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과 당당함의 불완전 곡선
딸기가 그려진 요플레의 뚜껑을 뜯어 혀로 핥고는 버린다. 조그만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가득 떠서 입안에 쏙 넣는다. 한 입, 두 입. 앙증맞은 통에 들어있는 하얗고 걸쭉한, 액체인지 고체인지 헷갈리는 그것이 조금씩 사라진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학교 앞 슈퍼에서 교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가는 동안 내 친구는 네 가지 색깔 볼펜을 테이프로 감아 깜지 숙제를 한 아이가 영어 선생님한테 걸려서 손바닥을 열 대나 맞은 이야기를 감질나게 조잘댄다. 조그만 숟가락도 부지런히 입 속을 들락거린다. 힘들어도 볼펜은 두 개쯤만 묶어야 걸리지 않는다고 나는 맞장구친다. 안 보려고 애쓸수록 눈은 자꾸만 그 애의 손을 향한다. 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무슨 맛인지 너무 궁금하다. 싹싹 긁어모은다. 마지막 한 숟갈. 그것마저 그 아이의 입으로 직진하고, 하얀 통과 귀여운 숟가락은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숟가락질 몇 번이면 없어질 그것이 400원.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비쌌다. 내 친구는 돈이 풍족했다. 나는 늘 빈털터리였고. 그 애가 나를 좋아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난 가끔 슬펐다. 그애랑 있으면 돈보다 중한 게 많다는 내 믿음이 가식으로 느껴졌으니까. 교문을 나서면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이랑 어울려 호랑이 분식점으로 갔다. 거기 단골이었다.
학교가 파했다. 우리 동네 사는 희승이는 2번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 30분이면 걸어가는데 왜 버스를 타는지 모르겠다. 만화방을 지나면 주황색 분식 포장마차가 보인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떡볶이는 한 접시에 100원인데, 내 주머니는 오늘도 텅텅 비었다. 먹잘 것도 없는데 비싸기만 한 요플레가 떠올랐다. 친구의 숟가락이 오가는 그 작은 통을 보며 부러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이 목구멍에 걸렸었다. 성골롬반 병원으로 가는 언덕이 나타난다. 구불구불한 대성동 길을 지나 용꿈 여인숙을 돌아가면 길이 좀 더 반듯하고 넓어진다. 어쩌면 ‘한 입 먹어볼래?’라는 말도 안 할 수 있지? 남 먹는 거 옆에서 쳐다만 보고 있는 게 얼마나 비참한데. 태연한 척 하느라 애썼는데 티는 안 났겠지?
한참 가다 보면 높고 두꺼운 회색 시멘트 담이 길게 펼쳐진다. 가시 철망이 감긴 높은 담을 따라 걸었다. 손가락 끝으로 차가운 시멘트를 훑으며 감시초소를 지나쳤다. 그런데 도대체 걔는 공감 능력라던가 배려심 같은 건 없는 건가? 혼자서 집에 갈 때 사 먹던가. 하여간 곱게 자란 것들은 순수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그걸 못 얻어먹어서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도 침이 고인 내 입에 화가 났다. 교도소의 길다란 담이 끝나면 산정 3동 삼거리가 금방 나온다. 거기서 위로 난 골목길로 올라가면 거의 마지막에 내가 중학생이 되어 맡겨진 곳, 우리 외삼촌 집이 있다.
무슨 일인지 집에 아무도 없다.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문득 전화번호부 위 초록색 종이조각에 눈이 갔다. 다가가니 만 원짜리 한 장이 곱게 접혀 있었다. 심장이 기차처럼 달렸다. 손바닥에 땀이 밴다. 이 돈이면 친구들이랑 분식점에 가고, 오는 길 만화방엘 매일 들를 수 있다. 요플레! 그것도 몇 개고 먹을 수 있다.
잠바도 걸치지 않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작정 걸었다. 돌아오면 없어진 걸 금방 알아채겠지? 혹시 모르고 넘어갈지도 몰라. 밖에서 잃어버렸다거나 다른 데 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발이 이끄는대로 매일 다니던 교도소 길로 갔더니 금방 학교 앞이었다. 이제 어쩌지? 학교 바로 옆 골목에 시골 동네오빠 자취방이 있다. 겨울방학 때 수학을 배우러 몇 번 갔었다. 그 골목에 들어갔다. 오빠한테 맡길까? 그냥 다시 집에 가서 올려놓을까? 대문 옆 담벼락 아래 잡풀이 군데군데 나 있다. 쪼그리고 앉아 그걸 손으로 뜯고 있는데, 방법이 생각났다. 여기다 숨기자. 뾰족한 나뭇가지를 가져와 흙을 팠다. 돈을 넣고 흙을 덮고 발로 꾹꾹 밟았다. 완전범죄를 끝낸 양 오돌토돌한 떨림이 느껴졌다. 하나님, 외삼촌이 모르게 해 주세요.
들어가면 벌어질 일이 두려워 밖을 떠도는데 점점 어둑해졌다. 티셔츠만 입고 나와 오슬오슬 추웠다. '네가 가져갔지?' 나를 닦달할 외삼촌의 성난 얼굴과 잘못되면 일어날 무시무시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나를 모범생으로 알던 사람들의 실망한 표정들이 스쳤다. 아니, 내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지? 양심보다 그동안 이뤄 놓은 것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도저히 안 되겠다. 되돌아가 다시 땅을 팠다.
식구들이 안방에서 저녁 먹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평온했다. 주머니에서 꼬깃한 만 원을 꺼내 거실 구석 빗자루 밑에 슬쩍 보이게 밀어 넣았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디 갔다 이제 오냐."며 숙모가 수제비 한 그릇을 떠 왔다. 숙모가 발견하겠지? '이게 왜 여기 있지?' 의아해하면서. 나는 모르는 척할 것이다. 뜨끈하고 쫄깃한 수제비를 후후 불어 넘기니 구겨졌던 속이 조금씩 펴졌다.
여전히 시골에 계시는 엄마, 아빠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없고 십 원 한 푼 보낼 형편이 아니었다. 나도 내색하지 않았다. 외삼촌은 넉넉했지만 내게 용돈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다. 어느 날, 고모네 집에 놀러 갔는데 고모가 만 원을 쥐어 주었다. 자주 놀러 오라며 빛처럼 환하게 웃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오렌지맛 나는 얼린 빠빠오는 50원인데, 양은 요플레보다 서너 배는 많았다. 나는 그걸 사 먹었다. 고모 집에 자주 가면 미안할 일이다. 꽝꽝 얼어붙은 주황색 덩어리를 입을 크게 벌려 갉아먹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새콤달콤한 맛이 환상적이었다.
요플레를 힐끗거리던 눈과, 초록색 만 원을 바라보던 눈은 같은 것이었다. 부족함이 끌어낸 부끄러움은 땅 속에 꽁꽁 숨겨 놓고서, 나는 더 명랑하고 밝아졌다. 쪼그라든 마음과 짓누르는 불평등을 초월하고 싶었을까? 아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나 조차도 그러지 못하게.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많이 쌓아 두지 못했다.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속이 쓰리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젠 어떤 이의 요플레를 탐내지 않는다. 내 손으로 사 먹는 빠빠오로 충분하다.
아! 빠빠오 먹고 싶다. 얼린 서주 빠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