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푸릇한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클래식

바흐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를 들으며 식집사가 되어보아요

가끔은 마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들판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긋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요. 아무 성취도, 계획도, 노력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순간들 말이에요. 그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을 더 깊게 만들어주는 음악이 있어요. 바로 바흐의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입니다.


1713년, 바흐는 독일 바이마르 궁정에서 일하던 궁정음악가였습니다. 왕실이나 귀족의 행사를 위해서 작곡하고 연주하는 일을 맡고 있었죠. 한 날은 바이마르 공작 카를 아우구스트의 생일과 사냥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곡을 의뢰받게 됩니다. 그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세속 칸타타인 사냥 칸타타(BWV 208)입니다.


세속칸타타는 말 그대로 종교와 무관한 세속적인 칸타타를 의미합니다.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일상의 이야기나 축하, 사랑, 풍자, 계절, 인물 찬가 같은 주제를 음악으로 풀어낸 작은 극음악이죠. 바흐는 커피 중독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커피 칸타타(BWV 211) 나 농부들의 일상과 축제를 재치 있게 표현한 농부 칸타타(BWV 212) 등 세속 칸타타를 여럿 작곡했답니다.


사냥칸타타의 원제는 <Was mir behagt, ist nur die muntre Jagd>, 우리말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즐거운 사냥뿐>입니다. 제목만 봐도 활기차고 들뜬 분위기의 음악이 그려지시죠? 전체 줄거리는 사냥을 주제로 한 목가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숲의 신·양치기·사냥의 여신 등이 등장해, 훌륭한 영주(혹은 공작)의 미덕과 리더십을 칭송하며 그의 사냥을 축복하는 내용이에요. 그 안에는 우리가 오늘 들어볼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라는 아리아도 들어있어요.


이 아리아는 목가적인 분위기의 아리아로 사냥의 긴장감이나 궁정의 화려함이 아닌, 들판처럼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노래하는 곡입니다. 성악가가 부르는 가사는 이렇습니다. “양들은 선한 목자가 지켜보는 곳에서 편히 풀을 뜯네. 좋은 목자가 지키는 곳이라면 양들은 안전하구나. 통치자들이 올바로 다스리는 곳에서 백성들은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 있고, 나라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네.”


바흐는 당시 종교적·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통치가 안정될 때 느껴지는 평안함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사회가 안정될 때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는 걸 느끼는 것처럼, 이 아리아는 그런 평온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듣는 사람도 이유 없이 마음이 풀리고 긴장이 스르르 내려앉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음악적으로도 이 곡은 4/4 박자의 규칙적인 리듬이 잔잔하게 이어지면서 따뜻한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거기에 더해, 두 개의 리코더가 아주 투명한 음색으로 선율을 이끌며 분위기를 가볍고 맑게 해주는데요. 이 리코더들의 순수한 소리는 기악 파트에서 중심이 되어 산뜻한 분위기를 선물하고, 푸른 들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마음이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는 역할을 한답니다.


또, 바로크 시대에 베이스 라인과 화성 진행을 담당하던 현악기들은 바소 콘티누오라고 불리우며 선율 뒤에서 조용히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은근한 받침 덕분에 음악이 한층 더 포근해져요. 전체 분위기가 무너지지 않게 단단히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윗선율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여유를 만들어주거든요. 바소 콘티누오는 지나치게 드러나진 않지만, 없으면 곡이 허전해지는 그런 존재감을 담당합니다. 그 위에 등장하는 햇살같이 밝은 소프라노 선율은 주인공으로서 곡을 이끌어가며, 듣는 이의 귀를 깨워주는 역할을 해요.

Jean-Ferdinand Chaigneau, Moutons. Public Domain.

이 곡을 들으면 단순히 아름답다는 감상을 넘어, 바흐가 느꼈던 평온함과 안도감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고 싶을 때, 이 아리아를 들으면 좋은 휴식이 되지 않을까요? 또, 이 곡을 들을 때 한 번쯤은 작은 식물을 가까이 두고 바라보는 걸 추천해요. 바흐의 음악이 주는 평화로움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책상 한쪽에 허브를 두거나, 손바닥만 한 다육이를 하나 놓아두는 정도면 돼요. 식물을 바라보거나 잎을 살짝 만지면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연상해보며 차분하고 목가적인 느낌을 일상 속으로 가져오는 겁니다.


사람은 초록색을 보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낮아지고, 심박수도 안정된다고 합니다. 또, 눈이 힘들어하지 않는 색이라 시각적 피로도 덜하고, 식물의 향기나 잎의 부드러운 질감 같은 자연의 자극은 뇌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신호로 작용해요. 이번 기회에 한 번 식집사가 되어서 클래식 음악과 식물을 함께 즐겨보면 어떨까요? 복잡한 생각이 잠시 멈추고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히는데 큰 도움이 되어줄 거에요.


이 음악의 분위기가 좋아서 바흐의 곡을 더 들어보고 싶은 분들께는 종교 칸타타도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종교 칸타타는 기독교적 내용이 담겨 있긴 하지만,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더 잘 느껴지는 곡들이 많아서, 안식처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거거든요. 예를 들어 BWV 147 <마음과 입과 행위와 삶> 같은 종교 칸타타에 수록된 유명 아리아인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같은 차분한 아리아를 재생목록에 담아보는 거에요. 이런 알려진 곡들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차근차근 듣다보면 바흐의 음악이 점차 익숙해지고 편안하게 느껴질 거에요. 하루 중 잠깐이라도 마음을 쉬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바흐의 음악을 들어보세요. 좋은 친구가 되어준답니다.


음악 듣기 : https://youtu.be/xt3DEuw0wjM?si=Pu3nca1w7aHp-j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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