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명사)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어른이란 누구인가? 단순히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세월이 지나 나이라는 것을 먹었으나 행동이나 태도,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면 결코 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요즘 빈번하게 일어나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젊은 세대는 노인에 대해 갈등을 넘어 혐오하기까지 이르렀고,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어른 공경이 땅에 떨어져 세상이 말세라고 혀를 찬다.
한해가 저물어 가던 작년 12월 하순경,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독립영화를 만났다. 구부정하게 걷는 노인의 뒷모습을 영화포스터로 사용한 것부터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보통은 주연 배우들의 잘생긴 얼굴이나 예쁜 모습을 영화포스터로 사용하는데 이 영화는 노인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포스터로 사용하다니...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영화가 끝날 때즈음 깨닫게 되었다. 이 어른은 그렇게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셨으면서도 그 흔한 인터뷰 한번 안 하시고 자신의 선행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그래서 영화포스터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뒷모습만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물론 나만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다. 영화포스터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을 만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 감정이 정말 딱 그랬다.
2022년 5월, 경남 진주에 있는 남성당한약방은 60여 년의 영업을 마치고 종료했다. 김장하 어른이 19세부터 79세까지 운영했던 곳이다. 경남 사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낮에는 한약방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그야말로 주경야독하여 19세에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해서 남성한약방을 개업하였다.
어른은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좋은 한약재를 싼값에 팔았기 때문에 한약방은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데 어른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셨을까? 어른은 아픈 사람들로부터 얻은 돈이므로 한 푼도 의미 없게 쓸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정말 이 말씀을 실천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그 돈을 1,0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셨다. 그중에는 고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은 학생도 다수였다. 일회성 장학금도 아니고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장학금을 받아 나중에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어르신께 인사를 하러 와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되겠냐고 여쭈면 어르신의 대답은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아라”였다.
장학금 이외에도 어르신의 선행은 수없이 많다. 100억이 넘는 사재를 들여 설립한 명신고등학교의 이사장으로 10년을 있으시면서 체육관, 도서관 등 모든 학교시설을 완성한 후 1991년 국가에 기부하셨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학비리라는 단어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때에 자신이 소유주나 다름없는 학교를 국가에 헌납하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또한 전교조 설립 때, 전교조에 가담한 교사들을 해고하라는 서슬 퍼런 독재시대 정부의 압박에도 어르신은 이사장으로서 선생님들의 해고를 거부하셨다.
장학금 이외에도 어르신은 평생 나눔을 실천하셨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셨다. 진주신문 이사장,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 등을 맡으셔서 지역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꾸준하게 지원하셨다. 2021년에는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시면서 기금 34억을 국립경상대학교에 발전기금으로 기탁하셨다.
처음에 별생각 없이 보려던 영화였는데 나도 모르게 주책없이 눈물이 나왔다. 어르신의 실천적 삶에 감동을 받은 것도 있지만 아마도 그건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이었다. 어른은 없고 꼰대만 가득한 세상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도 꼰대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꼰대가 있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여 남들은 전혀 관심도 없는 자신의 고생담을 늘어놓고 너희들도 나처럼 고생을 해봐야 세상을 안다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 그리고 남의 의견이나 생각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이 경험한 일부의 사실만이 진실인 것처럼 주장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먹히지 않으면 화를 내며 마지막에 내뱉는 말은 거의 ‘너 몇 살이야!’로 결론짓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하나같이 김장하 어른을 존경하고 자신이 받은 것을 남들에게 베풀고 실천하려고 했다. 친구들 또한 친구 김장하에게 부끄러운 친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한 영향력인가? 무엇을 실천하는 것에 대단한 것은 없다. 조금한 것부터 실천을 시작하면 된다. 어른의 말씀대로 평범함이 이 세상을 지키는 힘이다. 영화 포스터의 다른 문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나도 다른 이들에게 어른다운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