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들으며 잠시 멈춰서기
언제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다음 단계로의 진행을 잠시 내려놓은 채 침묵 속에 머물렀던 시간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멈춤을 실패나 공백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는 한때 무려 8년 동안 작곡을 멈추는 선택을 했습니다. 음악가로서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그는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처음으로 제대로 듣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소리만이 끝까지 남는지를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어쩌면 진짜 자신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들려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는 현대 음악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한때 12음 기법과 같은 복잡한 현대 음악의 언어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탐구했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결국 그를 창작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1968년부터 약 8년간, 그는 거의 작곡을 멈춘 채 침묵의 시기를 보냅니다. 그 시간 동안 패르트가 붙잡았던 것은 새로운 기법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오래된 음악이었습니다. 중세의 그레고리오 성가, 르네상스의 단순한 다성음악 등을 연구하며 그는 음악을 다시 처음부터 배우듯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 침묵의 끝에서 태어난 곡이 바로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입니다.
1978년에 작곡된 이 작품은, 패르트가 베를린으로 이주하기 직전 에스토니아에서 완성한 곡입니다. 원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지만, 지금은 첼로, 비올라,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됩니다. 제목 그대로, 이 곡은 마주 보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서 있을 때 생기는 끝없는 반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반복되지만 정지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깊이감이 느껴지는 구조입니다.
이 곡의 핵심에는 패르트가 창안한 ‘틴티나불리(Tintinnabuli)’ 기법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종’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 기법은, 단순함의 미학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엄격한 규칙 위에 세워진 구조입니다. 두 개의 목소리가 정확한 질서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움직입니다. 하나는 선율을 담당하는 멜로디 입니다. 바이올린이 F장조 음계 안에서 한 음씩, 아주 천천히 연주됩니다. 중심음인 라(A)를 기준으로, 마치 원을 그리듯 조금씩 범위를 넓혀 갑니다. 다른 하나는 피아노가 맡는 성부로, F장조의 으뜸화음인 도–파–라만을 반복합니다. 이 화음은 선율을 이끌지 않고, 그 곁에서 조용히 울립니다. 종소리처럼, 배경처럼,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이 두 목소리는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결합하여 기하학적인 질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음악이 흐른다기보다, 음악 안에 머무르는 느낌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곡이 진행될수록 선율의 길이가 아주 조금씩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결이 퍼져나가듯 두 음에서 시작해, 세 음, 네 음으로 확장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보다, 거대한 공간 속에 가만히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는 소련 체제 아래에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의 <크레도>를 작곡한 후 종교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심한 비난과 탄압을 당했었습니다. 그런 그는 아주 오랫동안 침묵하며 그 모든 것을 지나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갔고, 그 자리에서 다시 소리를 발견했습니다. 패르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복잡한 것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단 하나의 음이라도 완벽하게 연주되는 것을 듣고 싶다.” 이 말은 그가 오랜 침묵의 시간동안 확립한 그의 음악관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그는 중세 음악과 신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웠던 것처럼 보입니다. <거울 속의 거울>은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걷어낸 뒤, 남아 있는 본질만을 우리 앞에 놓습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듣는 사람이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이 곡이 종교적 명상이나 치유의 음악으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거울 속의 거울>은 지금 이 자리에 충분히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곡이라도 악기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데요. 바이올린 버전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투명한 편이고, 첼로 버전은 깊고 묵직한 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사건과 감정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갑니다. 음악으로 치면 끝없이 변주되는 선율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몇 개의 음이 존재합니다. 패르트의 음악에서 반복되는 으뜸 화음, 즉 세 개의 음처럼 말입니다. 사회적 지위나 타인의 평가, 겉으로 드러난 성취가 화려한 선율이라면, 이 세 개의 음은 당신이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뼈대입니다. 아르보 패르트가 모든 기교를 내려놓고 이 단순한 화음에 머물렀듯, 우리 역시 삶에 덧붙여진 수많은 수식어를 잠시 걷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 안의 가장 단단한 으뜸음으로 돌아올 때, 당신이라는 음악은 이미 충분히 조화롭고 온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아무것도 덧칠되어 있지 않은 상태의 나입니다. 이 곡은 그렇게 본질에 가까운 나를 바라보게 하는 음악입니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그동안 겹겹이 입어왔던 페르소나를 잠시 내려놓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의식적으로 외투를 벗듯, 하나씩 벗어 던지는 장면을 그려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나에게 부여된 역할과 기대를 외투처럼 하나씩 벗어보는 겁니다. 나의 직함, 나에 대한 주변의 평가, 히스토리 등 본질이 아닌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남은 상태로 거울 앞에 서 보세요.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온전한 나 자신입니다.
음악 듣기 피아노&비올라 : https://youtu.be/FgAp-KrCxM0?si=zeyytVNTr1mzvV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