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문자가 온 건 아주 평범한 밤이었다. 밥을 하고 있었는데,
[잘 지내니? 이제 곧 너의 생일이네~, 괜찮으면 축하도 할겸 엄마가 밥 한번 사고 싶은데 어때~?]
문자가 보였다.
3년 전이었다면, 이 문장 하나가 내 하루를 뒤집어놓았을 것이다.
그녀의 뻔뻔함에 이를 악물며 치를 떨고, 사과 한마디 없는 태도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오는 방식에 분노하고, 남편에게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토해내고, 그 분노가 끝내 죄책감으로 굳어져 나를 조였을 것이다.
며칠 동안 답장하지 않으며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잠 못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건강 잘 챙기세요~]
그게 다였다.
그녀의 이름이 화면에 떴을 때도, 보내고 나서 문자함을 다시 봤을 때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직장 동료에게 의례적으로 답장을 한 것처럼.
몇일 뒤 택배 문자를 확인하다 그녀의 문자를 보았을 때, ‘아, 이런 게 왔었지’라고 하고, 놀라웠다. 아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조금의 자극에도, 그녀가 했던 말들에 고통스러워 브런치에 글을 토해내던 내가, 이렇게 무덤덤해질 수 있다니.
이제는 그녀가 왜 연락했는지, 무슨 의도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양분이 끊기면 시들다 죽어버리는 모든 생명 처럼, 나의 죄책감과 분노, 상처는 그녀의 가스라이팅이 끊기자 내 안에서 사라졌다.
3년 전, 나는 그녀와 연을 끊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이제 비로소, 그녀의 언어는 나를 찌를 힘을 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 졌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두었다면 반드시 연을 끊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더 이상 엄마게 왜 나에게 연락했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녀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의 답변에 엄마가 어떤 기분일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예전 기억나지 않는 직장 동료 같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이제 내 삶에서 중요한 건 내 시간, 내 사랑, 내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다.
나르시시스트와 거리를 두면 머리가 맑아진다. 나에겐 3년이 걸렸다.
사실 양분이 필요했던 건 나였던 적이 없다.
언제나,
내 긍정과 맑은 정신을 빨아먹으며 자라던 건 그녀였다.
그녀와 거리를 둔 뒤로 모든 게 나아졌다.
돈도, 일도, 건강도.
머리도 맑다. 믿기 힘들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