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무조건 하나씩은 벽에 붙여 두게 마련인 숫자표가 있다. 1부터 100까지 나열한 이 표는 10씩 10줄로 정방행렬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반으로 나누는 숫자가 50과 51이다. 상단은 50으로 끝나고, 하단은 51로 시작된다.
하루는 4살짜리 딸아이의 끝없는 생떼에 영혼이 털려 벽멍(벽 보고 멍 때리기)을 하던 중 이 표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걸려 있는 그림이었지만 그날따라 영혼 없는 내 눈에 50과 51의 운명이 갈리는 모습이 재미있게 보였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는가? 어릴 때 부모님의 꾸지람을 듣는 와중에 영혼을 놓고 멍하게 고개를 숙이고 보게 된 장판의 무늬가 엄청난 의미로 다가올 때. 이때 장판의 획일적 무늬는 사람 얼굴이 되기도, 로보트나 괴물이 되기도 하면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몰입의 경지에 이르면 부모님의 꾸지람은 한낮 BGM이 될 뿐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런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해 그날도 갑자기 그 숫자표가 심오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 순간 딸아이의 생떼를 BGM 삼아 한 끗 차이의 50과 51의 운명을 심도 있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운명을 가르는 ‘1’이라는 이 시리즈의 주제와 제목은 그렇게 나왔다.
100에서 50은 절반이지만 51은 과반수이다.
50과 51의 차이는 1에 불과하지만 50에서 더해지는 1은 나머지 49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 1%의 사소함이 50의 곁에서는 절대권력을 부여한다.
모든 의결에서 50은 승리를 견제 가능한 숫자인 동시에 나머지 50의 잠재적 저항에 부딪칠 수도 있는 불안한 숫자이지만 51은 그 자체로 과반수의 힘을 가져 경쟁자와 나머지 49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숫자가 된다.
양자 간 대결에서 승리를 확정시키는 것은 50도 52도 아닌 51이면 충분하다.
이에서 더 나아가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게임에서 이 51은 나머지 49를 무력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편으로 끌어오는 힘까지 부여받게 된다.
승자독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다. 광활한 영토와 복잡한 역사로 인해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의 대선에서 일반 국민들의 투표는 이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사전 선거의 개념을 갖는다. 국민들은 1차 투표에서 자신을 대표할 선거인단을 뽑고 주마다 인구 비례에 따라 할당된 538명의 선거인단이 2차 투표에서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이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1차 투표 과정에서 승자독식 원칙이 적용되는데, 각 주의 선거인단은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 진영이 모두 가져간다. 예를 들어, 지난 2020년 미 대선에서 최다 선거인단이 배정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미국 전체 선거인단의 10%를 초과하는 55명의 선거인단을 선출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바이든의 민주당에 과반수 표가 몰리면서 바이든을 지지하는 55인이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에 선출되어 바이든의 승리를 확정시키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의 1차 투표에서 공화당(트럼프)이 34.3%, 민주당(바이든)이 63.5%가 나왔는데, 승자독식 원칙이 아니었다면 55명 중 34.3%에 해당하는 19명이 트럼프의 공화당을 지지하는 선거인단으로 구성되었겠지만 승자독식 원칙으로 1%라도 더 많이 표를 받은 정당, 즉 공화당으로 55명의 선거인단을 몰아주게 된 것이다.
이런 독특한 선거 방식으로 인해 미국 전체 유권자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고도 대선에서 패배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가장 가까이는 2016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전체 유권자의 48.2%의 지지를 받아 공화당의 트럼프(46.1%)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기준으로 232명을 확보해 306명을 확보한 트럼프에 패배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 대선에서는 지역별 선거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각 지역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을 필요가 없다. 51%나 100%나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므로 과반수만 확보하면 되고, 선거인단이 적거나 지지정당이 확실한 지역은 유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장 유세에 집중해야 할 곳은 바로 선거인단이 많으면서 중도층도 많아 향방이 오차범위 내에 머물고 있는 조지아,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과 같은 곳이다.
정부가 자국기업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외국인 기업지분 한도를 49.9% 혹은 주식 절반에서 1주 모자라는 숫자로 제한하는 이유도 바로 이 ‘과반수’가 주는 절대적 경영권 행사를 막기 위함이다.
외부세력의 적대적 M&A나 회사내부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경영 리스크 상승으로 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 같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경우 회사의 주가는 상승하게 된다. 적대적 M&A나 경영권 분쟁은 지분의 우위를 차지해 그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므로 각 진영은 보유 주식을 늘리기 위해 주식 매입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매수 수요가 늘어나면 주가는 오르게 되어있고, 특히, 분쟁 당사자들 간의 지분율 차이가 적을수록 주식 매입 경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 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LG나 SM 경영권 분쟁사태에도 단기간 주가가 치솟았고 예전 한진 KAL 경영권 분쟁 당시는 주가가 일시적으로 4배 가까이 폭등하기도 했다.
51% 혹은 경쟁상대보다 1% 더 많은 지분을 얻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며 이 우위는 그만큼의 가치를 한다.
유명 팝 그룹 ABBA의 노래 'Winner takes it all'의 후렴가사는 51을 확보한 승자가 갖게 되는 우위를 싸늘할 정도로 냉정하고 단순하게 표현한다.
승자가 모든 걸 갖는 거야
패자는 아래로 떨어지고.
간단하고 분명해, 누굴 탓하겠어.
지난 대선에서 윤석렬 후보는 48.56%의 득표율로 47.83%를 받은 이재명 후보를 0.7%p로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1%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차이가 두 사람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어찌 보면 불합리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선거의 룰이고, 현재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룰이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얻게 된 권력으로 행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사필귀정의 질서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51을 만드는 것은 50 뒤에 붙는 1 혼자가 아니라 50에 더해지는 1, 즉, 51 전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1이라는 사실이다.
50이 없고서는 여기 더해지는 1은 의미가 없다. 요행이 아닌 50을 채우는 노력 후에야 한 끗의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