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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 grrgak Feb 16. 2024

시골살이 1일차: 고요함에 익숙해져보기

#011 Editor.성산


포천은 아빠의 고향입니다. 저희 아빠는 포천에서  도시로 왔습니다. (근데 고향이 서울보다 위쪽에 있는데도 상경했다고 하나요?) 젊은 시절을 내내 도시에서 살다가 50대가 되시고 포천에 할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에 집을 지으셨습니다. 주말마다 포천집으로 와서 농부로. 이곳은 아주 재밌는 곳이에요. ‘흘러가는 대로 둔다.’라는 말이 딱 맞는. 모든 것이 솔직하다고. 몇년 전 데크에 열쇠가 걸려있길래, 아빠한테 이건 무슨 열쇠냐고 물어봤습니다. 옆에 창고 열쇠래요. 창고 열쇠가 왜 바로 옆에 있냐고요. 그외에도  길에 멀쩡한 우산이 놓여있질 않나. 돌멩이는 만능 도구예요. 포대자루 날아가지 말라고 올려두고, 내 밭이라고 표시하는 울타리 역할도 하고. 과일나무 가지 예쁘게 자라라고 묶어두고. 이곳은 시계도 딱히 필요하지 않아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곳이니까요. 밤엔 어둡고, 조용히 우는 산짐승 소리뿐. 그야말로 지구와 함께 돌아가는 삶이죠.

아르바이트도 그만뒀겠다, 언제 이렇게 쉬어볼까 싶어서 명절을 앞두고 포천집으로 먼저 왔어요. 혼자 밥 만들어 먹고, 혼자 살아보기.




2월 4일의 이야기
역시 심심하네요. 혼자 있으니까 뭘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생각 않고 잠만 자려고 왔는데, 막상 그렇게 하니까 벌써 심심해요. 차를 우려서 밖으로 나갑니다. 입춘이라던데, 겉옷 하나만 걸쳐도 따뜻하네요. 차를 마시면서 바람 쐬면서 멍때립니다. 뒷산에 옆집 개가 산책을 나와서 낙엽 소리도 들려요. 고모가 키우는 개인데, 이름이 콩순이예요.

노래도 들으면서 한창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등이 뜨거워서 들어왔어요. 나른해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5시. 해가 졌어요. 냉커피에 간식 먹고, 벽난로를 틀어요. 밤엔 추우니까, 벽난로 틀고 앞에서 자려고요. 계속 장작을 넣어줘야 해서 눈을 떼면 불이 꺼져버려요. 불씨 쪽에 마른 장작 넣고 긴장하면서 보고 있었더니 다시 붙었네요. 보일러도 있고 불도 전등 키면 되지만, 뭔가 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아요. 꺼진 줄 알았는데 다시 팍 붙는 거 보면 재밌기도 하고. 난로에 불을 피우면 주전자를 올려 물을 데울 수 있어요. 아까 우린 티백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주전자에 넣고 천천히 우려요.  빨리빨리 포트에 넣고 끓였을 텐데. 그러곤 홀짝 마시다가 혀를 데어버리죠. 물이 너무 뜨거워지지 않아서 딱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어요.


자기 전 장작을 가져오려고 나왔다가 고양이랑 눈 마주쳤어요. 여기 고양이들은 산을 타고 다녀서 그런지 얼굴에 비해 엄청 근육질입니다. 어둠 속에서 눈만 동동 떠다녀서 깜짝 놀랐는데 낮에 본 고양이인 것 같아요. 새벽에 눈 소식이 있던데, 베란다 한 켠 내어주고 싶은. 하늘에 구름이 꼈네요.

  하루종일 뭘 해야하나 걱정이었는데, 밥 먹고, 불 피우고, 집에서 가져온 책 몇 권 읽었더니 벌써 밤이 되더라고요. 시골의 겨울은 빨리 어두워지기도 하고.
저는 사실 어둡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잠이 오히려 안 와요. 너무 조용하면 오히려 머리가 시끄러워진달까, 별 생각을 다 해서 잠을 못 자는 것 같아요. 또 어두우면 눈 뜬 거랑 감은 거랑 차이가 안 나서 기분이 이상하고. 그래서 항상 무드등을 키고, 음악이나 동영상을 작게 틀어놓고 자요. 요즘 수면장애를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고, 소리로 가득 차고, 불빛이 화려하고. 그런 것들에 익숙하기 때문에 잠시의 고요함이 어색한 게 아닐까요. 멍을 때리면 뇌가 휴식을 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머리를 쉬게 해주는 걸 계속 잊고 있어요.

요즘 레트로, 오래된 것이 유행하죠. 저화질 저프레임의 디카와 필름카메라를 찾고, 작은 소도시로 여행을 가고. 왜 사람들은 최첨단 시스템의 빠르고 편리한 삶을 두고 느리고 고요한 것들을 찾아다니게 된 걸까요? 저도 그래요. 왜 이런 것들이 좋게 느껴지는 걸까요.
그것은 고도의 것에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질이 좋은 이미지, 빠르게 검색되는 키워드들,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 무언가를 충분히 느끼고, 담아두기엔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들입니다.
내가 가장 천진난만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겠죠. 웃기면 웃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내일은 무엇을 할까?’로 머릿속이 가득 찬 시절. 핸드폰 알람이 아닌 새소리로 잠이 깨는 방학의 어떤 하루처럼.
가끔 제가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지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디카와 필름카메라. 엘피와 시디. 종이책과 차 티백. 눈과 숲. 언제부턴가 계속 눈을 돌리게 만든 것들이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옆에 있어주던 때로 돌아가게 만들어주기 때문일지도요.




쿠키: 오늘의 레시피

오늘의 저녁은 볶음우동.

원래 김치우동 만들어먹으려 했는데 쯔유를 두고와서 메뉴 변경. 고추가루를 너무 많이 넣어서 지금 좀 속이 쓰린데..그래도 레시피 한번 적어볼까요. 유튜브 참고했습니다.

재료는 우동면, 어울리는 야채들 (청경채, 숙주), 삼겹살,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굴소스, 설탕, 간장(선택)

1. 우동면을 뜨거운 물에 풀기
2. 삼겹살을 먼저 굽고, 나온 기름에 잘게 썰어둔 파 볶아서 파기름 내주기
3. 파기름에 고춧가루 1숟가락 (두숟가락 넣었더니 너무 매움, 고운 가루면 더 좋음) 넣고 기름 내주기
4. 우동면이랑 야채 다 때려넣고 볶기
5. 굴소스 2, 다진 마늘 1, 설탕 1.5?, 간장 1 넣고 볶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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