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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니 Sep 28. 2023

가족사전 #아빠라는 존재1


2013년 내 나이 24살 11월 겨울,

아직은 래지지 않은 마음이다. 보슬보슬 눈이 오던 날 린 겨울의 공기를 뚫고 아빠의 집을 찾아갔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떠한 강력한 이끌림이 있었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고 결코 돌아오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아빠집을 향해 스스로 걸어갔다. 저항할 수 조차 없는 강력한 그 어떤 이끌림이 있었다. 핏줄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이 있었다.  그렇게 한걸음 두 걸음 아빠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함덕리 평사동. 바다가 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옛 돌집 하나. 그곳에 아빠는 혼자 살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와 주는 이 없이, 혼자서 거센 바닷바람과 모래바람을 견뎌내며 아빠는 그 집에 홀로 살았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을 때에도 집 지붕은 매서운 바닷바람과 태풍으로 인해 천장이 살짝 주저앉아 있었다.

 천장이 주저앉았는데도 아빠는 천장을 고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아빠는 친구와 함께 작은 양봉장을 만들고 운영하였는데 술이 웬수인지 친구가 웬수였는지 헐값에 친구에게 대표자리를 넘기고 회사에서 나왔다. 그 뒤로 더욱 술을 마셨다. (한참 뒤 내 나이 서른 즈음에 아빠에게 왜 그렇게 술을 퍼드셨냐 물어 들으니 그때 화병이 났다 했다. 그래서 울화가 치밀어 더욱 술을 마셨다한다. 커서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다른 일거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밭일도 해보았지만 술로 인해 흐지부지되고 다툼이 생겨서 나중에 더는 아빠에게 일을 주는 곳도 없게 되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생계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지붕이 무너지는데도 고칠 돈도 없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집에서 그렇게 힘겹게 같이 살아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고, 언덕 위 폐허처럼 변해버린 그 집에서 아빠만이 혼자 살고 있었다.


 내 나이 9살, 그리고 내 남동생은 6살이던 때에

 우리 남매는 아주 깊은 고요한 새벽에 엄마의 손을 잡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빠는 술을 마실 때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동생과 내게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엄마가 미울 때가 많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술을 마실 때면 엄마에게 매우 폭력적이고 거친 사람이 되고, 우리에게도 무서운 사람으로 변했다.

 그날도 아빠는 술에 얼큰하게 취해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술에 취해 잠이 들기만을 기다렸다가 이내 아빠가 깊은 잠에 들자, 모든 짐을 그대로 남겨두고 우리 남매의 손만 붙잡고 부리나케 도망 나왔다. (동생이 엄마를 따라 도망가려고 신발을 미리 숨겨두었던 이야기는 동생전에서 다루도록 하자.) 행여 짐을 챙겨둔 모습을 아빠에게 들켰다가는 도망갈 수도 없으려니와, 그의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폭력 끝에 엄마는 지난번처럼 우리 남매만을 남겨둔 채 혼자서 쫓겨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튼 그 뒤로 쭉. 지금까지. 어쩌면 우리 남매와 엄마는 야반도주의 삶을 그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깊은 한밤중 빠져나오던 그날에,

 우주에 어떤 신이 정말 있다면, 아빠가 결코 찾을 수도 없고 아빠를 만날 수도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주시기를. 그리고 나를 얼른 자라게 해서 엄마와 동생을 지켜줄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에서였는지 내 나이 스물네살의 겨울에 돌연 아빠를 찾아나섰다. 아빠와 지냈던 시간들은 정말이지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엄마와 야반도주를 할 때에 내 마음 속으로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단단히 맹세하며 다짐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짐하고 빌었던 마음은 어디를 간 것인지, 나는 어째서 이곳까지 내 두 발로 찾아온 것인지 후회가 다시 몰려왔다. 이런저런 생각의 사투... 결국,

'아냐. 이왕 이렇게 온 김에 멀리서라도 아빠의 그림자라도 보고 가자.'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언덕 계단을 한 계단 두 계단 올라가 보았다.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와 집을 보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아니었다. 현관 유리창이 모두 부서지고 천장은 텅하니 내려앉아버린 폐허인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아빠는 살고 있지 않았다. 깨지고 허물어진 집 속을 들여다보니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파손된 벽에 우리 남매가 아가였을 때 그렸던 낙서들만 보였다. 크레파스로 벽에 그림을 가득 채웠던 남동생과 나. 아빠는 돈이 없어서 페인트로 이 벽을 못 칠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남겨두었던 것일까. 어찌 되었든, 집 더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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