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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Sep 13. 2024

<당신이 옳다>를 읽고(2)

감정이 진짜다

 

감정이 존재의 핵심이다. 내 감정이 오로지 '나'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진짜라고. 그 감정의 원인이 되는 생각은 틀릴 수 있으나, 당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거짓이 아니라고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왜 이렇게 내가 화가 나는 거지? 왜 이렇게 우울하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들이 올라올 때, 그 감정도 내다 버리고 싶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도 싫어진다. 


 하지만 감정이 진짜 실체라면 어떤가? 감정은 진짜고, 나머지 다른 것들이 다 거짓이라면? 그동안 속고 살은 것이다. 온갖 거짓에 휩싸여서 그게 참이라고 믿고 인생을 잘못 산 것이다. 아깝다. 


 강렬한 분노나 짙은 불안과 우울이 찾아올 때, 그 감정들은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려는 외침이다. 지금 뭔가 문제가 있다고, 잘못된 것이 있다고. 그 감정이 싫어서 그냥 냅다 덮어버리거나 한쪽으로 치워버리지 말고, 그 감정을 들여다보고 진짜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라는 그런 신호다. 


 작가는 말한다. 자기 감정을 모른 체 무시하다가 자기 존재가 소멸될 지경에 이르면 분노가 폭발하거나 폭력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마지막 단말마인 셈이다. 나 여기 살아 있다는 처절한 외침이 극렬한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어떤 감정도 틀린 것은 없다.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을 들어달라고, 내 존재를 알아달라고 하는 목소리가 바로 감정이다.


 타인에게 자기 존재로서 주목과 집중을 받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자기 존재를 바라봐주지 않고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다 보면, 존재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양한 감정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나를 주목해 달라고, 나에게 집중해 달라고, 나에게 존재한다는 느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달라고 표현한다. 그러면 그 감정을 봐줘야지.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불편하다고 억누르고 덮어버리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썼다. 남편에게 화나는 마음, 답답한 심정을 마음속으로만 외치다가 어느 날부터는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수첩을 보면 남편 욕으로 가득하다. 차마 겉으로 다 하지 못한 말을 수첩에다가 쓴 것이다. 아주 적나라하게. 그땐 남편이 볼까 누가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많이 바빴고 나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실수로라도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주 약간은 있었을까.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는 걸 보면, 나도 은근히 내 글을 다른 사람이 봐주길 바라는 것 같다. 대부분은 부끄럽고, 아주 가끔은 눈물 나기도 하는 글을 쓰면서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어준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내가 쓴 글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주목 받는 경험을 한 것이다. 


 넘쳐흐르는 감정들이 글을 쓰게 만들었고, 터져 나갈 것 같은 답답함이 글을 쓰고 나면 가벼워지곤 했다. 공개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밝히진 않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런 창구가 없다. 그래서 때때로 그렇게 그가 분노했나 싶어서, 어제 갑자기 가족회의를 열었다. 낮에 가족단톡방에 회의 시간을 알리고,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 9시에 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의도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2달 여 간의 방학 기간(셋째와 넷째의 이번 방학은 2달이었다.) 동안 힘들었을 텐데, 그 이야기도 좀 하고,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이야기하고, 그렇게 주목과 집중을 받으라고 말이다. 아빠의 잔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힘겨워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니 좋았다. 큰애와 둘째애의 시험기간이 언제인지 알게 되었고, 큰애의 영어 학원 선생님이 무척 뛰어난 분이라는 것과 셋째가 수영을 끊은 뒤로 잘 씻지 않는다는 사실, 셋째와 넷째가 요즘은 학습지를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것 등등. 이런 시간을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실언니를 함께 읽다가 두 명이 몰래 다 읽어버리는 바람에 가족 독서 시간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앞으로는 이번처럼 가족회의를 비정기적으로 열어서 함께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해야겠다. 모두가 주목받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대신 규칙을 한 가지 정해야 할 듯하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비난하거나 놀리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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