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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버리KAVORY Nov 11. 2023

지켜주고 싶은 장인의 맛, 그리고 만원의 행복

서울 남영동 하나모코시

과거 남영동의 영광을 이끌었던 열정도라는 거리가 있다.

젊은 자영업자들이 식당을 내며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

'O리단길'같은 문화거리를 만들었던 이 지역은 재개발을 앞두고

찾는 이도 줄어들고 자연스레 문을 닫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는 지도에 길조차 표시되어 있지 않은 숨은 맛집이 하나 있다.

바로 라멘집 '하나모코시'가 그곳이다.

하나모코시는 일본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라멘집으로

후쿠오카에서 미쉐린 가이드 1 스타를 받은 라멘집

'멘도 하나모코시'의 점장님이 노렌와케*를 받아 한국에 차린 라멘집이다.

*노렌와케(のれんわけ): 장기 근속하거나 주인이 인정할 만큼 실력을 가진 종업원에게 매장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일본의 문화. 노렌와케를 받으면 매장 입구에 설치하는 노렌을 같은 이름으로 내걸 수 있다.

네이버 지도 : 하나모코시

하나모코시는 지도에도 보이지 않는 골목길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모코시 진입로

지도를 따라간 뒤 로드뷰에 보이는 저 좁은 골목 안쪽에 하나모코시가 위치해 있다.

골목 초입에 보이는 하나모코시 안내

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파란 지붕집이 보인다.

하나모코시 외관

하나모코시는 사실 2018년에 오픈한 꽤나 오래된 집이다.

오픈 당시에도 매일 완판행진을 하며 화제가 되었는데

첫 1년 동안 사장님의 건강과 개인 사정으로 잦은 휴점 끝에 1년이 채 되지 않아

장기 휴업을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꽤나 힘든 일이 많이 겹치셨던 것 같은데 사장님을 응원하는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긴 공백을 깨고 2019년 11월 6개월여 만에 영업을 재개해 현재까지 영업 중이다.


예전만큼 많은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 점인데

피크 타임을 조금만 피해도 꽤 여유 있게 식사가 가능하다.

상권의 문제도 있을 테고 잦은 휴점으로 이탈한 손님도 있을 거라 본다.

직접 면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그 퀄리티가 워낙 뛰어나

이곳의 면을 납품받아 사용하는 곳들도 꽤나 있다고 들었다.


하나모코시의 메뉴는 단순하다.

닭 육수를 베이스로 한 '토리소바'.

특제소스로 비벼 먹는 '마제멘'

이 2가지가 메인 메뉴.

추가 메뉴로는 토리소바의 추가용 면사리인

'특제소스 카에다마'.

그리고 닭다리살을 다져 만든 '소보로 고항'.

이 4가지가 전부이다.


닭으로 토리소바의 육수를 뽑아낼 것이고

그 닭의 가슴살은 차슈 토핑으로 따로 사용한다.

그 닭의 다리살은 곱게 다진 뒤, 특제 소스를 곁들여 소보로 고항으로 낸다.

마제멘은 토리소바와 면 배합, 두께도 다르고

토핑도 다르니 완전히 별개의 메뉴라 볼 수 있다.


'누들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라멘집들의 가격이 상향평준화 되었다.

프랜차이즈 라멘집의 기본 가격이 10,000원부터 시작하고 전문적으로 라멘을 파는 곳들은

이미 기본 12,000원~13,000원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추가 토핑과 음료를 곁들이면 1인에 20,000원을 훌쩍 넘긴다.

반면 하나모코시는 메인 메뉴가 10,000원 추가 토핑 메뉴가 3,000~4,000원에 구성되어 있어

15,000원~ 16,000원에 추가 메뉴와 음료까지 즐길 수 있다.


하나모코시를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하는 마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지독한 인플레이션과 가격의 상향 평준화에도 최고 품질의 라멘을 10,000원에 제공하니

절대 없어져서는 안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메뉴를 주문하면 면 삶는 3분 내외로 메뉴가 나온다.

생면을 사용하다 보니 조리 시간도 짧다.

하나모코시의 마제멘

마제멘을 처음 받으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게 다야?'

잘 삶은 면 위에 소고기 토핑 조금.

바닥엔 마라 스타일의 특제 소스가 깔려있다.

많은 곳들에서 '마제소바'라고 불리는 메뉴 같을 거란 기대를 했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


아래 소스까지 잘 섞이도록 잘 비벼본다.


잘 비벼진 마제멘은 그 향부터 침샘을 자극한다.

입에 넣는 순간 작은 신음이 터져 나오고, 씹으면서 말한다.

"와 대박이다..."

잘 잡힌 간과 소스 맛도 일품이지만 하나모코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면'

잘 익혔음에도 씹히는 식감부터 고소한 풍미, 그리고 완벽한 간까지.


일행과 나눈 대화는 오직 '대박이다', '미쳤다'. 이 두 마디가 전부였다.


하나모코시의 토리소바

토리 소바 역시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라멘이다.

닭육수는 마치 돈코츠처럼 진하고 부드러운 차슈의 간도 완벽하다.

면의 퀄리티는 두 말할 것도 없다.

마제멘과 토리소바에 사용되는 면은 배합도 두께도 모두 다르다고 한다.

다만 국물에 들어가 있다 보니 결국 불기 전에 빠르게 먹는 것이

면의 맛을 즐기는데 가장 좋다.


토리소바나 마제멘을 시켜 먹으면 추가 메뉴인 '특제소스 카에다마' 주문이 가능하다.

이 카에다마는 면 사리 추가 개념인데 토리소바에 사용되는 면을 삶아 특제 소스를 올려 제공한다.

하나모코시의 특제소스 카에다마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제소스와 대파 그리고 약간의 트러플 오일이 곁들여졌다.

보통의 라멘집에서 면을 추가한다면 나오는 즉시 수프에 넣어 말아먹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모코시의 카에다마는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우선 조리 시간이 짧아 면을 완전히 다 먹은 뒤에 주문을 해도 2,3분 내로 완성된다.

메뉴가 나오면 젓가락으로 잘 비벼 면만 따로 먹어보는 것을 권한다.

트러플 오일을 잘못 쓰면 느끼할 수 있는데 올려진 특제 소스와의 밸런스가 너무 좋다.

면의 풍미에 트러플 향이 더해져 흡사 완벽한 '트러플 따야린*(Truffle Tajarin)'을 먹는 기분이다.

*따야린(Tajarin) :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의 파스타 면으로 같은 지역의 특산품인 트러플을 이용해 만드는 트러플 따야린이 유명하다.


나의 경우에는 마제멘을 먹더라도 이 카에다마를 추가 해서 소스에 비빈 면을 그대로 즐긴다.

토리소바에 넣어 먹는다면 소스와 트러플 오일의 향으로 또 다른 느낌의 수프가 완성되니

그것 또한 즐겨보는 것도 매력적이다.


하나모코시 내부

잊혀가는 동네.

좁고 후미진 골목.

낡고 오래된 건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가장 완벽한 라멘.


최근 면에 대한 차별화를 내세운 다른 식당을 다녀왔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밀가루에 대해 연구하고,

가장 완벽한 배합을 찾아 3개 국가의 밀가루를 블렌딩 해서 면을 만드는 곳.

물론 맛있게 먹었지만 14,000원이라는 가격에 상응하는가는 의문이 들었다.


하나모코시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내 바람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소개를 해서 다녀온 지인들의 하나 같은 바람이고 소원이다.


일본인들에게 라멘은 '말 그대로 라멘'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일본 외식업에서 가장 가격을 올리기 힘든 메뉴라고 한다.

고물가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한국에서 이 가격과 퀄리티는 분명 비례하지 않는다.


'만원의 행복'을 느끼기 힘든 시대.

잃어버린 그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하나모코시'에 가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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