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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Apr 25. 2024

남친과 같이 살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연애 한지 3주 만에 나와 남친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10박 11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친구들은 나에게 그 남자의 진짜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와 미래를 생각할 경우 여행을 꼭 가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을 간다면 평소 환경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이유로 여행 계획이 변경된다거나, 길을 잃거나 위기 상황에서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통해 우리는 원래 알던 이성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탐구할 수 있다. 물론 그 사람의 여행 스타일이 즉흥적인지, 계획적인지 등등의 기본적인 것들과 함께.


우리는 급작스럽게 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남친이 에어비엔비로 취사가 가능한 숙소를 구했다. 매일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하루는 미술관 구경 후, 숙소 근처 식당의 돌 문어 찜을 포장해서 숙소 안에서 먹기로 했다.


너무 배고팠던 커플은 12월의 제주도 칼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숙소로 오면서도, 품 안의 맛있는 돌 문어 찜을 먹을 생각에 행복했다.

숙소에 들어와 서둘러 포장해 온 음식을 한입 먹는 순간, 입 가득 퍼지는 단 맛에 나와 남자 친구 모두 '이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닐 거야... 이걸 위해 20분을 기다려서 포장해 온 게 아닐 거야...' 하고 현실 부정을 하며 다시 먹어봐도 돌문어 요리는 너무 달았다.


제주도 돌문어는 어찌나 비싸던지 그걸 전부 버릴 수도, 그렇다고 계속 먹기에도 힘든 단맛이었다. 문어는 맛있었는데 음식이 너무 달았다.


지금은 귀여운 에피소드이지만, 그 당시 몹시 배고팠던 우리에게 맛대가리 없는 돌 문어는 위기였다.


남친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지 관리를 해야 했던 나는 너무 단 음식에 분노하지도 못하고, 계속 돌 문어를 째려봤다.


절망적인 표정으로 돌 문어를 쳐다보는 나에게 남친은 단 맛만 잡으면 더 맛있어질 것 같다며 자기가 돌문어 요리를 살려보겠다고 했다.

그는 아래에 있는 리셉션에 가서 혹시 청양 고추가 있는지 사장님 부부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 아래는 주인 분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식당이 있었다.


청양고추?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무슨 청양고추? 청양고추 좀 달라고 말하러 간다고? 내가 뭘 들은 거지...?'라고 생각했고 남자 친구는 다녀오겠다고 한 후, 몇 분뒤 정말로 비닐 안에 든 청양고추를 들고 나타났다.


뭐지 이 남자?


나는 다른 음식을 사 먹자고 하거나, 아니면 뭐 라면이라도 사다가 끓여 먹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남친은 청양고추를 구하러 간다고 하더니, 청양고추를 가지고 왔다.


"사장님이 체크인 때 청양고추가 있다고 하셨었어?"

"아니, 그런 말을 왜 해 ㅋㅋ"

"근데 청양고추를 구하러 갔잖아! 청양고추가 없을 수도 있잖아! 무슨 고춧가루도 아니고 청양고추를 구하러 간다더니, 근데 그걸 심지어 진짜 구해왔어!"

"없으면 말려고 했지 ㅋㅋ. 사장님도 몇 개 없는데, 얼려놓은 게 있다고 하셔서 좀 얻어왔어. 기다려봐 이거 넣고 다시 끓여 줄게."

"대단하다 진짜... 멋있다 정말... 오빠도 대단하고 청양고추를 가지고 있는 사장님도 신기하다 정말..."

 

내가 멍 하게 쳐다보는 동안, 남친은 숙소에 있던 양념과 청양고추를 넣고 다시 끓인 돌 문어를 가져왔다.


살아난 돌 문어의 맛에 나는 감탄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는 미식가이고,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남친은 정말 간을 기가 막히게 맞췄다.


적당히 맵단 맵단 한 돌문어를 우물거리며 "너무 맛있어, 어쩜 요리를 이렇게 잘해? 진짜 멋있어!"라고 연신 극찬하자 남친은 매우 기뻐했다.


일단 남친이 요리를 잘해서 호감도가 올라간 것도 있지만, 청양고추를 구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계속해서 칭찬을 해도 그냥 씩 웃을 뿐, 남친이

'나 스스로 생각해도 돌문어를 살려낸 나 자신이 너무 대단하고 멋지다'는 등의 셀프 칭찬을 하지 않는 모습도 너무 좋았다.


다음날 아침 카페에 내려가서 커피를 사 마시면서, 급하게 부탁드렸는데 청양고추를 주셔서 너무 감사히 잘 썼다고 인사하는 남친을 보면서 나는 이 남자와 좀 더 진지하게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한 생활력과 위기 대처능력도 탁월한데, 사회성에 인간성도 갖추었다니.

'이 남자랑 같이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남편에게 그날 맛대가리 없던 돌문어 요리를 살린 행동이 약간의 플러팅을 의도한 것이냐고 물어봤다.


물론 내 남친이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는 아니었다.

돌 문어 요리를 살려내고, 나에게 큰 호감을 얻은 남친은 이후 여행에서 만난 자신의 친구 앞에서

'여친이 운전은 잘 하지만 주차는 썩 잘 못하더라' 라며 신나게 나의 주차 실력에 대해 말한 후, 실수였다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을 사과해야 했다.


난 아직도 주차를 썩 잘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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