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나의 이복 큰오빠)이 자신의 엄마(아빠의 첫 번째 아내)와 함께 집을 떠난 뒤, 아빠는 허망하고 마음 쓰린 날들을 줄곧 보냈다. 처음에는 그의 엄마가 약속한 대로 자주 큰아들을 집으로 보내 주었지만 점점 학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 가지 사정을 둘러 가며 점차 보내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몇 달째 큰아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아빠는 화가 났지만 공부 때문이라 하니 마냥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의 속상하고 허탈한 마음보다 더 큰 문제는 둘째 아들(나의 이복 작은오빠)이었다. 형이 보고 싶다고 매일 같이 울어댔다. 둘째 아들에게도 갑작스럽게 떠난 형은 큰 충격이자 그리움이었다. 둘째 아들이 아직 어렸던 탓에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형이 이복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큰아들은 둘째 아들이 배다른 형제인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아우라 여기며 놀아주고 아끼며 보살펴 주었다. 그런 형을 아빠보다 더 잘 따랐던 둘째 아들이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을 두고 떠나는 엄마(아빠의 두 번째 아내)를 보면서도 헤어지는 줄 몰라 울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말도 못 뗐을 때 떠나버린 자신의 엄마는 기억할 수 없더라도, 같이 놀아주며 안아주던 같이 웃고 놀았던 자신의 이복형이 떠나는 줄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아들은 그만큼 어느새 자라있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짐을 꾸리는 형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그때 그 여자가 형의 친엄마, 자신과는 다른 엄마에게서 낳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별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짐을 꾸릴 때부터 옆에서 가지 말라고 울며 떼를 썼다. 우는 자신을 뒤로한 채 말없이 현관을 나서고 마당을 나서는 형을 줄곧 둘째 아들은 따라가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며 늘어졌다. 울며불며 형의 바짓가랑이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는 둘째 아들, 그런 둘째 아들을 첫 번째 아내는 안간힘을 다해 떼어놓으려 애를 썼다.
아빠는 둘째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말리지 않았다 했다. 어쩌면 아빠도, 아니 아빠도 그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빠는 기를 쓰고 붙잡으려는 둘째 아들과 그런 둘째 아들을 안간힘을 다해 떼어놓으려는 첫 번째 아내의 한참 된 실랑이를 보다가 그러다 둘째 아들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결국 나중에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형이 곧 올 것이라고 얘기해 주며 어르고 달래 데려왔다 한다. 그렇게 남겨진 두 사람. 아빠와 둘째 아들은 한동안 그렇게 두 사람이서만 지냈다.
아빠는 여전히 양봉일을 하며 지냈다. 산에 가서 조용히 벌통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에서 벌통을 만지고 꿀을 모아 내렸다. 꿀벌들은 제시간에 꿀을 찾아 꽃을 찾아 밖을 나섰다가도 잘 모아진 꿀들을 가져와 집을 채워갔다. 여왕벌은 꿀벌들의 보호 속에서 수많은 알을 낳았다. 아빠는 이 단순하고도 소중한 벌들의 일상 속에서 복잡한 잡념들이 사그라드는 것 같은 평온함을 느꼈다. 하지만 일을 마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특히 마을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다시금 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고, 안개처럼 자욱한 먹먹함을 느꼈다. 마을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 첫째 각시에게 아들을 뺏겼다는 둥, 그러다 둘째 아들마저 자기 엄마가 데려가버리면 어쩌냐는 둥, 왜 아들을 줬냐는 둥 이런저런 말들을 서슴없이 아빠에게 물었다. 들으면 더 속상한 이야기들, 하나같이 아빠의 마음속에 불을 붙이며 펄펄 더 끓어오르게 만드는 그런 말들이었다. 둘째 아들을 볼 때마다 아빠는 내가 이 아들만은 절대로 보내주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했다. 두 번째 아내가 돌연 듯 찾아와 울며불며 사정을 할지라도, 절대로, 아니 저기 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지도 못하도록 얼음장을 내야지. 둘째 아들과는 얼굴도 볼 수 없도록 단단히 단속을 해두어야지 하고 생각했다(다행인지 아닌지 두 번째 아내는 둘째 아들을 찾아오는 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둘째 아들, 나의 작은오빠는 20대 중반 무렵 혼자서 독립을 하겠다고 아빠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엄마에게도 찾아가지 않다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할 즈음 자신의 엄마를 찾아갔다고 한다. 아빠에게는 내가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그 뒤로도 찾아온 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도 아빠는 오빠의 결혼 소식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손주가 둘씩이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일어나버린 상실과 아픔으로 인하여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상실과 아픔에 대한 생각으로, 아빠는 수많은 시간을 힘겹게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이겨내 보려 애를 썼다. 아직은 둘째 아들에게서 희망이 있었다. 추운 겨울 지나 여러 봄비 맞고서 이윽고 포근한 봄에 올라올 고사리를 기다리듯이 아빠는 둘째 아들에게서 아직 희망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아빠 됨을, 오롯한 자신의 피붙이가 존재함을, 아빠는 둘째 아들을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날마다 그렇게 되새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 또다시 그 중매쟁이가 아빠를 찾아왔다.
"시아 집에 이시냐(시아 집에 있니?)"
"무사 또 완 마씸(왜 또 왔어요?)"
"조케야 느가 영 된 것이 아맹 생각해봐도 나 죄인 거 닮고.. 게난 나가 막 근심 재워졍 고만히 이서 지크냐 (조카야 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죄인 거 같고... 그러니 내가 정말 걱정이 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니?"
"삼춘, 나 괴롭히지 말앙 제발 좀 이추룩 살게 그냥 놔둡서! (삼춘, 저를 괴롭히지 마시고 제발 좀 이렇게 살도록 그냥 놔두세요!)"
"시아야 나가 정말 이번에는 확실하게 알아봤쩌, 아방어멍 어시 고아로 살당 양할망신디..(시아야 내가 정말 이번에는 확실하게 알아봤단다. 아버지 어머니 없이 고아로 살다가 양할머니에게.."
"그만 고릅써! 삼춘이 나신디 어떤 낯짝으로 초자왕 영 나를 괴롭혐수꽈? (그만 말하세요! 삼춘이 나에게 어떤 낯짝으로 찾아와서 이렇게 나를 괴롭힙니까?"
"조케야 나가 죽엉 저승에 가민 느네 어멍 아방 얼굴을 어떵 볼 수 이시크냐(조카야 내가 죽어 저승에 가면 너네 엄마 아빠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겠니). 춘덕아 이년아 아방도 어시 어멍도 어시 괴롭게 사는 나 아덜을, 무사겅 살게 해샤. 무사겅한 지지빠이덜 중매행 더 조들람시냐 하지 않으크냐(춘덕아 이년아, 아빠도 없이 엄마도 없이 괴롭게 사는 내 아들을 왜 그렇게 살게 했니? 왜 그런 여자들을 중매해서 더 힘들게 살도록 했니라고 하지 않겠니). 조케야 느가 눈 딱 혼번 감앙 이 삼춘말 혼번만 더 들어주라게. 혼번만 이? 제발 혼번만 들어주라 시아야(조카야. 네가 눈 딱 한 번 감고 이 삼춘말을 한 번만 더 들어주렴. 한 번만 응? 제발 한 번만 들어주렴 시아야)"
제주 4.3으로 행방불명이 되신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행방불명으로 인해 화병으로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와 중매쟁이는 어렸을 적 마을 동무였다고 한다. 부모 없이 고아처럼 자란 아빠, 그런 아빠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신해 좋은 여자를 소개해 주고 싶었던 것이 중매쟁이의 마음이었다고는 하지만, 일이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가난과 돈 때문에 떠나버린 첫 번째 아내와 전 남편과 숨겨놓은 아들 때문에 집을 나가버린 두 번째 아내까지, 이 문제 만으로도 아빠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온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모든 쓴소리와 원망의 말을 중매쟁이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급기야 얼마 전 큰아들까지 첫 번째 아내에게 빼앗겼다는 이야기까지 온 마을로 다 퍼져나갔으니, 이 원망과 비난까지 중매쟁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늘어나 버렸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수 있는 소문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중매쟁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에 매서워있던 눈빛이 조금 풀어진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선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조케야 나 말 들엉 혼번만 만나보라게. 가이도 부모 어시 고아로 크당 양할망신디 거둬졍 소섬에서 물질 하멍 산 아이주게. 겐디 조케야 느도 두번 갔당오지 않아샤. 나가 큰 잘못을 했주만은.. 겅해도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실꺼니. 가이도 혼 번 시집 갔당왔댄햄쩌. 너추룩 아이는 둘 이신디 전 서방이 술집지지빠이영 보름이 나그냉 아이덜도 놔덩 가랜하고 각시만 두둘겨 팽 내쫓았댄이. 너추룩 가이도 참 불쌍한 아이여. 영사 둘이 만나잰 일이 이추룩 된 건가도 싶어배고.. 소섬서 쫓겨낭 여기까지 왕 춘자네 밭티서 일하멍 밖거리 살암뗀 햄쩌"
(조카야 내 말 듣고 한번만 만나보렴. 그 아이도 부모 없이 고아로 크다 양할머니에게 입양되어 우도에서 물질을 하며 살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조카야, 너도 두 번 (결혼하지) 갔다 오지 않았니. 내가 큰 잘못을 했지만.. 그래도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 아이도 한번 시집갔다 왔다고 하더라. 너처럼 아이는 둘 있지만 전 남편이 술집 여자와 바람이 나서 아이들을 놔두고 가라고 하고 두들겨 패서 쫓아냈다고 하더라. 너처럼 그 아이도 참 불쌍한 아이다. 이렇게 둘이 만나려고 일이 이렇게 된 건가도 싶고... 우도에서 쫓겨나서 여기까지 와 춘자네 밭에서 일하면서 (춘자네) 밖거리에서 지낸다고 하더라.")
아빠는 한동안 아무 말도, 대답도 하지 않고 중매쟁이가 설명해 주는 여자(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긴긴 시간 듣고만 있었다. 아빠는 중매쟁이 이야기를 듣다가도 한 번씩 눌러두었던 성이 올라 나올 듯했지만 그때마다 중매쟁이는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서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 남겨진 둘째 아들 이야기를 들먹이며 아빠의 성난 마음을 눌러 가라앉게 하고, 자신의 말에 설득 되도록 타이르듯 화를 달래듯 말을 이어나갔다. 마침내
"게민 나가 이번에 삼춘혼티 혼번 더 속아주는 심정으로 만나보쿠다. 대신 이번이 마지막이우다. 이번에도 뭔 문제가 생기믄 그땐 여기 발 드릴 생각도 나 얼굴 마주칠 생각도 하지 맙써"
"아고게! 아고게! 조케야. 막 잘 생각했쩌. 나가 이번에는 진짜여!(어이쿠! 어이쿠! 조카야 정말 잘 생각했다. 내가 이번에는 진짜다!)"
원하던 아빠의 대답에 그 길로 중매쟁이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리고 춘자네할머니네로(중매쟁이의 여동생) 한걸음에 달려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빠는 엄마와 중매를 하게 되었다. 아빠는 마을 사람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어서 함덕이 아닌 조금 더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야하는 김녕리 한 다방에서 엄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어른아이책방의 혀니입니다.
자주 [가족사전] 글을 써서 올리고 싶지만 한글자 한글자, 아빠와의 인터뷰 후 글을 적어가야하고, 그만큼 아빠의 언어로, 아빠의 심정으로 글을 쓰려다보니 시간이 조금 걸리게 되네요 :')
인터뷰를 하는 중간중간 아빠가 그때의 회상으로 감정이 올라와 말을 아끼며 줄일 때가 있는데, 그 부분은 저의 상상을 보태고 아빠의 상황을 헤아려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언어가 아닌 타인의 언어와 시선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구나, 더군다나 아빠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는 것은 저에게는 쉽사리 분리되기 쉬운 감정과 생각이 아닌 듯 해요.
하지만 아빠와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면서, 제 안에 있던 기억 또는 상처의 깨짐과 헤아림들이 생겨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오랫만에 글을 올려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