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를 읽고
아,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어떤 젊음도 시간 앞에 결국 바스라진다. 어떤 재능도 시대에 휩쓸리면 빛을 보지 못한다. 맑고 곱던 마음은 불행 앞에 뒤틀리고, 찬란한 어제는 내일의 발목을 잡는다.
<파친코> 얘기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더없이 무력하다. 태어나길 병신으로, 사생아로, 구한말 조선인으로, 조센징으로, 여자로, 고아로, 동성애자로 태어났다. 보고 자란 게 하느님이면 하느님을 믿게 된다. 배운 게 도박장 운영이면 도박장을 운영하게 된다.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야 하는 세상에 태어났으면 그게 전부인 줄 아는 수밖에 없다.
운명 앞에 겸손해야 한다. 시대 앞에 겸허해야 한다. 삶을 산다는 것은 저마다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각자의 비극이 있다. 그 어떤 것도 함부로 죄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 훌륭한 소설가가 너의 이야기를 쓰고 나서야 그것이 죄였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때 나는 이미 없을 수도 있다.
아,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가. 우리 모두의 삶은 한 편의 뭉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단지 아직 글로 쓰여지지 않았을 뿐.
<파친코> 얘기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저 삶을 살았을 뿐인데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엮였다. 전근대적인 여인네들의 삶은 어리석은 만큼 강인했고, 저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가치를 위해 버린 목숨은 처연했지만 그만큼 가슴을 저몄다.
산다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그저 삶을 살아내기만 해도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쫓던 것들이 나중에 가서 어처구니없이 별볼일 없었다는 것을 알게 돼도 상관없다. 그래도 아름다움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고작 선자도 무려 <파친코>의 주인공이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각자의 삶이 갖는 아름다움이 덜 비장하고 아련한 것이다. 처절하게 투쟁하지 않아도, 조금 더 안온하고 손쉽게 아름다움을 거머쥘 수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사사건건 죽음을 각오하지 않아도, 자살을 하지 않아도, 얻어맞거나 모욕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파친코>를 읽으면서, 옳고 그름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의 삶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산다는건 좋은거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한벌은 건졌잖소’라는 가사가 나오는 김국환의 '타타타'를 생각했다. 좋은 책이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라. 모든 조선인들을 위해서, 와세다대학교 같은 학교에 갈 수 없는 모든 조선인들을 위해 배워라.”
“왜 에쓰코네 가족은 파친코 사업을 그리 안 좋게 생각할까? 외판원이었던 에쓰코의 아버지는 형편이 안 되는 외로운 주부들에게 비싼 생명보험을 들게 했고, 모자수는 성인 남녀들이 돈을 따려고 핀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