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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Feb 26. 2024

라캉의 실재계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 장용순



독후감을 쓴다고 하지만 실은 내가 쓰는 독후감은 독후감이라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 컨텐츠다. 이번엔 라캉의 실재계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한다. 라캉의 실재계는 실은 매우 어렵고 심오한 개념인데, 최대한 쉽게 써 보겠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소설의 한 장면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여튼 그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 책을 없애버려야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사정으로 책을 태워서 버릴 수는 없었다. 주인공은 곰곰히 생각하다, 그 도시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들어선다. 그리고 서가를 헤매다 인적이 없는, 제일 인기 없는 책장의 한 쪽에 그 책을 밀어 넣는다. 정확한 기억은 아닐 수도 있는데, 주인공은 돌아서며 '나무를 숨기기에 숲 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중얼거린다. (혹시 이 소설 제목을 아는 분은 제보해 주세요)


당신은 이 책을 찾을 수 있을까? 만약 이 책을 찾아낼 수 없다면 이 책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물론 물리적으로 그 책은 그 도서관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을 찾거나 대출받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검색대에서 제목 검색을 해도 이 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근무한지 오래된 사서에게 부탁을 해도 사서는 그런 책은 본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주인공의 계획대로 되었다. 그 책은 존재하는 동시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책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째서 이 책은 거기에 분명히 있지만 아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책이 되었을까? 


도서관에 한 두번 가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답을 알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책이 인덱싱, 혹은 라벨링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분류가 되어 있지 않다. 일련번호가 부여되어 있지 않고, 지정된 서가에 꽂혀 있지도 않으며, 대출 대상 도서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누군가가 질서로서 기호, 혹은 상징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물리적으로는 서가에 꽂혀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도서관은 비유일 뿐이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상징으로 가득한 도서관 안의 삶이다. 우리는 상징으로 가득한, 혹은 상징으로 구성된 세상을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은 실은 상징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존재하는가? 삼성전자는 무엇인가? 주식인가? 건물인가? 구성원들인가?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실체는 있는가? 대한민국의 실체는 영토인가? 아니면 국민의 집합인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름을 떠올리며 같은 질문을 해보라. 그 회사는 존재하는가? 바로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회사나 국가 같은 개념은 물론이고, 양자역학, 우주론 같은 과학이나, 유물론, 유심론 같은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 문화, 예술도 사실은 전부 상징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체계다. 모든 새로운 지식은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등장한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 부터 현대 웹소설의 퀘스트물까지, 새로운 것들은 누군가 거기에 이름을 붙이면서 우리의 상징체계 안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우리는 상징으로 가득한 세상을, 새로운 상징을 창조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라캉은 사실은 상징일 뿐인 것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 그러니까 우리들이 영위하는 평범한 삶을 가리켜 ‘환상’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환상은 자본주의다. 돈은 명백히 상징이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 돈은 그저 그림과 숫자가 인쇄된 종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돈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지폐도 아니고, 스마트폰 뱅킹 앱에 찍혀 있는 일고여덟 자리 숫자에 확실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숫자가 아홉 자리, 열 자리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대개의 사람들은 공유하고 있다. (누군가는 국가가 그 가치를 보장하니까 돈의 가치는 환상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위에서 그 국가 자체가 상징이라는 것을 이미 얘기했다. 환상이 환상의 가치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라캉은 이렇게 상징으로 구성된, 우리가 실제로 매일매일 살아가는 세계를 상징계(The Symbolic)라고 부른다. 우리가 매일 살고 경험하는 평범한 것들은 모조리 상징과 기호로 구성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상징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는가? 우리는 상징의 바깥쪽을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인가? 


다시 도서관 얘기로 돌아가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도서관 서가를 지나다 정말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책은 이상하다. 라벨도 붙어 있지 않고, 분류 번호도 없다. 그 서가에 어울리는 책도 아니다. 그 책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라도 직감적으로 그 책이 보통 책이 아님을 알아 차릴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평범한 경험은 아니다. 이러한 경험, 상징 바깥의 경험을 경험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징 바깥의 경험은 우리에게 대개는 재난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원하여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상징 바깥의 경험은 평범하지 않다. 갑자기 우리를 덮치는 교통사고, 누군가의 자살, 죽음,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것들을 만날 때 우리는 상징의 바깥을 경험한다. 상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을 만날 때 우리는 패닉에 빠진다. 우리의 정신은 외상을 입는다. 이러한 경험, 상징계 바깥을 경험하며 정신적인 상처를 얻는 것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라캉은 상징의 바깥, 우리의 상징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을 실재(實在)라고 부르며, 그 세계를 실재계(The Real)라 명명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상징체계 바깥에 있는 것조차 다시 상징계로 가져오며 명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실재계와 맞닥뜨린 우리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이제 실재를 경험했으니 상징계와 실재계 모두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은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어떤 참사를 겪고 나면, 우리는 희생자들을 애도한다. 그런데 그 애도식에 참사의 장면 그 자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이나 사고, 자연재해 등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 같은 것들은 추도식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른다. 짐작했겠지만 이름은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러니까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실은 참사를 상징화하는 것이다.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일을 정하는 것은 실재가 범람하며 우리의 상징계를 침범할 수 없도록, 시간과 공간의 벽을 쌓는 작업이다. 우리는 결사적으로 상징계를 지키려 한다. 우리는 실재계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도 선생님은 “평범한 사람은 실재를 접하면 죽는다”고 단언하신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 세계를 분절하고 구분하고 명명하고, 상징과 기호로 질서체계를 세운 세계와, 아직 우리의 상징 체계로 포섭하지 못한 세계로 구분하는 이원적 사고를 대개의 현대 프랑스철학자들이 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도 자체는 니체가 시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원적 구분법으로 라캉과, 바디우와, 들뢰즈를 이해하려고 한 책이 바로 이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이다. 


이 책을 권하기 가장 좋은 사람은 라캉은 어느 정도 읽었는데 들뢰즈는 하나도 읽지 않은 사람,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들뢰즈가 실은 니체와 매우 유사한 이야기를 하는 철학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들뢰즈가 급히, 매우 궁금해졌다. 


언젠가의 독후감에서도 얘기한 적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중급자를 위한 책이 아주 드물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 보석 같은 책이다. [보탬] 주제책으로 선정하기엔 조금 난이도가 높아 아쉽다. 1차 저작을 읽기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제 입문서에서는 얻을 것이 별로 없는 내 주변의 인문학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이 책을 권한다. 


이번 달과 다음 달 사이에 김서영 박사님의 <라캉 읽기>를 다시 읽어야 한다. 이번에 읽으면 삼독(三讀)째인데, 이번엔 라캉을 정리할 수 있을까. 5년을 읽었지만 라캉은 여전히 내겐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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