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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러킴 Nov 28. 2023

엄마로서 길 찾기

남편과 친정엄마 사이


하루아침에 도우미분도 없이 신생아 육아를 맡게 된 나는, 힘들었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했던 지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잘 됐어…‘ 하고 합리화를 시켰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식을 들은 친정엄마는 혹시라도 나의 소중한 딸이 손목이라도 아플까, 몸은 춥지 않을까, 밥은 잘 챙겨 먹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당장 한국에서 캐나다, 그 먼 거리를 오신다고 하셨다. 그 길로 비행기 표를 끊으신 엄마는 도우미분이 그만두신 지 일주쯤 되셨을 때,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캐나다에 오시게 되었다.


마냥 엄마가 온다는 생각에, 내 이쁜 아가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어서 잠도 설친 채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엄마가 혹시라도 걱정하실까 예쁜 원피스에 머리도 예쁘게 묶고 최대한 젊고 예쁜 엄마로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모유 수유를 했던 터라 원피스가 불편했음에도 마냥 신이 났었다 (오프숄더라 다행히 모유수유에는 지장이 없었다).

엄마를 픽업하자마자 내가 꼭 모시고 가고 싶었던 엄마가 좋아하는 브런치 가게로 모시고 갔다. 유모차를 꽤 잘 탔던 아가라 덕분에 편하게 잘 먹었다.


브런치를 다 먹고 드디어 우리가 새로 산 집으로 모시고 가는 길도 마냥 좋았다. 엄마가 오셔서 내가 육아를 덜 해서 좋다기보다는, 내가 이렇게 타국에서 아이도 낳고 건강히 좋은 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대도 잠시, 엄마와 남편은 부딪히기 시작하며 모든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다 비슷할 것이다. 딸 들 집에 가면 뭐 도와줄 것 없나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고 딸이 조금이라도 편하라고 이것저것 해 주시는 것이 엄마 마음일 것이고 우리 친정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오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힘들까 봐 밤새 수유하고 아침에 자고 있으면 방에 살짝 들어오셔서 아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가시기도 하셨고, 우리가 이사하자마자 그다음 날 양수가 터져서 차마 정리하지 못했던 부엌도 정리해 주셨고, 경황이 없어 티비도 없었던 우리 집에 티비도 사 주시며, 가전이 대부분 다 포함인 이 캐나다에서 원래 집주인이 쓰던 세탁기와 건조기에 곰팡이가 가득했지만 바꿀 겨를도 없고,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를 데리고 나가서 세탁기와 건조기도 사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애기 옷장이며 곳곳에 없던 블라인드까지 꼼꼼히 다 체크해 주시고 결제해 주셨다.


그런 한국 친정엄마 스타일이 불편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간섭(?) 한다는 게 불편했던 걸까? 남편은 엄마가 하는 행동들을 거슬려했고, 불쾌함을 표현했으며, 나에게까지 짜증을 내었다. 문화차이라면 차이라지만, 그게 아닌 작은 것들도 불편해하고 짜증내니 나는 또다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루는 엄마가 수박을 사서 다 잘라서 통에 넣어주셨다. 수박껍질은 당연히 집집마다 있는 작은 음식물쓰레기통에 넣어져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려다 갑자기 혼자 화를 내며 짜증을 내더니, 나한테 올라와서는 어머님이 수박 껍질을 한 비닐에만 다 넣으셔서 비닐이 찢어지려고 한다고 화를 냈다. 나의 반응은 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그게 짜증은 날 수 있으나 그렇게 까지 화 낼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참았다.

며칠 후, 엄마가 블라인드를 해 주신다며 치수를 재어 달라고 하셨다. 0.1mm까지 정확하게 하려는 남편에게 엄마는 힘드니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대충 오차 정도는 알아서 해주실 거라며. 그 말이 듣기 싫었나 보다. 끝까지 몇 번을 정확하게 재더니 한숨을 푹푹 쉬면서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날은 집 뒷마당에서 아이 50일 사진 찍으려고 했던 날이라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빴지만, 본인은 안 찍는다고 하며 혼자 한숨과 짜증을 잔뜩 내며 블라인드 치수를 재고 재고 또 재었다.


시댁 이야기는 하자면 끝이 없어서 안 하겠지만, 그렇다고 시댁에서는 그렇게 조심하셨던 것도 아니었던 터라, 나는 기분이 나빴다 - 짧게 말하자면, 아기 모유 잘 나오는지 내 가슴을 찔러보셨다거나, 밤에 8시 넘어서 어머님 아버님께서 비빔밥 해 주신다고 오셔서 그 시간에 재료를 우리 집에서 볶고 식사까지 하시고 가셨던 이야기, 토요일마다 매주 오셔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이야기하시는 것들 등등, 시작하면 끝도 없다.


나는 나의 미래를 그때 짐작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를 내가 어떻게 잘 키워내야 할까. 아빠의 피를 받았겠지만 최대한 영향을 덜 받게 내가 길을 잘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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