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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May 27. 2024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남자친구가 만났다

너나 잘하세요

엄마는 “걔 얼굴 좀 보게 어떤 앤지 궁금하니까 집에 데리고 와라.”라고 했다.

역시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명령조로 마치 자신의 부하 직원을 호출하듯이 나에게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명령’했다.


당시에는 내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지만, 나는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 엄마는 나르시시스트이다.  


내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연락을 해서 방해하고, 나의 귀가 시간을 통제하고, 1분이라도 집에 늦으면 폭언과 나를 향한 날 선 비난의 말들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또한 내 남자 친구를 매일 비난했다. 내가 남친 칭찬을 하기라도 하면, 행복한 연애를 하는 딸을 보고 흐뭇해하는 다른 부모들과 달리 질투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그 자상함이 얼마나 갈 것 같냐고 비아냥 거렸다.


“처음에는 누구나 간이나 쓸개나 다 빼줄 것처럼 굴지. 걔가 잘해준다고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면 넌 좋니?”


엄마의 저런 수준 낮은말들을 평생 듣고 자랐기에, 나는 이 정도의 말들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남친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 대해서는 매우 걱정을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엄마였기에 남친 앞에서 나에게 늘 하는 무슨무슨 년, 딸년, 이년, 저 년아 등등의 말은 물론,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할 만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엄마는 늘 가식적이었다. 가면을 10겹은 쓴 사람처럼, 아니 마치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표정과 말투가 평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가족 앞일 수록 엄마의 가면은 얇아졌지만, 가족이더라도 평판을 관리해야 하는 관계의 경우에는 과장된 표정과 우아한 꾸며낸 말투, 그리고 가끔은 권위적인 척하는 말투와 단어 선택을 하며 대화를 하곤 했다. 엄마는 대하는 사람마다 말투와 행동이 달랐다. 필요할 경우, 가족이라면 누구나 눈치챌 만한 거짓을 섞어가며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늘 혼란스러웠다.


성인이 돼서 나에게도 본인이 내가 필요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목소리와 말투를 바꿔가며 태도를 달리하는 엄마를 볼 때면, 구역질이 났다.

그런 본인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 안 하는 내가 엄마는 멍청하고 호구 같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녀 스스로 조차 속이며 매 순간 계산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런 엄마와 남자 친구가 만나는 자리에 대해서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엄마가 마치 우리 외갓집이나 우리 가족이 대단한 사람들인 양 말을 부풀려서 할까 봐였다.

그 이후 그 말에 대한 설명과 정정은 내가 해야 할 몫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제발 평소 하는 것처럼 이상한 거짓말들로 우리 가족이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엄마와 만나기 전 남자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일반적이지 않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선 넘으면서 물어볼 수도 있고, 오빠 부모님에 대해서 선 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어. 인생 계획이 뭐냐고 물어볼 수도 있어. 오빠의 비전과 야망이 뭐냐고 대놓고 질문을 할 수도 있어. 그냥 그런 거 확인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거니까 너무 깊게 고민하면서 대답하지 않아도 돼.”


남친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명함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여자 친구 엄마를 만나는 자리에 명함을 왜 가지고 나가냐고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명함을 건네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명함을 건넬 때 자신의 이름이 받는 사람 쪽으로 가게 건네는지 아닌지를 보고 있다가, 누가 실수로 명함을 받는 사람 시선에서 반대로 보이게 건네는 경험을 할 경우, 퇴근 후 집에 와서 그 멍청한 연놈들을 보면 걔네가 왜 관리자로 승진하지 못했는지 뻔히 보인다며 비난해 댔다.


이런 엄마의 습성을 알고 있기에 나는 남친에게 명함을 하나 준비해서 엄마에게 첫 인사 하자마자 건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빠. 나도 X 같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렇게 인사 안 하면 진짜 병신 취급해 우리 엄마는. 그냥 명함 주고 뒷말 안 나오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안 그러면 언니랑 계속 명함도 안 가져왔다고 씹어댈 거야.”  

“아, 그래 그러지 뭐ㅋ. 근데 명함 어딨 지? 안 쓴 지 엄청 오래된 것 같은데.”


남친은 회사 생활 하면서 잘 쓸 일도 없던 명함을 찾았다.


그리고 엄마를 만났다.


남자 친구가 도착하자, 나르 엄마는 특유의 이상한 말투를 장착하고 남자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식탁에 앉고 나서 남자 친구는 엄마에게 명함을 건넸다. 나르 엄마는 명함을 건네는 남자 친구를 보며 그래, 그래야지 라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명함을 줘야지.”


엄마는 식사를 하는 내내 남자 친구에게 이상한 질문을 많이 했다.

“oo 씨는 왜 박사는 안 했어요?”

나는 남친에게 엄마를 만나면 분명 왜 박사를 안 하냐고 말할 거라고 미리 말했다.


“그래도 박사를 해야 할 텐데, 부모님들은 박사 하라고 말 안 하셔요?”

왜 박사를 안 하냐고, 박사 하라고 강요할 거라고 남자 친구에게 미리 경고도 해 뒀었다.


“oo 씨는 회사에서의 최종 목표가 뭐예요?”

이런 이상한 인생면접 같은 질문을 엄마가 물어볼 것이라고도 남자 친구에게 미리 말했다.


“우리 tangerine 이는 크게 될 아이예요. 그걸 oo 씨가 아는지 모르겠네?“

나에게 니 까짓게 주제도 모르고 밥벌이하게 된 게 다 엄마 덕분이니 돈 번다고 나대지 말라고 욕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오은영에 빙의해서는 내가 크게 될 아이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나는 사실 이때 많이 놀랐다. 나는 평생 엄마에게 너는 크게 될 아이야 와 같은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너는 엉망으로 살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고 가스라이팅을 당한 적은 많아도.


엄마는 근엄한 척하는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중요한 것은, 엄마 목소리가 근엄하지 않고 근엄한 척하는 목소리라는 것이다.

(엄마는 항상 뭔가 x 같은 걸 요구하거나 명령조로 말할 때 늘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어이없는 요구이기 때문에 이런 목소리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도 기괴하고 정말 이상한 목소리다.)

“내가 오늘 한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 oo 씨가 이해했는지 모르겠네요. 내 말을 알아 들었기를 바라고, 다음에 만날 때는 1년 계획하고 장기적인 인생 계획에 대해서 플랜을 짜서 정리해서 가져와 주면 좋겠어요.”


나르 엄마는 늘 가족들에게 중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라고 강조했다. 본인도 살 빼겠다고 하는 본인 인생 계획도 지키지 못해서 뚱뚱하게 지내면서, 늘 아빠, 언니 그리고 내가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신랄하게 비판했다.


마치 자신이 다른 가족들보다 우월한 나머지, 한심하게 산 너의 인생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질문을 하며, 그 방향도 내가 올바르게 지도해 주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엄마는 스스로 믿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리고 늘 다른 가족들에게 인생 계획과 재테크 계획 등에 대해 정리해서 자신에게 가져다 달라고 했다. 부탁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만약 친구 더 많이 만들기, 성적을 올리기 등등의 계획을 써 가면 엄마는 짜증과 비아냥 섞인 목소리로 계획을 이렇게 대충 세우면 뭘 하겠냐고 비난했다.

“친구를 뭘 더 만들어? 이런 건 목표가 아니야 지워. 성적을 뭘 얼마나 올릴 건데? 구체적이지 않아 다시 써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이런 엄마의 계획표 써오기 명령을 거부했다. 내 다이어리에 나만 보게 적을 거고, 학교에서도 계획 세우기 등의 활동을 하니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싶어서 핑계를 대는 거라며 분노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연말 연초가 되면 엄마는 늘 기분 좋게 대화를 하는 가족들에게 갑자기 정색하며 근엄한 척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올해를 충분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니? 내년에 더 나은 네가 되려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니? 너는 내년 목표와 계획이 뭐야?”

가족들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거나, 별로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거나, 자신만의 계획과 목표에 대해 말할 경우 엄마의 반응은 늘 같았다.

자신의 질문을 왜 회피하냐고 뭐라고 하고, 계획을 생각해 본 적이 왜 없다고 코웃음 치며 비난을 하거나, 상대의 계획이 얼마나 쓸데없고 잘못된 방향인지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놨다.  


내가 그런 질문과 요구를 거부하며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엄마는 매년 살 뺀다고 하면서 살도 못 빼면서 왜 다른 사람들 목표나 계획을 통제하고 비난하려 하냐”라고 말하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 장기적인 계획을 사람이 늘 세우면서 살아야 올바른 방향으로 사는 거야! 엄마가 살을 못 빼는 건 너희 낳으면서 찐 살이어서 그런 거야! 낳아준 엄마에 대한 고마움도 모르는 년. “


중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며 사는 것은 좋다. 나는 지금도 남편과 1년, 5년, 10년 후 계획을 같이 이야기하며 살고 있다.

남편과 나는 중간중간 상황에 따라 수정도 하고 변경도 하며 우리 인생에 대한 계획에 대해 서로 의논한다. 하지만 그걸 텍스트로 어딘가에 적어서 서로 체크를 한다거나, 서로의 세부적인 목표 (책을 더 많이 읽는다거나, 살을 뺀다던가 하는)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고 그 방향에 대해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나의 남자 친구에게 인생 계획을 요구하며 정리해서 보여달라고 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소름이 돋았다.

늘 남편과 두 딸을 통제하고 인생 계획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던 엄마는 이제는 내 남자 친구에게도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이후 나에게 나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걔는 생긴 것도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야망도 별로 없어 보이고, 가진 것도 없는데 뭐가 좋아서 사귀니? 너 사람 보는 눈이 이상해 내가 보기에.”


나중에 남자 친구에게 엄마랑 만났을 때 어땠냐고 물어보니 내가 말한 그대로 여서 신기했다고 했었다. 그게 나의 엄마와 남편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엄마는 이후로도 선 넘는 말을 하며 나와 남친을 모욕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남자 친구가 한번 갔다 온 사람이 아닌지 확인하겠다며 혼인사실확인서를 발급받아서 자신에게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등신처럼 나는 남자 친구에게 그것을 부탁해서 엄마에게 보여줬고, 엄마는 그걸 보고는 질병이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하니, 건강 검진도 해서 제출하라는 개소리를 해댔다.


나는 결국 엄마와 손절을 했고, 결혼식에도 부르지 않았다.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손절한 것만 봐도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 같다.


나르 부모는 손절만이 답이다. 슬프게도 정말 손절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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