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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Sep 13. 2024

학원을 보내야 할까

고민을 또 했다. 

 나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가장 처음에 그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남과 다른 방식을 선택하고 싶은 동기가 컸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둘째가 나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왜 자기는 학원에 안 다니냐고, 다른 친구들은 다 학원에 다니는데, 나만 안 다녀서 공부를 못하는 것 같다고 속상해했었다. 그래서 학원 다니고 싶냐고 보내줄까 하고 물으면 다니지 않겠다고 한다. 아마 내 눈치를 보았던 것 같다. 


 눈치를 보는 것은 내가 바랐던 것이 아니지만, 아이 스스로가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바랐던 게 맞다. 내가 등 떠밀어 보내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자기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학원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 그게 내가 바랐던 것이었다. 


 내가 등 떠민 것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애들을 억지로 피아노학원에 보냈고, 억지로 학습지를 시켰었다. 지금도 셋째와 넷째는 학습지를 하고 있다. 아들내미를 태권도에 보내야지 왜 피아노를 보내냐고 남편은 뭐라 했었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다. 피아노는 꼭 다녀야 한다고.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내미는 지금도 피아노학원을 다닌다. (태권도학원에도 잠시 다니긴 했다. 재미가 없다고 끊었지만.) 그리고 무늬만 피아노학원을 다니지, 사실 피아노는 별로 안 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도 피아노를 보내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통학 때문이고, 둘째는 노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 피아노 학원을 좋아한다. 선생님의 마인드가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한창 부부싸움을 할 때 아이들은 피아노학원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처음에 학원 선생님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도 그 가운데 힘들었을 텐데, 털어놓을 누군가가 있다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게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것이고. 


 큰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학원에서 놀기만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도 당시엔 당황했지만, 아이에겐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모른 척 학원에 계속 보냈다. 아이도 계속 다니고 싶어 했었다. 그저 우리 아이들에게 피아노학원은 피아노를 배우는 공간 말고도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아들내미는 학원에서 무얼 하는지 계속 다니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계속 보내줄 생각이다. 억지로 다닌 피아노학원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학습지는 여전히 고민거리지만, 그래도 나의 불안감을 줄여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그거라도 안 하면 마음이 좀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쉽게 그만두겠다고 하진 않는다. 너무 힘든 때는 한 달 쉬는 방법을 택했다. 


 남과 다르게 키우고 싶어서 학원을 보내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애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고,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무척 기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놓지 못하는 것은 자기 주도성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셋째와 넷째는 잘 모르는 세계이겠지만, 첫째와 둘째는 그 시기를 거쳐가고 있다.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을 치고 그 결과를 받아 드는 세계에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그 세계 속에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길 원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 않은가.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자료는 어디에나 있다. 학교에서는 각 과목 선생님이 이렇게 공부해라고 가르쳐주시고, 친구들이 이런저런 팁을 주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과 유튜브에도 공부 잘하는 방법이 나와 있다. 원한다면 EBS 무료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공부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다. 중2, 학교를 마치면 4시 정도가 되는데, 그 이후부터는 모두 자기의 시간이다. 나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도 자라면서 그런 말을 안 듣기도 했고, 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억력이 유달리 뛰어난 둘째는 언니한테서 영어 단어만 많이 외워도 시험 성적이 오른다는 팁을 듣고 그제야, 그동안 포기했던 영어 공부를 하더니 60점을 받아왔다. 남들에겐 60점이 별 거 아니겠지만, 나에겐 아주 큰 의미다.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한 자기만의 공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포기한 것도 스스로의 결정이고, 다시 시작한 것도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자기가 선택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래서 또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기니까. 중학교 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마음껏 시도해 봐야 자기만의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닌가. 나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연구를 할 것이고. 


 맞다. 나는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잘 찾아가길 바란다.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일찍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씨름해 보고, 공부를 하면서도 씨름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누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것에 끌려가지 않길 바란다. 주체적으로 살길 바라는 것이다. 모두가 옳다고 휩쓸려 갈 때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면 좋겠고, 모두가 그게 좋다고 할 때 단점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려면 남과 다른 경험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애들 학원비 쓰는 셈 치고 월세를 더 내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설득했다. 뷰가 좋은 층에 널찍한 거실이 있는 집에 말이다. 우리에게는 말도 안 되는 집일 수 있으나,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생각이 넓어지길 바랐다. 좁은 집에 살았던 것도 좋았다. 좁은 집에서 짐을 가득 쌓아놓고 서로 부대끼며 함께 자던 때도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고, 추억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런 집에서 살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또 언제든지 좁은 집에 다시 갈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다채로운 생각을 하며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살길 바란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뛰어나려고가 아니라, 그저 최고의 것을 바라보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능력만큼 말이다. 할 수 없는 것까지 고민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최대로 해 보는 것. 실망하고 좌절하더라도, 그 아픔조차도 인생이 맛보는 달콤한 경험이다. 실컷 울고 나서 눈물을 닦고 시원해져서 이제 뭐 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거다.


 선행을 하고 조기교육을 하는 것은 사실 남보다 앞서 나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선행을 하다 보니, 이제는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지 않는 사람이 뒤처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 아이가 뒤처지는 건 싫은 일이다. 그래도 나는 학교교육을 믿고, 내 아이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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