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건 인천공항 터미널이었다. 그저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대합실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그와 우연히 여행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기왕이면 동행하자고 의기투합이 되었고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햇빛에 탄 얼굴, 약간 화가 난듯한 표정, 투박한 경상도 말투 그리고 귀걸이. ‘남자가 무슨 귀걸이야? 저 친구도 어디서 좀 놀았던 모양이군.’ 그게 그의 솔직한 첫인상 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그는 진중한 사람이었다.
나의 목적지는 쳉두(Chengdu, 중국 사천성 성도)를 거쳐 티베트 라싸(Tibet Lhasa)에 들어가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는 라싸에 잠시 들렀다 네팔로 들어가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할 계획이었다. 비가 내리는 밤 우리는 쳉두에 도착하였다. 무엇이 서글펐는지 비는 추적추적 많이도 내렸다. 으스스하게 추웠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하였다. 비 내리는 쳉두의 밤거리를 오래도록 걷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에 부지런히 출발해야만 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에 도착하여 짐도 풀지 않은 채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 몇은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이다. 인천공항에서부터 만난 그가 그랬다. 우린 연배도 비슷했고, 생각도 비슷했고, 가치관도 비슷했다. 그래서 금방 친해졌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현지에서 발급받은 여행허가서를 가지고 도착한 티베트 라싸는 나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 우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높은 고도 탓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척박한 환경에 순응하며 평생을 살아온 신심 깊고 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오체투지. 그들에게 신앙은 곧 삶이었다. 그들의 삶에서 신앙은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깊은 신앙심을 가져야 저렇게 몇 년의 시간을, 수십 개의 도시와 작은 마을을 거쳐 한 가족 모두가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까지 올 수 있을까? 108배만 해도 허리가 끊어질듯했던 나에게는 충격을 넘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친구와 나는 말없이 멍하니 서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여행이나 인생이나 비슷하다.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계획했던 여정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라싸에서 쳉두로 돌아가야 하는 비행기는 여행사의 예약실수로 타지 못했다. 휴가는 일주일밖에 없었다. 결론은 회사에 제때 출근하기는 이미 틀렸다. 그러나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했던 마음을 포기하니 오히려 편안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그 상황에 딱 어울리는 티베트 속담이 떠올랐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었던 티베트 라싸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2박3일 우정공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정공로는 옛날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가 티베트로 시집왔다는 길로써 '우정공로(友情公路· Friendship Highway)'는 그 이름이 뜻하듯 네팔과 티베트의 오랜 관계를 보여주는 티베트와 네팔을 잇는 공식적인 거리만 해도 920km에 달하는 길이다. 그 우정공로를 낡은 밴을 타고 달리면서 보았고 느꼈던 풍경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파랗다 못해 쪽빛이 나던 하늘, 진짜 공기의 냄새는 이런 향기구나라고 느꼈던 깨끗한 공기, 처음 본 야크떼들, 청보리밭, 멀리 보이는 설산,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았던 적갈색의 산들 그리고 낯선 이방인을 보고도 해맑게 웃어주던 유목민 어린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밥벌이를 위해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그리고 친구는 남아서 본격적인 자신의 여행을 준비했다. 그렇게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헤어졌고 아주 가끔씩 연락을 했다. 어디에 있든 서로의 삶을 응원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나건 10년쯤이 지난 인도 뉴델리였다. 그는 인도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났다는 한국여성과 결혼을 했고 예쁜 딸아이도 낳았다. 그곳에서 그는 조그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정착해서 아내와 딸과 잘살고 있었다. 적어도 그 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탁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부산 광안리 포장마차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사람들에게는 별의 숫자만큼이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는 아내와 딸을 인도에 남겨두고 혼자만 돌아왔다고 했다. 얼굴은 초췌해보였고 살이(生)는 더 힘들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 살 것인지도 묻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지도 묻지 않았다. 다만 건강은 괜찮은지 물었다. 좋지 않다고 했다.
그 후로 아주 가끔씩 생각이 나면 그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또 금방 잊어버렸다. 그를 처음 만난 날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가 변한 만큼이나 나도 변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시간을 여기저기 떠돌았다.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내가 스스로 결정했던 지나온 삶에 후회는 없다. 오늘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먼저 건강은 어떤지 묻고, 그동안 별일은 없었는지 안부를 묻고 그리고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팍팍한 세상살이 푸념이나 실컷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