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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니 Jan 14. 2024

가족사전 #6

아빠가 두 번째 아내를 때리며 싸우기 시작할 때부터 이들의 불화에 대한 소문은 마을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마침내 이혼하게 되었을 때에도 중매쟁이에게 이 소문이 들어갔다. 각시들이 하나같이 아빠를 속이고 결혼했다는 둥, 착하던 시아(아빠의 일본이름)가 술을 먹고 두 번째 각시를 패기 시작했다는 둥 이러한 소문들이 마을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온 동네에  퍼져 나갔다.


중매쟁이는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에 이어 이번 일까지 이렇게 되니 상당히 미안했던지 한동안 아빠를 찾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얼마 못 가서 아빠를 찾아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아주머니들 마치 자기 일인 양 그 중매쟁이에게 책임을 자꾸 물으며 따지러 오니 자신도 너무나 답답했던 것이다.


"아이고 시아야. 나가 겅한 줄을 알아샤(내가 그런 줄 알았나). 나신디 가이네 식개덜이 고라 줄 때에는 그추룩한 기덜을 안해쭈게(나에게 그 집 식구들이 알려줄 때에는 그러한 얘기들을 안 해주었다.)"

중매쟁이는 자신은 정말 몰랐다고 아빠에게 연신 말을 하며 죄스러워했다.


"*삼춘, 이제 나신디 찾아오지도 말고 예자 소개해주캔 말도 곧지 맙써(이제 나에게 찾아오지도 말고 여자 소개해주겠다고 얘기하지도 마세요)."

아빠는 화를 꾹꾹 누르며 중매쟁이에게 대답했다.


"느 그추룩 혼자서 아덜 둘 키우잰 허난 어떵 애조람실꺼니 *조케야( 너 그렇게 혼자서 아들 둘을 키우려고 하니 얼마나 애가 타겠니 조카야). 나가 이번에는 요보록소보록 제라헌 예자 알아봐주켜(내가 이번에는 힘을 써서 정말로 좋은 여자를 알아봐 주겠다)."

중매쟁이는 아빠를 설득했다.


"돼수다(됐습니다). 더 고를 말도 어수다(더 할 이야기도 없다). 멀리 안나가쿠다(멀리 안 나가겠다)."

아빠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버렸다.


중매쟁이는 한참을 앉아있다가 혼자 무엇이라 중얼중얼 거리며 문 밖을 나섰다.

"아이고.. 아방어멍 복도 없고 예자 복도 어신 아이주(아빠엄마 복도 없고 여자 복도 없는 아이지).."


나가며 혼잣말하 중매쟁이의 이야기를 아빠는 듣고 있었다. 마음에서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화가 들끓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까스정신을 붙잡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같다. 아빠는 가정을 꾸려가길 바랐다. 본래 4.3으로 잃어버린 빈 가정이었지만 본인이 최선 노력을 다해서 하늘아래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러한 간절한 바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아내들을 생각하면, 마치 자신의 심장 날카롭고 예리한 칼 깊숙이 들어와 뽑혀져 나가는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래도 견뎌야 했다. 아들 둘을 키워 학교에 보내야 했고, 아들들은 아빠살이고 피붙이였다. 아내들은 남이 있어도 아들들은 혈연으로 묶어진 가족이요, 오롯한 자신의 살이라고 느꼈다(그래서인지 아빠는 엄마와 우리가 야반도주를 했을 때에도 수년간 수소문을 하며 나와 남동생을 찾아다녔다.). 마음이 괴롭고 분하여 잠을 이룰 수 없어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 잦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밤낮으로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빠는 동네 여인들의 입방아에 마치 맛있는 반찬처럼 입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 양장점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서 사람이 찾아오기 힘든 풀이 무성하고 외진 중산간 쪽에서 벌통을 놓고 양봉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제주는 지금처럼 개발이 지 않아서 더욱 울창하고 길도 험한 숲들이 많았다. 그리고 양봉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빠는 친구와 함께 작은 양봉장을 차렸다. 양봉장은 차츰차츰 번성해 갔다. 벌통을 놓 곳도 많아지고, 십시일반 일터를 손보고 기계들을 들여 좋은 양봉장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동네에서도 이제 시아가 마음을 다잡고 아이도 잘 키우며 일도 열심히 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빠에게는 아프고 뜯겨진 상처들이 여전히 마음 깊숙이 있었겠지만, 묵묵히 아이들을 살뜰히 돌보고 양봉일을 해나갔다. 어느덧 중학생이 된 큰아들과 국민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별안간 첫 번째 아내였던 사람이 집으로 갑자기 찾아왔다. 느닷없이 찾아온 그녀는 자신의 아들(나의 큰오빠)을 데려가게 해달라고 울며 목놓아 사정을 했다. 아빠는 분개하며 따져 물었다. 혼자서 다 키워 놓은 자식을 이제와 무슨 연유로 이렇게 데리고 가려느냐고 말이다. 큰아들도 저만큼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어느덧 중학교에 들어간 큰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바닥에 떨군 채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 키운 거 알주마씸 폭삭 속아수다(다 키운 거 알고 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지원이아방 나 영 빌엄수다(지원이아빠 나 이렇게 빌어요). 지난 세월을 멀리서만 봥 간 마씸(지난 세월을 멀리서만 보고 갔어요). 나가 그땐 부애도 막나고 돈이 어시난 아들주랜을 차마 못해수다(내가 그때는 화도 많이 나고 돈이 없으니 아들 달라는 말을 차마 못 했어요). 나 영 빌엄수다(나 이렇게 빌어요). 야이도 이제 다 커시난 나영 살아도 아방보러 자주 올께라 마씸(이 아이도 이제 다 컸으니 나와 살아도 아빠 보러 자주 올 거예요)."

그녀는 울며 불며 아빠에게 사정하며 설득했다. 하지만 어떻게 십수 년을 키운 아들인가. 그리고 자신의 피붙이인 귀한 큰아들이었다.


"미친 소리 하지말앙 재기 나가라(미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나가)! 확 다 모사불기 전에(확 다 부숴버리기 전에)!"

눈물 콧물 흘리며 두 손을 싹싹 빌며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도 아빠는 절대 아들을 못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큰아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저도 엄마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아빠는 큰아들에게서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뭐라 큰소리를 칠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큰아들은 당연히 자신의 편을 들어주며 아빠와 함께 살 것이라고, 당장 나가라고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난 세월 어떻게 키웠던 아들인가. 그런데 그런 큰아들마저 자신의 엄마와 함께 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하니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며 허망했을까.


하지만 계속 울며 사정을 하는 그녀의 모습과 그 옆에서 고개 숙인 채로 이제는 끅끅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아빠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와 큰아들의 소원에 따라 큰아들을 보내주기로 했다. 보내주기보다 큰아들의 그러한 마음과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계속 안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대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만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아빠에게 보낼 것을 약속받았다.


큰아들이 그렇게 자신의 엄마에게로 떠난 뒤에 한 동안 아빠는 작은아들과 단둘이 지냈다.




* 삼춘 : 제주에서는 웃어른을 부를 때 남여의 성을 불문하고 '삼춘'이라 부른다.

* 조케 : '조카'의 제주 사투리. 친인척 간이 관계에서도 쓰는 표현이지만, 나이가 한참 밑의 어린 사람을 부를 때에도 이러한 호칭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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