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이 심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클래식

막스 리히터의 <Sleep>을 들으며 꿀잠자기

요즘 잠은 좀 주무시나요?


몸은 피곤한데, 누우면 생각만 더 선명해지는 밤을 보내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반복되는 분들을 위한 음악이 있습니다. 막스 리히터가 만든 8시간짜리 자장가, <Sleep>입니다.


막스 리히터는 현대음악의 거장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의 제자로, 매우 엄격하고 실험적인 작곡 교육을 받았습니다. 베리오의 음악은 종종 난해하고 급진적이었고, 리히터 역시 그 전통 속에서 훈련된 작곡가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펑크 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강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는 클래식 엘리트 교육과 대중 음악의 에너지 사이에서 늘 경계에 서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졸업 이후 리히터는 ‘피아노 서커스(Piano Circus)’라는 앙상블을 결성합니다. 여섯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이 그룹은 스티브 라이히 등 미니멀리즘 음악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반복과 시간, 청취의 방식에 대한 그의 감각을 본격적으로 형성해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리히터 특유의 음악은 이 시기의 실험 속에서 다져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 인생은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우유를 살 돈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결핍의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The Blue Notebooks> 입니다. 이 앨범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깊은 무력감을 느꼈던 그가 세상의 소음과 폭력에 맞서는 명상적인 저항으로서 만든 앨범으로, 그를 세계적인 작곡가로 이끈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 이 앨범을 통해 음악이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현실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5년, 리히터는 전혀 다른 규모의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바로 8시간이 넘는 음악 작품, <Sleep>입니다.


리히터는 현대인이 끊임없는 알림, 정보 과부하, 긴장 속에서 살아가며 진정한 휴식을 잃어버렸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음악이 다시금 쉼터가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감상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음악 말입니다. 이 작품은 구상부터 완성까지 약 2년에 걸쳐 만들어졌고, 그의 아내이자 예술적 파트너인 유리아 마르(Yulia Mahr)와 함께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습니다. 특히 이 작업에는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이 참여해, 인간의 수면 구조와 뇌파 변화가 음악에 반영되었습니다.


<Sleep>은 깊은 수면 단계에서 나타나는 서파 수면(slow-wave sleep)을 고려해 저주파 음역대를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급격한 전개나 자극적인 고음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고, 아주 느리고 미세한 변화만이 반복됩니다. 이는 청자의 뇌가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돕는 설계이면서, 음악이 주의를 끌지 않고 오히려 주의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기 편성으로는 피아노, 현악, 오르간, 신시사이저, 그리고 가사 없는 여성 보컬이 사용되며, 특히 보컬은 언어를 담지 않음으로써, 뇌가 의미를 해석하느라 깨어나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2015년에는 BBC Radio 3를 통해 <Sleep> 전곡이 8시간 동안 생중계 되었는데, 이는 기네스 세계 기록으로도 남았습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조차 청취자들에게 잠들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후 리히터는 이 작품을 <Sleep by Max Richter> 라는 앱 형태로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앱은 애플 워치와 연동하여 사용자의 심박수에 반응하며 음악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앱으로 명상, 집중, 깨어남 등 다양한 상태에 맞춘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는 아내 유리아 마르와 함께 영국 옥스퍼드셔에서 ‘Studio Richter Mah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태양광 에너지와 히트펌프를 사용하는 친환경 스튜디오로, 음악이 인간의 정신뿐 아니라 지구 환경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담긴 공간입니다.


Sleeping Girl, Meyer von Bremen (1867). Public Domain.


우리는 흔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작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리히터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개인적인 노력을 거듭했고, 그 결과 불면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특히 밤의 시간에 스며드는 음악을 통해서 말입니다.


오늘 밤, 혹은 잠들기 어려운 어느 날에 이 음악을 한 번 틀어두고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끝까지 들으려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저 이 음악과 함께, 오랜만에 푹 주무셔보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니까요.


음악 듣기 Dream1 : https://youtu.be/RjeFXf1rqww?si=qQr8VwnMiahWrYV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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