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오랜 정체에 지친 당신에게

변화를 만들어내는 1

by 여름은하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초기에는 눈에 띄는 실력의 진전이 보이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이 제자리에서 멈춰 선 것 같은 시기가 온다. 그러다가 다시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갑자기 일취월장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와 같이, 숙련도와 많은 연습을 요하는 분야의 훈련과정에서 실력이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것을 플래토(Plateau; 고원) 현상이라고 부른다. 고원(高原)이란 높은 곳의 평원이라는 뜻인데, 훈련과정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실력이 더 오르지 않는 상황을 이 고원으로 비유한 것이다.

고원 현상은 훈련자들이 일정한 실력 상승을 이룬 다음에 찾아오는 일종의 정체 현상으로,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실력이 오르게 된다.

언어 공부에서도 꾸준한 학습과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학습 고원이라 불리는 정체구간 구간 때문이다. 학습 초기에는 실력의 빠른 진전이 보여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다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학습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거나 정체된 것 같이 느껴져 더 이상 학습을 지속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탓하거나 학습방식에 의문을 품기도 하면서 다른 방법이나 분야를 찾기 위해 학습을 중단하게 된다.

스포츠나 다이어트와 같은 꾸준한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는 분야에서도 이런 고원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Training Plateau라고 한다.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은 다이어트 초기에 살이 좀 빠지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다시 느는 상황에 부딪히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고원에 이르면 한동안 과정의 진척 없이 정체된 듯한 느낌이 지속되는데, 훈련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되는 이러한 고원 현상을 모르면, 이를 슬럼프로 간주하고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노력들이 이 단계에서 좌절되고 중단되는데, 이 고원 현상을 아는 사람은 진척이 보이지 않는 정체구간에서도 이후 다시 도래하게 될 실력의 도약을 기대하며 꾸준히 훈련과정을 지속해 갈 수 있다.

이를 모르고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할 경우 실력 향상이 중단되었던 위치에서 재개되는 것이 아니라 더 아래 단계에서 다시 지금까지의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중단된 당시의 위치를 다시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소요되고 여기서 또다시 좌절을 맛보게 된다.


얼음이 물로 바뀌는 온도는 1도씨이다. 0도씨 이하에서는 고체인 얼음이지만 이 온도를 초과하는 순간 갑자기 액체인 물로 변한다. 그 후 99도씨 까지는 액체로 있다가 100도씨가 되는 순간 다시 기체로 변한다. 이와 같이, 물질에 가해지는 자극이 일정 임계점에 이르러 특정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그 상태가 급격하게 변하는 현상을 상전이(相轉移; Phase Transition)라고 한다. 상온에서 액체인 물이 O℃에서 고체가 되고 100℃에서 기체가 되듯 상전이는 특정한 임계한도, 즉 전이점에서 일어나며, 상(Phase)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다.

액체인 물을 기체로 만들기 위해 가열하면서 99도씨까지 온도를 올려도 물은 그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1도씨를 추가로 올릴 경우 액체인 물은 드디어 기체인 수증기로 변하게 된다. 즉, 99도씨까지 가열할 동안 물은 기체가 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학습 고원 현상도 이 상전이와 유사하다. 일정 구간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지속해도 실력의 향상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 과정을 유지해 변화의 임계점에 이를 때 현저한 실력의 향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상전이를 일으키는 에너지는 앞서 살펴본 항공기 이륙에 들어가는 폭발적 에너지와는 차이가 있다. 상전이에는 꾸준한 노력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에너지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1도씩 꾸준히 올려가며 그다음 전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새로운 실력의 도약을 체험하게 되고 그렇게 한 단계씩 착실히 올라가며 프로페셔널이 되어가는 것이다.

좀 더 빠르게 상전이에 도달하는 변칙적인 방법들도 있다. 1 기압에서 물이 수증기가 되기 위해서는 100도씨까지 가열을 해야 하지만 기압이 낮은 높은 산 위에서는 100도씨 미만에서도 물을 끓여 수증기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00 도씨 미만에서 끓는 물로는 제대로 된 밥을 지을 수 없어 밥은 설익게 된다.

노력을 계속 이어가는데도 이상 진전이 보이지 않고 정체된 것만 같은 상태가 생각보다 길어질 ,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말고 격언을 기억하자.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

근육이 빠르게 늘지 않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거나 다이어트 중에 살이 빠지지 않아 약물을 사용하는 변칙적인 방법들로는 일시적으로는 목표에 도달한 것과 같이 보이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승려나 수도자들도 똑같은 고원 현상을 겪는다. 꾸준한 고행과 참선으로 내면에 침잠해 몰입의 상태에서 자아를 발견하려는 그들의 노력의 과정에서도 수행의 진전이 일정 수준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되면 번뇌에 빠지기도 한다. 깨달음은 보통 한 순간에 섬광처럼 스친다. 하나의 화두로 오랜 기간의 깊은 몰입의 과정을 지속하면서 이 스쳐가는 깨달음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첨예한 정신적 상태에 도달했을 때 마침내 그 상위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으로 한 단계씩 밟아가게 된다.


필자는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다분히 세속적인 분야인 재무관리 업무를 오랫동안 해 왔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깊은 몰입을 지속하는 가운데 섬광처럼 해결책이 생각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그 문제를 풀고자 하는 몰입의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많은 과학적 발견들도 이러한 지루한 정체의 과정에서 ‘우연해 보이는’ 계기로 실마리가 풀려 엄청난 인류의 진보를 가져온 순간들이 많았다. 이 우연해 보이는 계기는 아무 진전이 없는듯한 지루한 시간들을 극복해 낸 깊은 몰입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순간이었다.


어쩌면, 현재 상태는 새로운 상전이로 들어가는 임계점 바로 직전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도약 앞에서 좌절하고 중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 높은 성취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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