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미국에서...
8월 말에 개강을 했으니, 우리 부부는 개강한 지 2주 만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미국에 오기 전에 언젠가 한 번은 대차게 아플 일이 있을 거다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코로나에 걸릴 줄이야. 코로나가 발발한 뒤 한국에선 3년 간 코로나를 잘 피해 다녔기 때문에 마음을 조금은 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서 증상이 보이고 그다음 날 나도 증상이 살짝 보이는 듯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해보니 역시나였다. 학교에서는 증상이 있다면, 그리고 검사를 해서 확진이 되었다면 5일간은 캠퍼스에 나오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리포트를 하고 일주일 동안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에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한 레쥬메도 고치고, 수업 내용도 정리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변이가 거듭되며 점점 증상도 약해졌다고 하니, 감기 몸살 정도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는 걸 모른 채.
거진 5일 내내 타이레놀을 먹으면 식은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약발이 떨어지면 열이 올라 오한이 들고, 목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침을 삼키기가 무서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30년 넘게 살면서 입맛이 없어지는 경험을 거의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엔 어찌어찌 차려낸 식사가 눈앞에 있어도 반의 반 조차 넘기기가 힘들었다.
5일이 지나자 기적적으로 증상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심한 기침과 두통, 울렁거림은 없어지질 않았다. 그래도 학교에 가야 하니 썩 괜찮지 않은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갔다. 교수님께서 수업 녹화본 링크를 보내주시긴 했지만, 직접 수업에 가서 두뇌 풀가동을 하며 들어야 간신히 따라가는 수업을 녹화본으로 듣는다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일주일에 2번 있는 4과목을 온전히 빠진 대가는 예상보다도 더 컸다.
온전하지 않은 컨디션으로 수업을 쫓아가려고 애쓰는 며칠을 보내고 나니, 나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일기를 쓰고 있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땐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열만 내렸으면 좋겠다, 목만 안 아파도 살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조금 회복되고 나니 갑자기 현타가 왔다. 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서 나를 어르고 달래고 여기까지 와 있는 걸까. 수업을 쫓아가는 것도 버겁고, 과제는 시시때때로 쏟아진다.
제일 중요한 건 인턴십을 구하는 일인데, 이건 손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있다.
다들 아카데믹, 리크루팅, 소셜 사이의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지금의 나는 이거 하다 말고 아차차 하며 저거 하러 가고, 저거 하다 말고 아차차 하고 그거 하러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일기를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MBA 2학년 선배가 리드하는 취업 준비 그룹 미팅에 들어갔다가 내가 준비했던 내용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다음은 그날 쓴 일기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아니고, 마음이 하루 남짓한 시간에도 몇 번씩이나 바뀌는 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다. 어젠 코로나 때문에 골골대면서 내가 여기 왜 왔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미팅에서 준비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고 이렇게나 마음이 또 할만해진다.
30년 넘게 나 자신을 데리고 살면서 이제는 나 자신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놓고 보니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던 말 중 인상에 깊었던 말이 상대방을 내가 봤던 timeframe 안에 가두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사람은 계속 변하니, 그 당시의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은 계속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건 나 자신을 보는 내 시각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왜 이걸 못하고 있지,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러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지니까.
한국에서도 겪지 않았던 코로나를 이곳에서 겪고 많은 것을 느꼈다. 주변 모두가 차라리 아플 거면 초반에 아픈 게 낫다고 입을 모아 위로를 해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다시 아프지 않기를. 크게 앓고 나니 새삼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