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삶을 돌아보고 싶을 때 듣는 클래식

모차르트의 <라크리모사>를 들으며 죽음 연습하기

by 피아니스트 김민지

여러분은 자신의 죽음을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애써 피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죽음을 떠올린다는 것은 조금 낯설고 불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그런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하고 말입니다.


모차르트의 <라크리모사(Lacrimosa)>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곡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됩니다. 이 곡은 그의 절필작이자 유작인 《레퀴엠(Requiem) K.626》의 한 부분으로, 모차르트의 마지막 숨결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1791년, 모차르트는 익명의 의뢰인으로부터 《레퀴엠》 작곡을 의뢰받습니다. 훗날 이 인물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곡을 주문했던 발제크 백작의 하인으로 밝혀지지만, 당시의 모차르트에게 이 의뢰는 단순한 작곡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당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기에, 이 곡을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라 여기며 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끝내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그는 1791년 12월 5일, 《레퀴엠》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중, 특히 <라크리모사>는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펜을 들었던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의 여덟 번째 마디까지만 작곡을 마친 상태에서 숨을 거두었고, 이후 그의 제자였던 쥐스마이어가 남아 있던 메모와 스케치를 바탕으로 곡을 완성하게 됩니다.


'라크리모사'는 라틴어로 ‘눈물겨운’, ‘슬픔에 잠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곡 전반에는 통곡과 탄식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으며, 슬픔이 소리로 형상화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조성은 라단조(D minor)로, 이는 모차르트가 비극과 죽음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던 조성입니다.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도 같은 조성이 등장합니다.


8분의 12박자의 리듬은 마치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거나, 억눌린 울음을 삼키는 듯한 흐느낌을 만들어냅니다. 도입부에서 현악기가 두 음씩 짧게 끊어지는 선율은, 깊은 한숨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합창단이 Lacrimosa라는 첫 단어를 내뱉는 순간, 공간 전체가 압도적인 슬픔과 경건함으로 채워집니다. 이 곡의 가사는 중세 가톨릭의 부속가 ‘디에스 이레(Dies Irae, 진노의 날)’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심판의 날을 앞둔 인간의 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Lacrimosa dies illa
눈물겨운 그날이 오면


Qua resurget ex favilla
먼지 속에서 인간은 일어나


Judicandus homo reus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Huic ergo parce, Deus
그러오니 하느님, 그를 자비로이 굽어살피소서.


Pie Jesu Domine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


Dona eis requiem. Amen.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아멘.


오늘날 우리가 듣는 <라크리모사> 의 대부분은 쥐스마이어의 손을 거친 결과입니다. 이 점 때문에 후대의 음악가들, 특히 베토벤을 비롯한 인물들은 그의 완성이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제자였으며, 그의 버전은 지금까지 가장 널리 연주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남긴 여덟 마디, 그 지점에서 그의 음악은 멈췄지만 다른 손을 통해 이어졌고, 오늘날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삶 역시 그러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멈춘 자리에서 누군가가 다시 이어서 살아가게 되는 것 말입니다.


모차르트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두려움을 <라크리모사> 라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공포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공포마저도 예술과 삶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tempImaged6acs6.heic Jacques-Louis David, La Mort de Marat (1793). Public Domain.


그러니 이 곡을 들을 때는, 죽음을 미리 한 번 연습해본다는 마음으로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불을 끄고 조용히 앉아, 이 음악이 나의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고 가만히 상상해보세요.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여백을 느껴보는 겁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다 채우지 못한 부분을 타인과 세상에 맡길 준비를 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라크리모사’의 장엄한 슬픔을 끝까지 통과하고 나면, 음악이 멈춘 뒤의 침묵과 현실의 공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때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다는 감각을 천천히 확인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죽음을 한 번 응시하고 돌아온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삶을 서두르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음악이 끝난 뒤 남는 고요함 속에서 오늘의 삶이 이전보다 조금 더 선명해져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곡은 충분한 역할을 해낸 셈일 것입니다.


음악 듣기 : https://youtu.be/KcnBPqOddSM?si=D0rLvn3XcdgjLgG2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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