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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카게살자 Jun 18. 2024

또다시, 라사(Lhasa)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티베트(Tibet) 라사(Lhasa)는 낯설었다. 거리도 많이 변해있었고 상점, 식당, 잡화점, 주점(호텔) 등은 더욱 화려해져 있었다. 전에는 못 봤던 한국식당도 생겨났다. 티베트가 점점 중국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구걸하는 아이들과 아이를 업고서 동냥을 하는 여인네들이었다. 아니 그 숫자가 그전보다 더욱 많아졌다는 느낌이었다. 티베트에 한족의 이주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만큼 장족(티베트족)의 구걸하는 사람 수는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 라사에 들어가는 방법은 과거와는 달랐다. 그전에는 인천에서 중국 성도(Cheng du)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라사로 향했다. 라사공항에 내려 티베트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번에는 그렇게 타고 싶었던 칭짱열차를 이용했다. 칭짱열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도로, 중국 칭하이성의 시닝에서 티베트 자치구 라사까지 1,965km가 이어진다. 나는 베이징서역에서 출발하여 시닝, 거얼무, 탕구라, 나취, 담슝을 거쳐 꼬박 이틀 만에 라사에 도착했다. 특히 탕구라를 지날 때는 해발이 5,072m에 이르러서 산소통에 의지하며 숨을 쉬기도 했다.     


티베트 고원을 가로지르는 장엄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과 설산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마음이 설렜다. 과연 자연에 비하면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 그런데도 매일 고민하고 번민하며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상처주고 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수만 가지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 휩싸였다. 그러나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일상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망각하고 다시 똑같은 고민을 되풀이할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기차의 객실은 6인실이었다. 제일 좋다는 4인실 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타본 중국열차는 혼돈이었다. 그나마 6인실은 고급이었고 라사까지 꼬박 이틀을 일반 객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가는 승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객실 안에는 사람 땀 냄새와 음식냄새 그리고 알지 못하는 매캐한 향냄새가 뒤섞여 불쾌한 냄새가 났다. 이런 냄새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6인실에 같이 탔던 중국여행객들은 착한 사람들이었다. 직업은 전기엔지니어라고 했다. 라사까지 가는 이틀 동안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과 맥주를 주저 없이 미안할 정도로 끊임없이 내주었다. 그들의 친절함에 인간으로서 따뜻한 정을 느꼈다. 자신들도 휴가를 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티베트 여행을 간다고 했다. 티베트는 외국인은 물론이고 내국인들마저도 여행하기 쉬운 곳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도 나도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라사에 도착해서는 전에 배낭여행과는 달리 중국인 패키지투어에 한자리를 얻어서 그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30여명의 중국인들은 나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다.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도 좋았고 자신들의 여행에 한국인이 같이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신기했나보다. 나는 그들과 짧은 중국어로 몇 마디 하다가 이내 말문이 막히면 필담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우리나라 패키지여행과는 많이 달랐다. 먹는 것도 완전히 달랐다. 정말 이름도 모르는 처음 먹어보는 중국음식들이었다. 가는 곳도 달랐다. 물론 기본적인 유명 관광지는 방문했지만 한국 관광객들은 가지 않는 곳도 많이 갔다. 이런 것이 정말 패키지여행이구나 싶었다. 낯선 중국 사람들과의 여행은 한마디로 신기하고 재밌었다.     


라사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포탈라궁이었다. 전에도 왔었지만 다시 와도 신비로웠다. 포탈라궁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데 관광객들은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고 입장료는 몇 배가 올라있었다. 중국정부는 이제 이곳을 티베트인들의 영혼이 깃든 곳이 아니라 그냥 관광지로 만들어 돈만 벌려고 하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에 동물들을 들여서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저녁에는 라사시내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생각보다 사람들도 많았고 팔자 좋게 어슬렁거리는 떠돌이 개들은 더 많았다. 찻집에 앉아 그곳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손짓과 몸짓으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다. 스마트폰 번역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유쾌하게 떠들고 웃고 신나있었다. 여행은 유명한 풍경을 사진 찍는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경험해보고 친구가 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들은 종교와 삶이 하나였고 오른손에는 마니차를 돌리고 입으로는 ‘옴마니반메홈’을 중얼거리며 삶을 살아갔다.

      

라사의 심장은 포탈라궁이 아니라 조캉사원이라고 한다. 수없이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 야크버터차를 마시는 사람들, 법당 안에 수백 혹은 수천 개 피워놓은 야크버터등불에서 나오는 까만 그을림들. 조캉사원을 나와 바코르 광장 거리를 따라서 티베트인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코라(순례)를 돌았다. 무슨 소원을 빌며 돌았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저 남은 삶이 평안하고 평범하고 무탈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코르 광장 모퉁이에 주저앉아 무심하게 코라를 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중국인과의 패키지여행 덕분에 한국 사람들이 좀처럼 갈 수 없었던 동부 캄(Kham)지역도 여행할 수 있었다. 그곳의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겸손하고 이방인들을 보고도 잘 웃어주었다. 여기 사람들은 생김새도 달랐다. 특히 남자들은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았다. 이곳 지역에 왜 티베트의 전사들이 많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늘호수라고 불리는 남초호수는 또 어떠했는가? 해발 약 4,718m에 위치한 고산호수인 남초호수는 그 아름다움과 신성함이 남달랐다. 크기 또한 어마어마했다. 어떤 이들은 이 호숫물을 성수라며 병에 담아서 가기도 했다. 얌드록초호수와는 확실하게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을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세 번째 티베트 여행을 꿈꾼다. 배낭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한번 여행을 간곳은 웬만하면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으로 가야할 곳이 너무 많아서 같은 곳을 또다시 여행한다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생각마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베트는 달랐다. 그곳에 가면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숨쉬기도 힘들고, 몸 상태에 따라서 고산병에 위험도 증가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모르겠다. 이성적인 판단은 안가야 하는데, 가슴에서 자꾸만 그곳으로 떠민다. 나를 떠미는 것은 포탈라궁의 경건함, 조캉사원의 신성함, 남초호수의 웅장함이 아니다. 그곳에는 그저 마니차를 돌리고 ‘옴마니반메홈’을 중얼거리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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