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를 들으며 쓰는 '그리고' 일기
우리는 때때로 한 가지 감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을 경험하곤 합니다. 기쁜데 어딘가 아리고, 좋은 일이 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고, 웃고 있으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억지로 감정을 한 가지로 정리하기보다는, 겹쳐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잘 비춰주는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입니다.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의 처음 부분을 듣고 있으면, 마치 별일 아닌 듯 미소를 짓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미소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 보면 그 뒤에 점차 숨은 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하죠. 이 곡이 쓰인 때는 1894년, 드보르작이 미국 뉴욕에서 음악원 원장으로 일하던 시기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그는 성공한 작곡가였고, 이미 <신세계 교향곡>,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 등으로 큰 호응을 얻던 때였죠.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고향 보헤미아(체코)에 대한 그리움과 복잡한 감정이 자라나고 있었어요. <유모레스크> 는 그 모든 것을 편지처럼, 그러나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모레스크(Humoresque)라는 제목도 한 번 짚고 넘어가볼까 합니다. 유모레스크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유머러스한 곡이라 생각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서 유모레스크는 농담이나 장난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웃고 있지만 그 안에 섬세한 정서의 변화와 페이소스(애틋한 슬픔)가 깔려 있는 음악을 의미했어요. 그러니까 이 곡은 웃음과 그리움이 동시에 배어 있는 짧은 정서의 풍경화에 가깝습니다.
이 곡은 우아한 G♭장조의 선율이 마치 조용히 말을 건네듯, 큰 폭을 쓰지 않고 간단한 음정으로 오르내리며 시작해요. 마치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하고 달래는 듯 위로하는 문장처럼 들리죠. 한 문장이 끝나면 바로 이어지는 다음 문장은 살짝 방향을 바꾸며 응답하고, 이런 질문-답변 구조의 프레이즈는 듣는 사람을 천천히 그 대화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리듬을 들여다보면, 이 곡의 캐릭터는 거의 붓점 리듬에서 나온다고 해도 좋아요. 2/4박자 안에서 오른손 선율은 점8분음표–16분음표–8분음표–8분음표 패턴이 반복되는데, 이게 일종의 살짝 절뚝거리는 걸음같은 느낌을 만들어 줍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이 곡은 전형적인 3부 형식(ABA′)에 가깝게 짜여 있습니다. A 부분에서 우리가 잘 아는 대표 선율이 등장하고, B 부분에서는 F♯단조로 조성이 어두워지며 정서가 깊어지고, 화성도 더 다채롭게 전개되죠. 이때 선율은 마치 아리아처럼 진지하고 절절하게 노래하듯 흐르며, 드보르작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A′는 앞의 A와 거의 같은 선율임에도, B라는 여정을 지나고 난 뒤에 마주하게 되니 정서적으로 한층 더 깊게 와닿습니다.
이 모음곡은 원래 피아노 솔로를 위한 곡이지만, 선율이 워낙 매력적이다 보니 이후 수많은 편곡이 쏟아졌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와 피아노, 플루트, 클라리넷 등 거의 모든 멜로디 악기로 편곡되었죠. 심지어 오케스트라 편곡과 재즈 편곡, 가곡으로 다시 태어난 버전까지 다양하게 존재해요. 그만큼 귀에 잘 붙고, 어떤 악기로 옮겨도 곡의 정서가 손상되지 않는 선율이라는 뜻이겠죠.
이처럼 <유모레스크>는 짧은 시간 안에 드보르작의 음악적 언어와 정서를 응축해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우아하고 친근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작곡가의 개인적 배경과 당시의 심리,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많은 연주자와 청중에게 사랑받고, 수없이 편곡되고 재해석되는 것이겠죠. 오래된 명곡에는 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 곡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우리는 늘 한 가지 정리된 감정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삶은 때로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공존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기쁘면서도 허전하고,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고, 사랑하지만 두렵고, 기대하면서도 이미 실망이 걱정되는, 하나로는 도저히 묶이지 않는 마음들이 있죠. 우리는 흔히 이런 양가적인 마음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은 틀린 것처럼 느끼면서요. 클래식이 위로가 되는 순간은 어쩌면 바로 여기에서 오는지도 몰라요. 클래식은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끌어안고 어느 한쪽을 밀쳐내지 않으니까요. 여러 감정이 나란히 공존하도록 허락해주죠.
심리학에서도 이런 양가 감정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정서 수용력 affect tolerance라고 불러요.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흔들릴 때, 어느 한쪽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걸 견딜 수 있는 힘. 이 능력이 높을수록 우울이나 불안, 관계 갈등이 줄어든다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감정은 억누르려 할수록 되레 강해지고, 있는 그대로 허용할 때 서서히 진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모레스크> 를 들으면서, '그리고' 일기를 써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지만(but) 대신 그리고(and)로 이어서 쓰는 일기죠. 예를 들면 “지금 꽤 행복하다 그리고 조금 외롭다.” “마음이 안정됐다 그리고 뭔가 놓칠까 걱정된다.” “사랑한다 그리고 두렵다.” 같은 대조가 아닌 공존의 문장을 써보는겁니다. 이런 문장 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모든 감정이 존중받고 수용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될 거에요. <유모레스크>가 밝음과 그리움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들리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역시 여러 감정이 어우러져 더욱 풍성하고 찬란한 것 아닐까요?
음악 듣기 : https://youtu.be/i-Lj25WO7wI?si=llHLMFO1D9lwARkx 피아노
https://youtu.be/R_qvTNTKFVY?si=8CKMUsE-8lgC-HHp 바이올린,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