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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카게살자 May 24. 2024

고독과 외로움 사이

고독과 외로움은 어떻게 구별될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어떤 이는 자신을 외로운 존재라고 얘기한다. 어떤 것이 맞을까? 사전적 의미로써 명사인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고, 또 다른 명사인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쓰여 있다(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영어단어로 찾아보면 그 의미는 좀 더 명확하게 구별된다. 왜냐하면 영어단어는 철자 자체가 다르다. 고독은 solitude, 외로움은 loneliness(출처: Oxford 영한사전)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고독과 외로움이란 단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같은 과거와 상황을 함께 공유했더라도 사람의 생각은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대학에서 처음 만나 연인이 된 ‘아오이’와 ‘쥰세이’는 서로 간의 안타까운 오해로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지금 각자의 옆에는 새로운 연인이 있지만 둘은 좀처럼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한다. 이미 헤어졌지만, 그들을 언제라도 함께 묶어놓고 있었던 것은 10년 후 서른 살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었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이야기이다.     


이 소설이 독특하게 나에게 다가온 것은 하나의 소설을 번갈아 가며 써내려간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이었다. 소설에서 ‘츠지 히토나리’는 ‘쥰세이’의 이야기(Blu)를 쓰고 ‘에쿠니 가오리’는 ‘아오이’의 이야기(Rosso)를 각각 써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섬세한 필체와 사랑에 대한 남녀의 미묘한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소설도 좋지만 20년 만에 재개봉된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감정도 느끼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짝사랑이라면 서로 간의 시선은 더욱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과 외로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독과 외로움은 단어의 어감에 있어서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많은 차이가 있다.     


사전적 의미의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고 되어있지만, 고독은 현대사회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할 수 없이 이어 나가야만 하는 여러 관계 속에서 몹시 지쳤을 때 그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 즐길 수 있는 것이며, 내면적인 것이고, 혼자 있는 상태이며, 나 자신과 스스로 소통함으로써 비록 혼자이지만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고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삶의 상태이다.     


반면에 외로움은 사전적 의미로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외로움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소외, 배제 혹은 차별을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타인과의 관계가 실제로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지는 의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만나기 싫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외로움은 외면적인 것이고, 홀로 되어 쓸쓸한 느낌이며, 나의 내면과 소통이 없어서 밖으로만 향하려는 공허한 삶의 형태이다.     


한마디로 고독은 나의 삶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하여 혼자 있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타인이나 집단으로부터 배제당하거나 소외받을까 봐 두려워서 싫지만 할 수 없이 관계를 이어 나가는 상태를 말한다. 고독할 것인지 외로워할 것인지의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다거나 또는 옳다고 누구도 말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 고독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보다도 친구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친구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가족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때는 저장된 전화번호가 내 인생의 재산이며,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이고, 동시에 훌륭한 인간성과 사회성을 지닌 인간이라고 착각했던 적도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한해를 정리하는 연말이 되면 저장된 전화번호에서 최소한 반 이상의 이름을 지워나갔다. 이름을 지워나갈 때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를 마음속의 쓰라림, 쓸쓸함, 공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쫓아다녔던 경조사도 대폭 줄였다. 예전 같으면 체면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야만 했던 경조사를 마음 굳게 먹고 가지 않았다. 대신 나의 경조사도 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수없이 많이 지출했던 경조사비의 본전 생각도 났지만, 그것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얄팍한 생각도 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외롭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정답은 ‘아니다’이다. 외롭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좋다.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이후 삶은 풍요로워졌다. 가고 싶지 않은 모임에 가지 않아도 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서 의미 없는 대화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없어서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그 시간에 스스로 계획했던 일을 하고, 책을 읽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인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삶을 유지하면서 살 것이다. 고독은 이제 나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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