변에서 수없이 듣던 위로의 말에 건조하게 '이젠 평화롭다' 하던 그 평화가 아닌, 정말 진정한 평화요.


저는 엄마의 장례식에도 안 가겠다고 다짐했었어요. 이제 저는 그녀의 장례식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제가 이렇게 썼다고 해서 “결국은 용서할 거면 뭐 하러 거리를 두나”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거리를 둬 봐야 그게 어떤지 알 수 있어요. 나르시시스트에게 상처받은 경우, 거리를 두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반드시 전문가(정신의학과, 상담센터)를 찾아가시길 권합니다.


제 글에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는 “혼자라서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거나, “내 파트너는 부모 문제를 작가인 너 탱저린 남편만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어요. 그런 부모와 관계를 지금도 유지하고 계시거나, 앞으로 끊을 예정이라면, 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마음을 정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면증이 오거나 탈모가 올 정도라면, 주저하지 말고 연을 끊는 선택을 하시라고요. (나르시시스트가 눈치채지 못하게 한 달 정도 텀을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파트너가 없으신 분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한동안 “혼자여도 좋아”라는 상태로 지내며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고,

그 건강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혼자서도 잘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누군가 곁에 와도 잘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동물이잖아요. (저는 T에요)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고독을 씹으며, 나와 나르시시스트 부모와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저는 결혼 전부터 지금의 남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회사 동료였고, 이제는 제 평생의 짝꿍이에요. 처음에는 상처가 많고 마음이 힘든 여자를 만나서 어쩌나 걱정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제가 이 우주에서 누군가에게는 제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전 이제, 저 스스로를 좋아해요.


제 사주에 남편 복이 없다고 했다고 나르 엄마가 늘 말했는데요. 그녀 말 대로 된 게 "너 정말 엄마와 연을 끊을 셈이냐"는 말 말고는 하나도 없네요.


여러분도 나르가 하는 말을 다 무시하세요. 전부 나르 본인에게 하는 말입니다.


남편의 꾸준한 사랑과 지지 덕분에 저는 진짜 사랑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갈등도 많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어요. 저는 가족 간의 갈등을 큰 소리나 던져진 물건 없이 끝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이제야 제가 원하던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있어요.


물론 가끔은 엄마의 가스라이팅, 언어폭력, 손찌검이 떠올라요. 그런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게 되면, 그날 밤은 잠들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가족이었기에 남은 좋은 기억도 있고요. 아빠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 시댁 식구들과 웃을 때, 문득 그녀가 떠오르기도 해요.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엄마에게 연락해 볼까. 하지만 늘 결국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같은 패턴의 상처가 기다리고 있음을 저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제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아요. 밝은 글을 쓰고 싶다가도, 엄마랑 연 끊어 놓고 잘 지내는 사람의 자랑처럼 보일까 망설인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제 일기장에만 글을 적었는데요, 앞으로는 제 일상의 사유와 생각을 더 많이 쓰려고 합니다.

이제는 ‘어딜 감히’라는 단어를 들어도, ‘예민’이라는 단어를 봐도, ‘엄마’라는 단어를 들어도 불편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나르시시스트 이야기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여전히 엄마 때문에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글로 적고 싶어질 거예요. 나르시시스트 관련 댓글은 언제든 괜찮습니다. 예전에 쓴 글에 댓글을 남기셔도 괜찮아요. 저는 앞으로도 가끔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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