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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Jun 14. 2024

착한 며느리병의 시작

관심, 위로 그리고 용돈은 자녀 부부 말고 내 배우자에게 부탁하자

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예능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신과 고전 퀴즈로 교수님들이 처음 하는 질문이 있다. ‘어머니와 배우자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냐?’는 질문이다. 여기엔 의도도 있고, 정답도 있다”면서 “이 질문은 ‘어머니와 배우자 중 내 선택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누구냐’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관계는 배우자다. 결국 내가 선택한 사람을 구하는 게 정신과적으로 건강한 답”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나는 나의 시어머니가 쿨하고 며느리에게 관심이 없으실 줄 알았다. 남편이 자기 엄마는 본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나에게도 간섭이 없을 거라고 말했으니까.


나는 내가 시어머니에게 착하고 친절하게 잘하면 남편 어머니가 나 또한 그렇게 잘 대해 주실 거라고 기대했다. 나는 시부모님들과 가깝게 잘 지내고 싶었다. 그러면 우리 부부가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에게도 관심이 많았고, 아들의 배우자인 나에게도 관심이 많으셨다. 심지어 외동인 내 남친의 외가 사촌 누나들이 남친에게 관심이 너무 많아서 결혼할 상대인 나에게도 관심이 매우 많다고 10번은 반복해서 말하셨다. (늘 내가 듣기 불편한 질문과 말을 하신 이후에는 꼭 이 말을 하셨다. 관심이 많던 말던 그걸 왜 굳이 결혼 전 부터 나에게 반복해서 말하시는지? 친 누나도 아닌 사촌 누나들에 대해 시어머니가 반복해서 언급하신 이유 때문에 나는 결혼 전 부터 시누가 둘인 기분이었다.)


당연히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 막말과 상처되는 말은 하면 안 되는 건데, 요즘 며느리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것처럼 대하면 안 된다는 걸 예능만 틀어도 나오는 세상에서, 시어머니는 그런 걸 모르시는 듯했다. ‘아들의 사촌누나들이 시댁에게 이러이러해서 서운하다고 하더라’라면서 남편과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며 사촌 누나들 편을 들던 시어머니는 나에게도 그 시어머니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부담스럽게 하셨다. 나중에 시어머니는 나에게 모두 다 생각 없이 한 말이라고 하셨다.


나는 항상 웃는 밝은 사람이 아니고, 하기 싫고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안 할래요, 싫어요”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 전부터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 이후에 항상 후회했다. 그냥 남편의 어머니니까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어서 많이 웃고 듣기 싫은 말에도 웃은 건데, 나는 만나면 만날 수록 점점 시어머니가 별로 좋지 않아 졌다.


시어머니는 너무 나와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셨다. 그러면서 시어머니가 원하는 말과 시어머니가 원하는 것들만 나에게 요구하셨다. 내 기분이나 생각은 존중하지 않은 말들과 요구였다. 가깝고 친해지고 싶다고 하시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등등은 전혀 묻지 않으셨다. 오로지 시어머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부담스러운 질문만 하셨다.


나는 시어머니가 하시는 하나 마나 한  말들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냥 웃어넘겼었다. 나는 착한 며느리 병에 걸렸었으니까. 어머니는 시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멘트도 자주 하셨다. 그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너 시댁이 해외에 있기 때문에 나보고 100점짜리 시어머니래!”였다. 어머니는 이후로도 본인이 백 점짜리 시어머니라는 말을 주변 지인들이 한다고 나에게 두 번 더 말하셨다.

그 말을 하신 후 1년 뒤 어머니는 한국에 들어와 사신다.  자, 이제 한국에 사시니 어머니는 몇 점짜리 시어머니실까?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하시다니, 그런 말을 듣던 당시 매우 민망했었지만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때 알았어야 한다. 시어머니는 먼 미래나 변수를 생각하며 말을 하는 분이 아니라, 순간순간 그냥 떠오르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라고. 혹시나 정말로 본인이 좋은 시어머니라는 생각을 내가 하길 바라서 그런 말을 하신 거면, 정말 안타깝다.


시어머니는 또 누구나 들으면 기분 나쁠 말도 하셨다. 대표적인 발언은 결혼 전 신혼집에 찾아오신 시어머니가 살이 찐 나에게 “네가 근데 처음 봤을 때보다 살이 많이 쪘다고 아들 사촌 누나들한테 이야기했더니 너 결혼식 앞둔 애가 살찌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 “이다.  그러면서 “나는 근데 너가 살쪄서 더 예뻐 보인다고 말했어.” 라고 하셨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말을 예비 시어머니에게 들은 후 당황해 웃어넘기며 “맞아요 제가 살이 좀 쪘죠, 빼야 하는데...”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시어머니는 집 근처 호수공원을 시간 날 때 뛰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살찐게 더 예뻐보인다고 하셨다면서요 어머니^^


만난 지 3번째 되는 때에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은 남자 친구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듣고 나는 매우 속이 상했다.


그날 아침 출근을 하던 남편은 그냥 택시를 잡아드릴 수도 있고, 알아서 대중교통을 타고 가시라고 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집까지 데려다 드릴게! 대중교통은 복잡해! 라며 운전을 해서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살이 좀 쪘다고 어머니를 통해 남자 친구 사촌누나들에게 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을 알게 된 마당에, 차로 집까지 태워 드릴 기분은 아니었지만 남편과 한 약속이 있어서 나는 어머니를 운전해서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모셔다 드린다고 했고 그렇게 어머니를 운전해서 모셔다 드리는 길에 어머니는 차로 데려다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괜찮아요! 저 운전하는 거 좋아해요! “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너 내가 앞으로 차 태워달라고 자주 말하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말하니 호호호!”라고 대답 하셨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때 눈치 챘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는걸. 그리고 아들에게도 예정에 없던 사소하고 큰 부탁을 자주 하시는 분이라는걸. 나중에 결혼하고 보니 그래도 그나마 아들에게는 바쁜데 미안하다고 말하며 부탁하시더라.


지방에 있는 시어머니가 가진 집을 살펴보러 왕복 5시간을 차로 운전해서 가는 일을 나에게는 부탁도 명령도 아닌 이상한 말투로 제안 하셨다. 시어머니는 나에게는 전혀 미안해 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부탁을 늘 이렇게 말하셨다. “이러이러 저러한데 너가 좀 해줄수 있니?” “너가 나중에 운전해서 와서 집 상태 봐주고 가는거 어때?“


결혼한지 1년도 안되서 시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내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인상을 찌푸리며 저도 시간을 보고 스케줄을 봐야 해서요. 라고 대답하는게 내 최선이었다. 웃으며 하는 제안을 가장한 그 이상한 말들은 사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조심스럽고 어렵고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부탁하셔야 하는 일들이었다. 나는 아들과 결혼한 남의 집 귀한 딸이니까.


남편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의 시간은 귀하고. 며느리 시간은 안 귀하다고 생각한다는걸 나는 느꼈다.


나는 남편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시어머니를 차로 집에 태워드리고, 연락을 하고 상냥하게 말하는 등의 친절을 보인게 아니라, “남편”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그렇게 잘하려고 했던 거였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엄마라는 사실 단 하나 때문에 나는 내 진심 이상으로 시어머니에게 친절하려고 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면 시어머니도 나를 존중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아서 그녀에게 친절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남편이 좋아서 그랬던 거다. 남편은 정작 내가 자신의 엄마와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내가 내 부모님과 남편이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시어머니는 결혼 전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앞 좌석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래 결혼 준비를 하면 자주들 싸운다고 하던데, 우리 커플이 싸우지는 않았는지 남편 사촌누나가 궁금해한다며 우리가 다툰 적이 있는지 우리 둘에게 물어보셨다.


결혼 전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던 중 어머니는 갑자기

 

”얘, 근데 내가 너 번호가 없더라.” 라고 말하시며, “주변 지인들이 내가 며느리 번호를 아직 모른다고 하니까 그런 경우가 어딨냐고 그러더라고.” 라고 말하셨다. 마치 내가 전화번호를 당연히 줘야 하는데 안 알려준 것처럼 말하셨다. 웃으며 말이라도 하셨으면 나도 웃어 넘겼을 텐데, 뭔가 단호한 어머니의 표정과 말투에 기분이 나빴다.


그 지인들과 모여 며느리들 이야기를 얼마나 하실지 생각만 해도 싫었다. 할일이 그렇게들 없으신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나에게 번호를 알려 달라고 물어보시면 그냥 쉽게 알려 드렸을텐데,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 내가 경우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번호를 알려 드렸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나와 남편이 식사 대접을 하던 날, 시어머니는 또 다시 뭔가 언짢은 표정과 말투로 나에게


“너 전화 번호를 아직도 내가 몰라 얘.” 라고 말하셨다.

남편이 어이없어 하며 “전에 물어봐서 알려줬잖아.” 라고 대답하자 어머니는 아닌데... 없는데 하시다가 내 번호를 발견하고는 머쓱해 하셨다.


나는 신혼여행지에서 아들도 안하는 연락을 먼저 하고 사진도 보내드리고 안부 인사를 물었는데, 시어머니가 나에게 딸처럼 대하겠다고 말하신게 이런걸까 싶었다.


결혼 전 부터 시어머니에게 필요 이상으로 잘 해드리면서 나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내 시어머니는 내가 웃으며 잘 해드리면 잘 해드릴 수록, 나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 해야 겠다고 생각 하시는게 아니라,

’어라? 얘는 듣기 불편한 말을 하고 이거저거 부탁해도 그저 마냥 웃으면서 더 싹싹하게 잘하는 만만한 애구나‘ 라고 생각하신다는 것.


주변 지인들이 물어본 것, 주변 지인들이 한 말을 빌어 시어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꽤나 기분이 나빴고 어이가 없었다. 내 기준과 상식에서는 ‘너희 둘은 싸운 적이 있니?‘ 와 같은 질문은 결혼을 앞둔 만난 지 5번도 안된 며느리에게 할 질문이 아니고 번호를 받고 싶으면 그냥 번호를 달라고 말하시면 될 일인데, 왜 시어머니가 내 번호를 결혼전에 모른다는 이유로 나를 불편하게 하시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만난지 얼마 안 된 사람인 시어머니와 별로 갈등을 만들기 싫었다. 그냥 참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니까, 별로 내 기준에서는 맘에 안들고, 무례한 말을 하는 내 앞의 이 어른이 그래도 앞으로 내가 시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분이니 그냥 웃고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별로 자주 만나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남편이 시어머니가 가족 단톡에 초대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하실 때마다 그건 안된다며 내편이 되어서 막아주었기 때문에 단톡 간섭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시어머니는 여러차례 단톡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하셨다. 내가 시어머니의 제안들을 웃으며 거절하기 힘들만큼 서로 친하지 않던 시기에 정말 자주 물어 보셨다.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물어보실 때도 많았다. 정말 속이 훤히 보이는 순진한 시어머니셨다.


그 이후로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의 주변 지인들이 우리 부부의 생활비 관리 문제나, 아이를 낳는 문제와 관련돼서 질문을 했다며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으셨고, 나는 여러 번 어머니에게 속이 상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자신의 궁금증을 나에게 물으면 그나마 좋은 시어머니가 될 줄 착각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와 나에 대한 정보가 나는 얼굴도 모르고 존재도 모르는 시어머니 지인들과 시어머니의 수다 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다.


어머니는 결혼식에 남편 사촌누나들의 자녀들이 화동을 하면 어떻냐는 말을 3번이나 물어보셨다. 처음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분명 싫다고 내 의사를 전달했고, 남편도 우리 애들이 아닌데 우리 결혼식에 왜 조카들이 화동을 하냐고 거절했다. 시어머니는 이후로도 나를 볼 때마다 화동 관련 질문을 반복해서 하셨고 나는 시어머니가 매우 고집 있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시어머니는 나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남편이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한 후에도 가끔 부탁하는 말을 몇 번 더 하셨고, 그때마다 남편이 정색하며 단호하게 안된다며 더 이상 물어보지 말라고 말하면, 시어머니가 그때는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는 거였다.


만약 내가 나르시시스트인 우리 엄마와 연을 끊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양가에서 하는 선 넘는 질문들로 인해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나의 나르 엄마는 더한 참견과 간섭을 했고, 시어머니가 하시는 막말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막말을 나와 내 남편에게 결혼 전부터 퍼부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와 절연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의 아빠는 우리 부부에게 정말로 “너희 둘이서 잘 살면 된다.”라고 말한 후, 가족 행사에 부르지도 않고 우리에게 부탁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결혼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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