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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니 May 14. 2024

가족사전 #아빠라는 존재 8화



 아빠는 또다시 중매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지만 애원하듯 중매쟁이가 설득하는 통에 마지못해 등 떠밀려 나가듯이 엄마와 중매를 했다. 마을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한 다방으로 갔다. 등 떠밀려 나간 것 치고 아빠는 굉장히 일찍부터 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양복과 셔츠도 말끔히 다려 입고 나왔다. 아빠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그동안 마음 한구석으로 깊이 묻어두며 잊고 있었던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피어오르려 하는 것을 느꼈다. 그 마음을 애써 침착하게 꾹꾹 누르고 있었다. 아직은 만나려는 상대가 나오지도 않았고, 무엇인가 잘 이루어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사자에게 들어봐야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중매쟁이의 말들이 사실이 맞는지, 이 여자는 자신에게 거짓이 없을 여자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따뜻한 봄날에서 여름으로 가던 날, 길가에도 들꽃이 가득해 기분 좋은 향기가 나던 그날에 엄마는 열린 다방문 사이로 고운 봄날의 향기와 함께 살며시 들어왔다. 신경 쓴 듯 곱게 빗은 단발머리에 적당히 통통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마흔 중반이 넘는 여자였지만, 아빠의 눈에는 수줍음 많은 시골마을의 소녀처럼 보였다. 아빠는 들어오는 엄마를 보자마자 마음속에 꾹꾹 눌러두고 있던 감정들이 일순간에 확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설레임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아빠는 목에서부터 뜨끈한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애써 그런 모습을 감추며 서둘러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도 두 사람은 서로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의 눈도 잘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쪽으로 둔 채 연신 커피만 홀짝홀짝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두 볼을 불으스름히 밝히며 낯을 심히 가리는 여인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찬찬히 엄마를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아왔는지 얼굴과 손 주위에 검게 그을린 주근깨들이 있었고, 손톱 사이사이에도 흙 떼가 껴있었다. 여러 번 씻어도 씻겨지지 않을 고생의 흔적이었다. 아빠의 눈에는 검게 그을린 피부와 손톱에 흙이 껴있는 엄마의 모습들이 부지런한 삶을 사는 여인이라 비추어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검게 그을린 피부이지만 그 피부결 사이로 보이는 귀여운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전부인들에 대한 일들로 마음속에 크고 작은 의심들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확실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다시금 반복된 실수나 헤어짐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더 이상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중매쟁이의 얼굴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솟아오르는 감정들을 애써 꾹꾹 다스리며 엄마에게 찬찬히 질문을 해야 했다. 어째서 고아가 된 것인지, 왜 소섬(*지금의 우도)에서 나와 여기서 혼자 지내게 된 것인지, 전남편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녀들은 몇 명이고 몇 살인지 등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 듣고 싶은 대답이 많았다. 그는 중매쟁이로부터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에 하나의 거짓도 없기를 바라며 드디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나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 장게 갔당와수다. 아덜도 둘 이꼬예. 호나는 자기어멍이 데령가불고 호나는 나가 키웜수다. 이녁은 어떵 혼자 여기왕 살암수꽈?(두 번 장가를 다녀왔어요. 아들도 둘 있구요. 하나는 자기엄마가 데려가버리고, 하나는 제가 키우고 있어요. 그쪽은 어떻게 혼자 여기와서 살고 있는거죠?)  "


 아빠는 사실 엄마가 어떻게 혼자 살게 된 것인지 가장 궁금했던 본론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혼자이게 되었지를 먼저 이야기했다. 엄마는 중매쟁이와 같은 말로써 아빠의 질문에 답했다. 대충 6살에 고아가 되어 양할머니에게로 입양되어 소섬에서 물질을 하며 살았던 이야기들, 거기서 결혼을 하여 자녀 둘을 낳고 지내다 전남편이 술집여자와 바람이 나서 쫓겨났다는 이야기였다. 아빠는 비로소 중매쟁이가 자신에게도 해주었던 똑같은 이야기인 엄마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음에 조금 의심이 거두어지고 그제야 조금 더 상냥히 엄마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얘기는 대부분은 진실이되 어떠한 부분은 진실이 아니었다. 고아가 되고, 양할머니에게 길러지고 전남편에게 쫓겨난 것은 사실이었지만, 엄마는 자녀를 넷 낳았다. 결국 이 이야기는 엄마가 아빠의 동거가 시작된 후 조금 지나자마자 아빠가 알게 되었고 그 후부터 아빠는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이 이야기를 걸고넘어지며 엄마를 때렸다. 엄마의 자녀들이 아빠에게 준 영향은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나영 고치 산에 가쿠과? 저 선흘리에서 양봉햄수다 (나와 함께 산에 갈래요? 저 선흘리에서 양봉합니다)"


  원하던 모든 답을 듣고서는 아빠는 본격적으로 엄마를 꼬셔볼 속셈이었던 것이다. 양봉을 하고 있는 밭들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그리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자기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건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비록 두 번의 이혼과 아들 둘이 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아무 흠도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앉아, 아빠의 허리춤을 꽉 붙잡고 함께 양봉밭으로 달려갔다.


 이때 엄마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 처음 보는 두 남녀, 그리고 그 두 사람 모두에게는 고단하고 황폐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삶이 그들을 속였고, 사랑의 박탈감으로 홀로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외로운 두 사람. 엄마는 아빠 허리춤의 옷깃을 꽉 붙잡았을테고, 아빠는 비어있던 자신의 옆구리가 따뜻하게 채워지는 설레임을 느꼈을 것이다. 귤꽃 향기 가득한 산길을 달려갔을테니,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달려가는 그 길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향기로운 길이었을까.


 그랬기 때문에 그들에게 내가 찾아온 것일 것이다. 나는 그날 생겼다. 엄마는 아빠의 양봉밭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빠는 엄마의 검은색 피부 뒤 귀여운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그날 양봉밭, 아빠가 잠시 낮잠을 자며 마음도 몸도 쉬어가던 그만의 공간에서(아빠는 양봉밭에 일하다 잠시 쉬기도 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작은 창고를 지어놨었다. 나와 남동생도 엄마아빠가 양봉밭에서 일을 할 때면 이곳에서 놀며 그들을 기다렸다), 외로운 두 남녀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처럼 예쁜 딸이 이 두 사람에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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