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병원엘 다녀왔다.
옷을 입고 벗기가 힘들 정도로 어깨가 다시 아파와서
수영도 한동안 보류한 채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걸어도 무난한 거리, 버스로 두 정거장.
가는 길에는 털레털레 찬바람 맞으며 걸어갔다.
가는 방향으로는 버스 정거장이 길 건너에 있는지라 차라리 걷는 게 편하기도 하다.
치료를 마치고 나와서는 병원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타면 집 앞에서 내릴 수 있다.
게다가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버스 노선이 다니는 길이기에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 바로 앞 버스 정류장으로
마치 나를 위해 시간을 맞춘 듯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고, 가볍게 버스에 올라탔다.
아, 운수 좋은 날.
사거리에서 직진을 해야 하는 버스가 우회전을 하는 걸 보고서야
420번 버스가 아닌 402번 버스를 탔음을 알았다.
그 많은 버스 중에 402번만 우리 집 쪽으로 가지 않는데
기가 막히게도 딱 그 버스 402번을 가.볍.게 올라탄 것이다.
운수 좋은 날은 개뿔,
아, 운수 말아먹은 날.
한 정거장 가서 버스에서 내렸는데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자마자 내렸기 때문에 실상 병원 앞에서 얼마 가지도 않은, 초단거리만 움직이고 내린 셈이 되었다.
버스기사도 승객들도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 민망하기까지 했다.
아, 운수 말아먹은 날.
버스에서 내리자 마다 운명처럼 복권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나는 복권을 자주 구매하는 복권 러버다.
잘못 탄 버스를 내리자마자 복권 가게가 있다고?
이는 온 우주가 나서서 나에게 그곳에서 복권을 사라고 권하는 게 아닐까?
드디어 로또 1등 당첨의 기운이 나에게도 오는구나.
1등 당첨 후 운명 같은 당첨이었노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리라.
아, 운수 좋은 날.
문을 열고 들어간 복권가게는 어쩐지 분위기도 다른 복권가게와 다른 듯 포근함까지 느껴졌다.
1등 당첨되면 포근한 느낌의 가게에서 복권을 사라고 사람들에게 권하리라.
그리고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도 해줘야지.
아, 운수 좋은 날.
복권 용지를 집어 들고, 내 덕분에 대박 복권점의 주인이 될 주인장에게 말했다
계좌이체 할게요. 계좌 번호는 어디 써 있나요?
요즘은 현금을 안 가지고 다니니 복권방 뿐만 아니라 붕어빵 리어카도 계좌 이체가 가능하지 않은가?
단호한 주인장의 한마디.
계좌이체 안됩니다.
조용히 복권 용지를 내려놓고
내 덕분에 대박 복권방의 주인이 될 기회를 놓친 사람을 뒤로하고
왠지 포근함이 느껴지던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바람이 차다.
버스 정류장 까지는 언제 걸어간단 말인가?
아, 지독히도 운수 나쁜 날.
.....................靑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