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맞춰 평소보다 천천히 움직이기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자꾸만 서두를 때가 있죠. 별일 없는데도 시간이 쫓아오는 것 같고, 잠깐만 멈추고 싶은데 계속 앞으로 끌려가지는 날. 그럴 때 대부분 우리는 더 빠르게 움직여 해결하려고 해요. 할 일을 빨리 끝내야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믿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이 조급할수록, 속도를 올리는 건 오히려 마음을 더 지치게 해요. 마음은 아직 천천히 걷고 싶은데, 행동이 계속 뛰다 보니 몸과 마음의 속도가 어긋나면서 불안이 커지는 거죠. 그래서 그런 날에는, 마음을 잠시 느린 세계로 데려다주는 음악이 필요합니다.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바로 그 느림 속으로 안내해주는 곡이에요.
이 곡은 3/4박자의 느린 궁정의 춤으로 라벨이 느리게 연주할 것을 특별히 지시했어요.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느가 아니다." 라고요. 즉, 느리지만 장례곡처럼 질질 끌어서는 안되고 춤으로서의 추진력이 살아있어야하죠.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제목에 쓰인 “죽은 왕녀”때문에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은 이 곡을 자연스럽게 슬픔·비탄·장례식 분위기와 연결했고, 실제로 장례식 연주 요청을 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라벨은 그런 요청에 불편함을 표시했습니다. 이 곡은 라벨이 직접 말했듯 어린 공주가 생전에 궁정에서 추었을 법한 춤을 떠올린 음악이에요. 즉, 장례식 음악이나 죽음을 애도하는 곡이 아니며, 비극적인 사건을 묘사한 것도 아니랍니다. 라벨은 단지 프랑스어 발음이 아름다워 제목으로 붙인 것일 뿐, 죽음이라는 단어 선택에는 상징적 의도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오해를 풀려면 작곡가 라벨의 성격과 심리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라벨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후대 연구자들이 라벨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 프랑스어 “퓌되르(pudeur)”인데, 이는 내면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감정을 우회적으로 다루는 태도를 뜻합니다. 라벨은 사랑, 슬픔, 외로움 같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것을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음악에서 감정을 직접적으로 폭발시키기보다, 감정을 일종의 구조 속에 정교하게 배치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이런 태도로 볼 때, 이 곡의 제목에 “죽은 왕녀”라는 이미지를 사용한 것도 곧바로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우회적 장치라고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을 “스위스 시계공”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데, 그만큼 라벨은 작곡할 때 디테일과 정밀함에 집착했는데요. 라벨은 감정을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방식보다, 음과 색채를 하나하나 계산해서 정확하게 배치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 점이 바로 라벨과 드뷔시를 뚜렷하게 나누는 지점입니다. 둘 다 색채감 있는 소리를 쓰고 확장 화성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드뷔시는 형식이나 구조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울림과 분위기를 더 우선적으로 작곡했거든요. 반면 라벨은 현대적 화성과 울림을 쓰더라도 고전적 형식미 즉 균형, 대칭, 구조, 질서와 같은 것을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색채가 구조의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요. 이 곡을 듣고, 슬프긴 하지만 감정이 무너지는건 아닌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라벨은 이 곡에서의 죽은 왕녀를 스페인의 왕녀라고 밝혔기 때문에 이 곡을 이해할 때 라벨의 가족 배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벨의 어머니가 바로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 출신이거든요. 라벨은 어릴 때부터 스페인, 바스크 민요와 자장가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 곡의 스페인 궁정 느낌은 단순한 이국적 취향이 아니라, 라벨이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정서적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아요. 라벨은 어머니와 정서적 유대가 매우 깊었는데요.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라벨이 한동안 작곡 활동을 중단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라벨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기본적으로 모성애적 정서에 크게 의존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배경이 잠재적으로 음악에 반영됐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곡은 G Major 로 시작하지만 조성이 잠시 이동하고 선법이 삽입되는 부분도 있어 분위기가 계속해서 미묘하게 바뀌는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관현악 버전에서는 주 멜로디를 호른이 연주해서 왕실 음악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플루트, 오보에, 하프가 그 뒤에서 가볍고 반짝이는 느낌을 더해주고요. 현악기는 소리가 너무 두껍지 않게 정리해서 배치돼서 전체가 과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줍니다. 그래서 곡 전체를 들어보면 소리가 풍성하게 쏟아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얇고 섬세한 질감으로 계속 유지되는 느낌을 받게 된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느리고 조용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균형을 유지한 채 흘러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이걸 마음챙김으로 가져올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어요. 일상 속 파반느라고 해서 음악 속도에 맞춰 할 일을 조금 천천히 해보는 거에요. 평소보다 20~30% 정도만 느리게 양치를 하거나 머리를 빗거나 하면서 지금 내 손의 느낌이 어떤가? 하고 의식해 보는 것도 좋고요.
마음을 다루는 방식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마음만 직접 조절하려고 하면 오히려 힘들 때가 많아요. 대신 몸의 속도를 잠깐 낮추면 마음도 그 리듬을 따라가면서 정리되곤 하죠. 몸과 마음을 따로 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거에요. 느리게 행동하기는 복잡한 훈련 없이도 쉽게 실천 가능한 마음–몸 통합 방식의 마음챙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명상을 꼭 오래 앉아서 하거나, 조용한 곳에서 침묵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명상이 어려우신 분들은 이 곡을 배경음악처럼 뒤에서 흐르게 두고, 음악의 자연스러운 속도에 맞춰 하루 일상을 살아보세요. 직접 해보면 훨씬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