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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성당과 분홍장미가 있는 풍경

딱 적당한 5월 아침

by 솔향

"와! 분홍 장미네요!"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 옆에 서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하얀 울타리 사이로 분홍 장미가 여기저기 고개를 쏙쏙 내밀고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초록 이파리만 울타리를 감고 있었는데, 그새 꽃을 피워냈다니. 5월이라 시골 주택 대문에, 담벼락에, 울타리에 빨간 장미가 많이 피어 기분을 들뜨게 했지만, 분홍 장미는 처음이다. 고 은은하고 순수한 빛깔에 마음이 콩닥콩닥해진다. 분홍빛이 저리도 설레는 색이었나. 바라보는 내 눈도 순수해지는 것 같다. 월요일 아침 등굣길 학생맞이를 나왔는데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한껏 부푼다.


학교 건너편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운데 뾰족한 첨탑을 품은 아담하고 예쁜 성당이 있다. 하얀 나무 울타리를 둘렀는데 4월엔 벚꽃과 어우러지더니, 5월이 되자 순결한 분홍 장미를 내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의 벚나무 그늘에는 벤치가 있어 거기 앉아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잡는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시골은 대부분 인적이 드문드문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성당 앞과 옆에 제법 큰 규모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어 아침과 오후면 아이들과 학부모로 북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분홍 장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많아 마음이 놓인다. 그러지 않으면 얼마나 아까울 거야.


녹색 어머니 회원들과 안전 도우미 선생님의 신호에 맞춰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온다. 줄 지어 멈추는 자동차에서 아이들이 내려 운전석에 앉은 이에게 손을 흔든다. 곧장 들어오지 않고 아침부터 교문 앞 문구사에 들렀다 나오는 아이들의 손에는 군것질 거리가 들려있다. "안녕, 어서 와. 오늘도 즐겁게 보내." 장미가 바라다 보이는 교문에서 미소로 아이들을 맞는다. 공손히 두 손을 배에 모으고 인사하는 아이, 아침부터 지친 얼굴의 아이, 무표정한 아이,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 친구를 기다리다 반갑게 손잡고 들어오는 아이, 환한 얼굴로 하이파이브하는 아이, 자기 이름 아냐고 물어보며 작은 형, 큰 형 이름까지 일러주고 가는 아이, 무리 지어 왁자지껄 걸어오는 아이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게 즐겁다.


1학년인 서영이는 아까부터 엄마랑 헤어지지 못해 아직도 빠이빠이를 하고 있다. 아이고, 이렇게 애절해서 어쩌누? 쌍둥이 민성이는 매일 손에 만 원짜리를 들고 문구점에 들르는데 오늘도 과자 껍데기를 바닥에 던진다. "일루 와, 일루 와. 민성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지? 어서 다시 줍자." 명색이 선생인데 교육은 시켜야지. 4학년 동훈이는 "우리 선생님 아직 안 오셨어요?" 자꾸만 물으며 옆에서 왔다 갔다 거린다. 담임선생님바라기이다.


"안녕하세요? 예쁜 선생님." 2학년 한결이다. 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래. 잘생긴 한결아, 어서 와." 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보냈다. 처음엔 나한테만 이쁘다고 하는 줄 알았지. 전 교장 선생님이 퇴임하시고 젊은 교장이 와서 이쁘게 보였나 생각하고 기분 좋아했더니, 모든 선생님들에게 예쁜 선생님, 잘생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하는 녀석이란다. 벌써부터 사회생활 요령을 익히다니. 흠흠.


결혼을 앞둔 2학년 총각 선생님이 씩씩하게 인사하며 지나간다. 웃는 잇몸이 싱그럽다. 그렇지.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겄지. 좋을 때다. 결혼의 쓴맛은 나중에 조금만 맛보길. 상큼한 향이 바람에 날려 코끝을 스친다. "와! 저 건너편에 있는 장미 향기가 여기까지 날아오네요." 눈을 반짝이며 지킴이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무심하게 "아닐걸요." 이런다. 글쎄, 그렇겠지. 가까이 있어도 맡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멀리에까지 향기가 퍼질 리 없지. "방금 들어간 선생님 향수 냄새 같은데요." 하고 덧붙인다. 이럴 땐 나도 참 맹하다. "아, 그렇구나! 어쩐지." 뻘쭘해서 박수까지 치며 헤헤거렸다. 장미향이라 헷갈렸잖아. 건너편에서 분홍 장미들도 쿡쿡 웃음 짓는다. 나도 그쪽으로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어머나, 이유불문하고 볼 때마다 어쩌면 저리도 사랑스럽냐.


아침공기가 아이들의 재잘거림만큼이나 상쾌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다. 적당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5월엔 그런 날이 많다.


적당한 걸 좋아한다. 훌륭하긴 어려우니 괜찮은 사람이라도 되고 싶다. 허용적이지만 할 말은 하고, 베풀 줄 알지만 호구는 안 되며, 겸손하되 무시당하지 않고, 갈아 넣을 만큼 열심이진 않지만 기본 이상은 해내며, 게으르지만 책임은 다하며 살아가려 늘 되돌아본다. 아, 말은 좀 많은데 한 만큼 들으려고 채찍질 중이다. 분홍 장미가 흔들리고, 아이들의 샛노란 발걸음이 귀를 간질이는, 알맞은 온도의 설레는 5월 아침. 그만큼 좋은 사람이고 싶다. 딱 적당하게 좋은 사람. , 쓰고 보니 '적당히'가 힘들겠군. 그렇다면 뭐, 6월 아침 쯤도 괜찮고.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학교 앞 ㅇㅇ성당 / 솔향


분홍빛 수줍음이

동그란 얼굴을 쏙 내밀었다


낮은 창을 든 하얀 보초병 사이로

소녀처럼 옷깃에 얼굴을 숨기고

가느다란 초록 소매만 길게 늘이다

드디어 하나하나 용기 낸 걸까


반달눈으로 달려와 해인이 손을 잡는 주하

영영 헤어지는 것처럼 빠이빠이하는 서영이

과자 껍데기 쓱 버리고 뛰어가는 민성이


하루를 칠하는 아이들의 색깔이 궁금해

빼꼼, 겹겹의 호기심을 펼치고야 말았구나


아침 공기 스민 연두색 교문

어린것들의 노란 재잘거림에

발그레한 사랑스러움 한 줌 더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낼모레 결혼할 총각선생님이 지나간다

오월의 향기가 날개를 살랑이며 콧속으로 날아든다

신기하네요 저 건너 장미향이 여기까지 오네요

아닐걸요?


붉어지지 않는 순수들이

수녀처럼 입을 가리고 웃는다

채비하던 설렘 하나 둘 톡톡 웃음을 터뜨린다


※ 시 쓰기 쌩초보의 연습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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