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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Jun 24. 2024

영끌한 부부의 현재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중

 인생의 방향성은 정했는데,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했는데, 코 앞에 닥친 부동산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리를 하고 싶은데, 그것도 맘대로 되는 상황이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주말 내내 부동산 책만 들여다보았다. 하하하 이게 뭔 부끄러운 상황인지. 


 거창하게 막 이타적으로 살자고 결심하자마자 문제가 팡팡 터진다. 남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나에게 압박을 해 온다. 사실 나는 별로 힘들진 않았다. 나에겐 어떻게 할 건지 대책이 세워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그 대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싫단다. 부모님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 이름으로 대출을 받는 것도 싫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정리를 하려고 한다. 손해를 보겠지만. 


 도대체 남편 마음은 무엇일까. 나를 나쁜 며느리로 생각하며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지난번 대출을 받으려고 부모님을 모시고 은행과 주민센터를 왔다 갔다 하던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늙으신 부모님에게 너무 미안해서? 아니면 자기 부모님한테 더 이상 빚진 마음을 가지기 싫어서? 어릴 적에 자기를 너무 함부로 했다고 밉고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하다고 하더니, 막상 자기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건 죽도록 싫은가 보다. 사랑하는 아내를 핍박하면서까지 그러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니면 자기 부모님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보려고 하는 내가 미워서 그런가?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며느리로서 할 도리를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쁜 손자손녀 넷 낳아드렸고, 둘째 아들 케어하며 살고 있고,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있으며 아프신 시아버지가 안쓰러워 자주 찾아뵈려고 하는 중인데, 뭐가 모자란가? 모자랄 순 있겠지만, 그건 당신 사정이고, 내 사정은 다르다.


 화가 난다. 분명 함께 상의하고 모든 일을 결정하고 지금까지 왔는데, 지금 많이 힘들다고 해서 그걸 나에게 다 덮어씌우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그때 자기는 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눈치 보느라 그 말을 못 했나? 내가 밀어붙여서? 그럼 그때 말하지 않은 것도 본인 선택이고, 본인 잘못 아닌가? 그걸 왜 나한테 쏟아붓는가 말이다. 억울하다. 


 많은 영끌한 부부들이 이렇게 서로 싸우고 있지 않을까 싶다. 네가 먼저 하자고 했지 않냐고 하면서 막 원망하고, 먼저 말 꺼낸 사람은 죄인이 되어 버릴 거다. 남편이 하도 시댁에 가서 내가 사고를 쳤다고 말을 하니 시댁에선 내가 남편 몰래 부동산 사고를 저지른 줄 아신다. 그래서 내가 어제 속 시원하게 사실을 말씀드렸다. 아니요, 제가 혼자 몰래 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걸 남편과 함께 했고, 모든 걸 남편은 다 알고 있어요.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는 지금 생각하니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 하지 말자고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제 와서 이러니까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다행히 시댁에선 함께 의논하고 함께 해결하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시댁 어른들이 그런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극구 말하지 말라고 하니 연락은 못 드린 것뿐. 답답했는지 부모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 어떻게 되고 있냐고? 힘들지 않냐고. 난 힘들진 않은데, 남편이 힘들어한다고 말씀드렸다. 아마 부모님 입장에선 그게 더 마음 아플 거다. 마음 더 아프시라고 그런 말을 일부러 한 건 아니다. 그냥 사실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그렇게 말한 것도 나의 나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의 의도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걸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 특히 나의 남편의 입장에서는 굳이 남편이 더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꺼내서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결국 도움을 받고자 수를 쓴 것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하. 그래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러든 말든.


 나는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내 방법이 다 맞지는 않을 거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하고 있고, 공부하고 있고, 가장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하지만 남편은? 뭘 하고 있나? 스트레스가 큰지 이 일에 대해선 외면을 하고 있다. 자기한테 부동산 이야기는 하지 말란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가 툭 나오면 화를 낸다. 


  어린아이 같은 남편, 그리고 철딱서니 없는 나. 우리 둘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합작품. 아무리 세상을 의미 있게 보람 있게 살고자 해도, 코 앞에 닥친 문제가 더 큰 법이다. 막내의 기침 소리가, 첫째의 오늘도 공부 별로 못했다며 짜증 내는 소리가, 우직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셋째 아들의 뒤통수가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도 난 잘 해결할 거다. 무거워진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고,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잘 해결해 내서 나중에는 남편이 고맙다는 소리를 할 때 잘 들어줄 거다. 그걸 이제 알았냐고 구박하지 않고. 내 잘못도 있긴 하니까. 나도 알고 있다. 함께 저지른 일이긴 해도 직장에 매여 있는 나 때문에 조금은 더 시간이 자유로운 남편이 작년 한 해 무척 고생했다는 것을. 그러는 중에 아마 지치고 그랬을 거다. 


 알면 불안이 좀 줄어들 텐데, 역시 부부가 함께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남편에게 돈이란, 대출이란 너무 두려운 대상이다. 돈을 바랐던 마음이 죄악처럼 여겨지기도 할 거고. 하지만 남편도 나도 성장해야 한다. 이 무지막지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애쓰며 그 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연구하며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나. 


 남편이 약해져 있을 때는 내가 더 용기를 내야 한다. 내가 약했을 때는 남편이 용기를 냈을 테고. 남편에게 화도 나지만,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원래 뒤죽박죽 여러 생각이 엉켜 있지 않나.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다 안다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은 잘 모른 채 그런 말과 행동을 해 버린다. 그리고 후회하고. 돌이켜 생각하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다 그러고 사는 거지 뭐. 


 그래도 남편은 막 쏟아내고 난 뒤에 생각이란 걸 한다. 모른 척하지 않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기 마음도 더 잘 알게 되고, 실수를 줄여갈 거다. 그 사이에 나도 생각이란 걸 하고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그리고 더 잘해줘야지. 


 삐지기도 잘 하지만 위로도 잘해 주는 막내의 조그만 손을 꼭 잡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꽉 채워진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고민거리와 문제들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고. 오늘 하루도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하자. 그럼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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