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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Sep 10. 2024

<당신이 옳다>를 읽고

안정감이 필요하다

 


자기 존재가 집중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는 책의 구절이다. 자기에게 전문의라는 이름보다 치유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작가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집밥 같은 치유를 권한다. 그것의 이름을 적정심리학이라고 붙였다.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대화에 성난 할아버지의 마음이 가라앉았다는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아무도 그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할아버지의 성난 마음이 가라앉고 이성적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연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 존재 그 자체로 그 대화에 임했기 때문에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나는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의 집중과 주목을 받는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의 주목을 받는데도, 가끔씩 숨이 막히고 불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상황들 속에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때로 이러한 나의 감정을 견디기가 힘들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 나는 나라는 존재 자체로 교단에 서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거기에는 나라는 사람의 본질보다는 국어교사라는 그들이 원하는 모습의 나가 서 있다. 교사도 제각각의 개성이 있고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된 것은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교사로서 나타내야 할 어떤 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 틀 안에서 아이들과 만난다. 나는 가르치고 설명하고 피드백하는 존재로서 아이들을 대한다. 때로는 나의 취향과 취미생활과 일상 속의 경험을 전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를 어느 정도 지키고 보호해야 하니까. 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주목받았느냐보다도 내가 얼마나 가면을 썼느냐에 따라서, 또 그에 따라 본래의 내가 얼마나 억눌리고 사라졌느냐에 따라 나의 안정감은 좌우된다. 결국 또 나 자신이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싶다. 그런데 안개가 자욱한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평생 그걸 찾다가 내 인생이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걸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다가 발끝이 보이기도 한하지 않겠나. 그러면 그 발끝이라도 붙잡고 남은 생을 잘 살아보는 거다. 


 영혼을 보아야 하고, 영혼과 영혼이 만나야 한다. 가면을 걷어내고 말이다. 하지만 다 벗어버리면 안 된다. 어느 정도는 나를 지키고 보호해야 하니까. 살짝이라도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인생의 신비를 깨달으며 살아야겠다. 사는 게 재미가 있어야지. 요즘 너무 재미없이 살았다. 이러면 안 된다. 각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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